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다운이 되었다.
파이팅 넘치게 지내다가 갑자기 좀 다운되었다. 원인은 모르겠다. 알려 들면 알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알려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부질없다 여겨지는 순간이 가끔 오니까. 그러나 불행 중 다행인 건 그런 생각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이다.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음악을 들어도 그저 그렇다. 요즘 방탕하게 지내서일 수도. 몹쓸 생각이 들어오게 무방비했는지도. 누군가의 불행을 자꾸만 간접 경험하게 되어서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남의 눈에는 내가 충분히 불행해 보이기 때문에, 실제로 내가 불행한지도.
사실 행복한데 불안하고 불안한데 행복한 게 삶이라 뭐가 뭔지 모르겠다. 좀처럼 쓰기가 힘든 요즘, 얼마나 근사한 글을 쓰겠다고 글쓰기를 미루느냐, 그래서 뭐라도 쓴다.
국립국어연구원 표준국어대사전을 펼쳐보다가 그랬을까. 거듭되는 항암치료에도 암이 줄지 않고 있는 지인의 소식을 들어서일까. 암이 재발했을지 모른다는 또 다른 지인의 불행 때문일까. 큰 아들 다리의 두드러기 때문일까 꽉 끼는 브라 때문일까. 살이 빠지지 않아서일까. 우울한 노래를 자꾸 들어서일까. 마흔이 되어서일까. 비싸게 주고 산 테이블이 얼룩덜룩 울어서일까 잔고가 줄고 있어서일까. 한국에 못 가서인가 할 일을 못해서인가. 빨리 읽어치우려던 책이 그대로여서인가 생리 전 증후군인가. 저녁을 굶어서인가 집에만 있어서인가. 건강한데 아플까 봐 걱정이 되는 걸까 진짜 어딘가 아픈 걸까. 욕심이 많아서인가 욕심이 없어서인가.
어찌 됐건 궁극적으로는 끌려다니기 싫은 마음이다. 시간에, 상황에, 감정에. 숙련된 장인처럼, 노련한 선수처럼 시간과 상황과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싶다. 기계처럼 일어나 일정하게 쓰고 싶다. 후회도 지겹고, 그래서 쓴다. 똥 같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