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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변유변 Jun 20. 2023

나이지리아 사기 조직을 검거하라(2)

2022년. 로맨스 스캠의 진화

사랑도 죄가 되나요

나이지리아에 들고 온 사건 파일들은 모두 비트코인을 이용한 로맨스 스캠 사건들이다

로맨스스캠을 처음 접한것은 2015년 경으로 기억한다. 그 해에는 국제범죄수사대에 있었다. 

사기를 당했다는 남성이 사무실에서 피해 조사를 받고 있었다.

어떤 계기로 여성을 알게 되었고, 사랑을 했다고 한다. 

미래를 약속했고, 결혼 준비를 위해 미리 돈을 보내주었다.

불상의 여성은 돈을 받은 뒤 잠적했다.

"나는 그 여자가 사기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기꾼이래도 좋아. 나는 적어도 사랑을 했으니까"


여성이 피해자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성별은 중요치 않다. 범죄 수법과 범죄자만 있을 뿐이다. 종종 외로워서 그랬을 것이다 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보았다. 로맨스 스캠에서 피해자가 가십 소재가 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2차 피해를 막는 것도 범죄수사의 한 과정이다. 피해자는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피해 여성은 SNS를 통해 그를 알게 되었다. 

그는 예멘에서 근무하는 미군이라 한다. 

번역기를 돌려가며 관계는 진전되었다.

그러다가 현지 은행 사정으로 자금이 묶이게 된 사정이 소개 되었다. 

자산이 묶여 한국으로 보러 가고 싶어도 오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전형적인 사기 수법이다.

결국 여성은 돈을 보냈고, 목적을 달성한 미군(?)은 사라졌다.


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담보로 돈을 편취하는 전형적인 수법을 '로맨스 스캠'이라 한다.

무서운 점은 피해자들은 사기를 당하고도 이를 믿지 않으려는 경향이 많다. 또는 자신의 감정과 판단에 대한 대가라며 피해 자체를 용인하려는 경우도 있다. 


범죄는 범죄이고, 사기는 사기일 뿐이다.

감정을 이입하면 판단은 흐려진다. 

외로워서도 못나서도 피해자가 된 게 아니다.

속은 사람은 죄가 없다. 속인 자가 잘못한 일이다. 



 그리고 비트코인

시간이 지나며 이러한 유형의 로맨스 스캠이 진화했다. 

계좌번호를 통해 돈을 받지 않고, 가상자산 지갑주소를 건네준다.

비트코인으로 이전된 범죄수익은 쉽사리 수사당국의 추적을 받지 않으리라는 믿음이다.


그러면 비트코인을 보내는 법을 잘 모를 때에는 어떻게 할까.

친절히 보내는 방법을 알려주거나, 일반 돈(fiat money)으로 이체받아 스스로 또는 제3의 인물을 시켜 가상자산으로 전송하기도 한다. 


사이버 역량이 없더라도 사이버범죄를 저지를 수 있도록 돕는 개념(Cybercrime As A Service - 말웨어 등을 판매하여 사이버범죄를 저지를 수 있도록 하는 시장)처럼, 가상자산에 익숙지 않더라도 그 전송방법을 안내하여 줌으로써 자금세탁을 용이하게 한다.(Virtual Assets as a Service)

지난 3,4년 사이에 이런 사건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범죄 수사는 증거와 증인을 수집하고 피의자를 특정해 나가는 활동인데,

금융 수사는 보통 돈의 흐름을 좇다보면 퍼즐이 하나씩 맞춰지는 경우가 있다.

가상자산으로 보낸 경우에도 이제는 자금 흐름을 분석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고 있다. 

비슷한 유형의 사건들 너머엔 공통의 범죄조직이 있을 수 있다.

검은 자금 흐름의 장막 뒤에 우리가 쫓는 그들이 있을 것이다.

열 개의 사건들의 공통점은 비트코인 흐름이 모두 나이지리아로 향했다는 것이다. 

이제 단죄의 시간이다.




사건을 풀어나가는 만 가지 해법

크고 작은 피해 금액 속에 저마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제 그 이야기들을 마무리 지을 때다. 누구를 만나서 어떤 쟁점들을 교환해야 할지 머릿속으로는 정리가 됐다. 천리길도 한걸음에 달려왔고 첫술 밥에 배부르고 싶었다. 하지만 서두르면 목적달성이 요원해질 수 있다. 때론 머리와 이성보다는 어조와 감성이 일을 해결해 주는 경우가 많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이번 출장은 욱킴이 초청한 프로젝트에 우선 충실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이 사건들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차차 보일 것이다. 프로젝트 주제는 가상자산 자금세탁이니 구체적인 케이스와 함께라면 설명이 자연스럽다. 금융팀 동료 아달베르토에게 fiat money파트를 맡아달라 하고 내가 가상자산을 맡기로 역할을 나누었다. 


사건을 풀어나가는 구체적인 방법은 우선 컨택 포인트(PoC, Point of Contact)를 찾는 것인데, 개별 사건마다 그 나라에서 권한 있는 기관의 적확한 부서를 찾아 책임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단일 국가경찰 시스템이기 때문에 한 기관 안에서 담당 부서가 명확한 경우가 많지만, 다양한 수사기관 체제를 유지하는 나라도 많기 때문에 PoC를 찾는 과정은 긴요하다.



나이지리아 법무부 회의실 가는 길에

미션을 다녀온 동료들과 대화하다 보면, 회원국에서 어떤 의전을 받았다는 것을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존경하는 욱킴은 주최 측에서 차를 보내주는 것을 늘 정중히 거절하곤 한다. 회원국에 부담을 지우지 않으려는 그러한 세세한 자세에서 나는 인터폴 인테그리티(integrity, 적정한 단어가 떠오르진 않는다 - 직업윤리?)를 배운다. 안전 문제로 처음 공항에서 올 때에만 법무부 차량으로 이동했고, 숙소에서 회의장으로는 우버를 타기로 했다. 


우리는 잠시 이방인 무리가 되어 법무부로 향했다. 낯선 거리에서 생경한 풍경을 바라보는 것은 출장길 재미 중 하나이다. 같은 행성에서 수 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곳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것을 본다. 아프리카 노점에서는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을 팔고 있고, 상상했던 사자나 기린 따위의 동물들은 없었다. 좁은 소형 차 안에서 욱킴과 나, 아달베르토 그리고 기사님까지 넷은 법무부까지 십 오분 간 여정의 동행이다. 그 사이에 편협하기 그지 없는 나는 아달베르토에게 루안다는(앙골라의 수도) 아부자와 무엇이 다른지를 물어보았고, 처음으로 앙골라가 포르투갈 어를 쓴다는 사실을 알았다. 협소한 내 이해의 폭이 부끄럽다기 보다는, 기도(Bouncer) 시절을 뽐내는 듯한 듬직한 친구와 한층 더 가까워 지는 아침길이 그저 즐거웠다.

  

금세 도착했다. 안 뜰은 무척 더웠다. 넥타이를 올려 맨 우리들을 놀려대듯 햇볕이 따가웠다. 지구 온난화 같은 것들을 생각하며 옅은 갈색빛 오래된 건물 안에 들어섰다. 회의장에는 에어컨이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했다. 나를 뺀 모두가 전기가 부족한 현상에 익숙해 보였다. 이윽고 참석자들이 하나 둘씩 당도하며 힘차게 악수를 나누었다. 바야흐로 포스트 코로나의 초입에서 나는 괜스레 동지애가 느껴졌다. 나이지리아 경찰, 법무부, 검찰, 중앙은행, 금융정보분석원(NFIU), 경제금융경찰국(EFCC), 국가보안수사국(DSS) 등 다양한 법집행기관이 참석했다. 욱킴 프로젝트의 최대 장점이다. 애초에 사건들을 바리바리 싸온 이유도 여기에 가면 반드시 PoC를 찾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George, Adalberto, 장신의 동안 나이지리아 검찰총장님, uKim & JK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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