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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변유변 Jun 16. 2023

나이지리아 사기 조직을 검거하라(1)

2022년 5월. 아프리카에서 살아남기

김선배가 아프리카에 가자는데

내가 근무하는 싱가포르 오피스 4층에는 사이버범죄국이 있다(CD, Cybercrime Directorate). 사이버팀에는 한국인 김선배가 있는데 동료들은 그를 ‘욱킴’이라 부른다. 욱킴은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에서 후원하는 사이버범죄 프로젝트 글래씨(GLACY+ project)를 담당한다.


욱킴은 참 존경스러운 존재이자 내 인터폴 생활의 멘토이다. 저녁에는 맥주 메이트인데 사무실에서는 노련한 국제기구 전문가였다. 그가 주재하는 회의에 종종 참석해 보았는데 나는 그만큼 논리적이면서 유쾌한 진행을 본 적이 없다. 상대방의 발언을 존중하면서도 과해지는 때엔 적정한 순간에 맺었고, 논의가 잠잠하면 적절한 질문을 던질 줄 알았다. 그리고 그 질문들이 새로운 개념과 영감을 촉발했다. 인터폴에서 손에 꼽히는 모더레이터(Moderator) 중 한명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좋은 모델을 카피하는 것인데, 나는 초창기에 그 세련된 솜씨를 배우고 싶어서 많이 따라해 보곤 했다.


6층 금융팀은 김선배네와 협업할 일이 많다. 종종 어떤 범죄가 금융범죄인지 사이버범죄인지 분명한 선을 긋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가령, 로맨스 스캠이나 이메일 무역사기는 전형적인 사기 범죄인데, 수법에 따라 사이버범죄로 분류할 수도 있다. 사이버범죄의 정의는 정책적으로 규정하기 마련이다. 범죄에는 국경이 없는데 우리가 만든 관료제는 부서를 구분한다. 회원국마다 다소 차이는 있는데, 이런 구분이 너무 엄격해지면 효율성이 떨어진다. 서로 관할권을 주장하거나 반대로 상대방에게 업무를 미루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협업이 필요한 지점이다. 사이버범죄든, 경제범죄든 정의(Definition)보다 대응(Response)이 긴요하다.



어느 날 그 욱킴이 나이지리아에 함께 가자고 했다. 맡고 있는 프로젝트에서 나이지리아 법집행기관들을 대상으로 가상자산 자금세탁 대응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라고 한다. 그러지 않아도 나이지리아는 주요 공조 대상국이라 주의 깊게 살피던 참이었다. 비트코인 물동량이 전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데다(출장 준비로 리서치 중에 알게 됐다), 범죄자금이 흘러가거나 현지 범죄조직과 연계된 사건들이 상당했다. 하지만 습관적으로 익숙지 않은 것에 대한 게으름이 호기심을 눌러왔었다. 아프리카는 처음이라 저어했다. 가기는 가야는데 내 천성이 게을러 미루던 참에 마침 욱킴이 나이지리아에 가자는 것이다. 왠지 이번에는 가야 할 것 같았다. 황열병 예방접종을 예약하고 출장기획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인터폴 미션(출장) 준비

사람마다 일하는 방식이 다르다. 나는 미션가기 전에 그 대상국과 관련된 주요 사건들을 미리 인터폴 데이터베이스에서 뽑아내어 사건별로 우선순위를 정한다. 대상국 법집행기관 관계자들을 대면하는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다. 회의 석상에 사건들을 올리면 아무래도 사건 진행이 용이하다. 곧바로 우리나라 인터폴 서울 사무소에 메세지를 보냈다. 나이지리아 관련 주요 사건들을 우선순위별로 추려 달라고 했다. 팔은 안으로 굽고 나는 대한민국에서 파견한 경찰관이니까. 사실 이 지점은 늘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인터폴 오피써들은 회원국을 위해 봉사하며 출신 국가와 관계 없이 중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한다는 서약서를 작성한다. 때문에 특정 나라 사건들에만 주력하게 된다면 신의성실의 원칙(INTERPOL's Integrity)에 반하게 된다. 그래서 사안의 중요성을 기준으로 매번 기획수사의 성격을 정의한다. 이번에는 나이지리아-대한민국 간 비트코인 이용 주요 자금세탁 사건으로 규정한다.


며칠이 안되어 경찰청 외사국에 위치한 인터폴 서울 동료들은 나이지리아로 피해금액이 흘러간 사건들을 보내왔다. 거의 대부분 범죄수익을 비트코인으로 전송했다. 케이스별로 수사팀을 확인하고 비행기에 오르기 전 사건별 쟁점들을 미리 정리했다. 수사는 단순화하면 사람과 돈을 좇는 것이고, 그 사이에서 경우의 수를 좁혀 나가는 것이다. 먼저 돈 부분에서 가상자산을 이용한 것은 돈의 전달 방식이 바뀐 것에 불과하다. 다만 그 사이에서 여러가지 복잡한 쟁점들이 파생한다. 나아가 범죄수익 환수의 관점에서도 큰 틀에서는 차이가 없으나 개별적으로 취하여야 할 조치들이 달라진다. 다음으로 사람에 관하여는 결국 범죄자를 어떻게 검거할 것인지에 관한 접근이다. 나이지리아 당국과 어떤 협의를 해야 할지 정리해 나갔다. 



아프리카는 처음이지

아부자에 도착했다. 도착 비자였던가, 내 이해의 범주를 벗어나는 문제로 공항에서 꽤나 오래 발이 묶였다. 출입국 심사는 그리 엄격하지 않았는데, “you have something for me?”를 자주 들었다. 내가 인터폴 오피서라고 주장해야 할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작은 돈 또는 통과 비용) 꺼내야 할지를 잠시 고민했던 것 같다. 고민하는 이유는, 가령, 인터폴에 대한 대중적 이해가 많지 않아 인터폴 요원이라는 언급은 오히려 불요한 오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하면 사기꾼으로 오인받을 수도 있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하고 짐을 찾았다.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기 전에는 내가 준비가 되었는지 확인하는 것이 오랜 습관이다. 인터넷과 환전 그리고 숙소 위치를 파악하고 늘상 같은 위치에 두는 휴대전화 2개, 지갑, 여권의 위치를 다시 점검한 뒤 공항을 나섰다. 법무부에서 보낸 기사분이 마중나와 있었다. 키가 크고 깡마른 그는 너무 오래 기다렸는지 욱킴과 내가 나타나자 조금 상기되어 보였다. 그리 늦지 않은 오후에 착륙했던것 같은데 벌써 어둑하다. 오래 기다리게 해 무척 미안했다. 처음 밟은 땅에 대한 설렘이 공항 노을처럼 가라앉았다. 오래된 일본식 중형 세단에 짐을 싣고 출발했다. 현지 이해가 적은 상황에서 택시로 시내를 통과하기가 다소 염려스러웠는데, 현지인과 함께라 왠지 안심이 됐다.



시작이 괜찮았다.

욱킴과 아침에 테니스를 쳤다. 숙소 밖에만 나가지 않으면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에 부러 코트가 있는 호텔을 검색해서 잡아 둔 것이다. 간밤에 탕, 탕. 불꽃놀이인지 총성인지 들렸던 것 같다. 불안이 무색하게도 여독과 시차에 금세 아침이었다.


이튿날 팀 동료 아달베르토(Adalberto Nascimento)가 합류했다. 웨벡스 화상회의에서 봤지만 현실에서 만난 것은 처음이다. 아달베르토는 앙골라 출신이다. 나는 싱가포르에서, 아달베르토는 리옹에서 출발했다. 화상회의에서 조우하다 보면 가끔 우리가 사실은 한 번도 직접 만나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종종 잊곤 한다. 그만큼 아달베르토는 친숙했다. 화면보다 키는 작고 상체는 더 두꺼웠다. 무슨 대화였는지는 모르겠는데, 런던에서 유학 시절 술집에서 파트타임으로 기도(bouncer) 일을 했다고도 했다. 편협한 나는 아프리카 땅에서 힘도 세 보이고 나이지리아 사람과 외관이 비슷한 동료가 있어 안정감을 느꼈다. 아달베르토는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 길에, 사람들이 자기가 나이지리아 사람인 줄 안다며 무척 즐거워했다. 나는 앙골라 사람과 나이지리아 사람의 외관이 어떻게 다른 줄 모른다. 아직 우리의 친숙함은 그 차이를 물어볼 만큼 간격이 좁지 않다. 동료들에게 한국 사람이 다른 동양인들과 다름을 알아차려 줄 것을 내심 요구했던 마음이 왠지 작아진다. 작은 경험과 작지 않은 교훈을 안고 우리는 일을 시작했다.



(계속)




**Disclaimer

-본고에 포함된 모든 저작권, 초상권은 저자에게 있습니다(동의 없이 복제, 배포, 게시를 금합니다)

-모든 사건들은 이미 언론에 공개된 부분 등 국내 법령에 위배되지 않는 범주에서 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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