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라는 것은 참으로 다양하다. 배움이 부족해 사회로부터 멀어진 부모로 출발한 가난. 대박을 꿈꾸다 소외된 가난. 질병으로 인한 가난. 천재지변으로 인한 가난 등.
세계 문학사에서 손꼽는 도입부인 톨스토이 소설의 ‘안나 카레리나’ 첫 소절은 “행복한 가정은 닮아 있으나,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나름으로 불행하다”로 시작한다. 헌데 행복을 ‘부유’ 라고 바꾸고, 불행을 ‘가난’으로 바꿔본다고 하더라도 크게 어색하지 않다.
사실 내게 있어 가난은 어린시절부터 따라다녔다. 하지만 시골 작은마을에서 빈부는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려웠다. 조금 잘 사는 아이는 부모가 공무원이었고, 어려운 집은 농업에 종사하거나 딱히 이렇다 할 직업이 없는 부모를 두고 있었다. 이곳에서 빈부라는 것은 나보다 한 두 개 더 많은 옷을 입는다거나, 짝퉁대신 프로스펙스 신발을 신는다는 차이 정도였을까.
그랬기에 함께 어울렸고, 함께 성장할 수 있었다.
20대가 됐다. 대학이라는 새로운 공간은 전혀다른 경험을 선사했다. 그중 최고는 아마 ‘가난’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아니었을까.
대학 입학식이 끝난 뒤 같은과 동기 중 한명은 선배를 따라 학교 앞 싸구려 음식점 가기를 거절했다. 특별한 날이었다. 부모와 먹기로 했다는 말과 함께 자리를 떴다.
나중에서야 들었다. 서울 유명호텔에서 먹기로 했다고. 호텔이라고는 ‘00관광호텔’ 같은 시골 모텔수준의 호텔밖에 모르던, 문화전 재산이 전무한 시절. 호텔은 막연하게 돈 많은 누군가와 가는 곳이라 여겼던 그때, 사소함 속에서 차이와 가난을 깨달아야만 했다.
지금와 생각해보면, 사실 그리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특별한 날 호텔뷔페에서 밥을 먹는다는 것이. 내 기준에 특별한날 '짜장면' 같은 느낌이었을까.
그 사소한 충격은 대학생활 1년의 관계를 망가뜨렸다. 스스로 움츠러들게 했다. 지금껏 친구를 만나는 것, 사람을 사귀는 것에 단 한번도 여려움을 겪지 않았지만, 그땐 달랐다. 쉽사리 다가가지 못했다. 그리고 다름이 느껴질땐, 여지없이 도망쳤다. 관계에서.
삶의 이질감을 20살 새내기가 받아들이기엔 꽤나 큰 충격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는 군대라는 어쩔수 없이 향해야하는 그곳으로 도망치는 입대했다.
며칠전 인터넷을 하던 중 “가난은 자신이 살았던 학창시절 울타리를 벗어났을 때 본래의 모습을 드러낸다”는 글을 봤다. 10여년전 내가 느겼던 고민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으리라.
그리고 그 고민은 풍요의 시대인 지금에도 반복된다는 사실에 가슴아플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