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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G Jul 16. 2021

유부녀의 연애감정과 예술

들을 귀 있는 자들만 알아들을 개소리

쓰던 글을 마무리 지으려다 그만둔다. 듣고 있던 잔나비의 <사랑하긴 했었나요 스쳐가는 인연이었나요 짧지않은 우리 함께했던 시간들이 자꾸 내 마음을 가둬두네>를 계속 듣는다. 어떤 글이든 마무리 짓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꼴보기 싫어 대충 덮어버리거나 최선을 다해 나의 한계를 내보이는 걸로 퉁치는 것 뿐이다. 어차피 똥 같은 글, 어차피 불가능한 일을 하기 위해 나의 휴식시간을 홀딱 다 날려버릴 수는 없다.


몸이 자동으로 음악을 찾는다. 글이 읽기 싫을  가사가 있는 노래를 듣는다. 세상 노래가 사랑 타령 일색인  불만이기는 하다. 로봇에게 감정이 없듯 유부녀에게는 연애감정 따윈 없단 말이다! (아니 없어야 한다.) 그러니까 그런 가사가  와닿지 않는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불만일 것도 없다. 그나마 사랑 노래가 아니었다면 언젠가 느꼈을 연애감정이 도대체 어떤 거였던가 되새김질할 기회조차  가졌을 테니 말이다.


사랑 노래를 기가 막히게 지으려면 진짜 연애를 해야 할 텐데. 그 많은 유부남녀 작사가들은 얼마나 더 큰 괴리감을 떨쳐내며 가사를 쓰는 걸까. 로맨스 소설이나 그런 류의 극본을 쓰는 기혼자들도 마찬가지일 테다. 그러면 나는 평생 기막힌 사랑 노래 한 구절 못 쓰고 죽겠구나 생각하니 문득 슬퍼진다. 야! 유부녀도 사람인데, 그것도 예술하는 사람이 꼭 로봇처럼 살아야쓰겠냐? 막 이런 개소리 같지 않은 개소리도 혼자 지껄여본다.



그나저나 진짜 예술가에게는 예술가 냄새가 나는 모양이다. 작가 이응준이 미장원에 갔을 때 반소매 티셔츠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있는 그에게 원장 선생님이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음악이나 그런 거, 예술을 하는 분이세요?”   


그가 말한다.


<작가로 살아온 지난 30년 간 대체 내 몸 어디에 어떤 문신을 해대고 어떤 어둠을 염색한 것일까. 집으로 걸어 돌아오는 내내, 나는 조용히 슬퍼했다.>


예술가의 아름다움과 어둠이 문신이, 염색이 되었다니. 슬프기는 커녕 쿨하기 그지없지 뭔가. 아까 잔나비 팬채널인지 그런 곳에서 잔나비 보컬의 조각 같은 얼굴을 보았는데 그에게도 볼 수 있었다. 아름답고, 어둡고, 뭔가 음습하고 퇴폐적인 문신을. 예술가의 얼굴이었다. 이응준을 비롯 이런 사람들이 결혼이나 관습의 굴레 따위 입고 살리 없다.


내 얼굴은 어떨까. 유부녀이지만 음습하고 퇴폐적인 무언가, 어둠 같은 문신, 치명적인 예술가의 그것이 조금이라도 있나. 그러면 졸라 신날 텐데.


로봇이 되어갈까 봐 두렵다. 그렇다고 진짜 퇴폐녀가 될 수도 없어 적정선을 찾아 본다.


잔나비 음악을 듣다 잔나비 얼굴을 뚫어지게 보다 괜히 이런저런 고민에 빠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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