여기 책상 위 노트북 옆에 흔하디 흔한 바나나가 하나 놓여 있습니다. 색이 선명하고 싱싱하니 먹음직스러워 냉큼 한 뭉치 사 들고 왔어요. 5개에 2,000원도 하지 않는 바나나를 보니 어린 시절 그때가 떠오르네요. 초등학교 시절 면역력이 약했던지 일 년의 절반 이상은 감기 등의 잔병치레를 하느라 부모님 속을 꽤 괴롭혔어요. 한두 달 지독한 감기를 앓고 나면 이번엔 또 양쪽 눈이 감기지 않을 만큼 다래끼로 눈이 퉁퉁 부어오르고요. 그러다가 좀 살겠다 싶으면 시도 때도 없이 코피가 터져 거즈 솜은 늘 쟁여두어야 하는 우리 집 상비약 상위권에 속했죠. 그런 식으로 일 년 내내 어딘가가 삐걱거리는 비쩍 마른 어린 딸을 돌보는 부모님 마음이 어땠을지... 어른이 된 지금 어느 정도 짐작은 가지만, 아이를 낳은 경험이 없는지라 정말 제대로 알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겠어요. 그래도 고생스럽고 마음이 늘 무거웠겠구나 싶어요. 그런데 왜 바나나에서 얘기가 여기까지 왔을까요?
요즘도 몸살이 나거나 물에 젖은 솜덩이처럼 몸이 무거울 때면 이불속을 헤매다가 문득 머리맡을 쓱 쳐다보는 습관이 있어요. 없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왠지 끙끙 거리는 동안 누군가 바나나 하나를 놓고 가지 않았을까 상상해 보곤 해요. 왠지 생각만으로도 좀 나은 거 같기도 하고요. 수시로 아프던 어린이 시절에 바나나는 참 비싼 과일이었죠. 평소엔 엄두도 못 내는 금값의 수입 과일이다 보니 어쩌다 먹어보면 그 폭신하고 달콤한 맛에 사르륵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었죠. 그런 귀하고 값진 과일이 끙끙 앓다가 눈을 떠보면 가끔 베겟닛 옆에 놓여있곤 했어요. 어린 딸이 몸져누워있으니 평소 좋아하는 것을 주고 싶으셨겠죠. 맛있는 것 먹고 얼른 나아 일어나라는 소망과 함께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편도선이 퉁퉁 부은 채로 한두 입 먹고 내려놓던 바나나의 맛은 달콤한 기억으로 남은 적이 없네요. 텁텁하고 목이 메어 더 먹어지지가 않았거든요. 가끔은 안 아플 때 먹었다면 맛있을 텐데... 철없이 먹다 남은 바나나를 보며 속상해했던 기억도 나고요.
빈약하던 시절을 지나 건강한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부터 바나나 값은 친숙해졌으니, 손쉽게 사 먹게 되면서 더 이상 머리맡에 놓인 바나나를 애타게 쳐다볼 일은 없어졌죠. 그럼에도 바나나는 여전히 마음이 허하거나 몸이 무거울 때면 생각이 납니다. 바나나의 달콤함 안에 폭신하게 녹아있는 부모님의 애달픈 애정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흔해졌다 해도 흔해지지 않는 기억 속의 포근한 바나나맛. 아프면 알약 한알 털어 넣고 자면 되지만, 문득 생각만으로도 한 번씩 크게 포옹해주는 그 맛. 시간이 아무리 흐르고 흘러도, 목이 메고 푸석하게만 느껴지던 그 맛이 저에겐 가장 달콤한 바나나의 맛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