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을 귀 있는 자들만 알아들을 개소리
쓰던 글을 마무리 지으려다 그만둔다. 듣고 있던 잔나비의 <사랑하긴 했었나요 스쳐가는 인연이었나요 짧지않은 우리 함께했던 시간들이 자꾸 내 마음을 가둬두네>를 계속 듣는다. 어떤 글이든 마무리 짓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꼴보기 싫어 대충 덮어버리거나 최선을 다해 나의 한계를 내보이는 걸로 퉁치는 것 뿐이다. 어차피 똥 같은 글, 어차피 불가능한 일을 하기 위해 나의 휴식시간을 홀딱 다 날려버릴 수는 없다.
몸이 자동으로 음악을 찾는다. 글이 읽기 싫을 때 가사가 있는 노래를 듣는다. 세상 노래가 사랑 타령 일색인 게 불만이기는 하다. 로봇에게 감정이 없듯 유부녀에게는 연애감정 따윈 없단 말이다! (아니 없어야 한다.) 그러니까 그런 가사가 확 와닿지 않는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불만일 것도 없다. 그나마 사랑 노래가 아니었다면 언젠가 느꼈을 연애감정이 도대체 어떤 거였던가 되새김질할 기회조차 못 가졌을 테니 말이다.
사랑 노래를 기가 막히게 지으려면 진짜 연애를 해야 할 텐데. 그 많은 유부남녀 작사가들은 얼마나 더 큰 괴리감을 떨쳐내며 가사를 쓰는 걸까. 로맨스 소설이나 그런 류의 극본을 쓰는 기혼자들도 마찬가지일 테다. 그러면 나는 평생 기막힌 사랑 노래 한 구절 못 쓰고 죽겠구나 생각하니 문득 슬퍼진다. 야! 유부녀도 사람인데, 그것도 예술하는 사람이 꼭 로봇처럼 살아야쓰겠냐? 막 이런 개소리 같지 않은 개소리도 혼자 지껄여본다.
그나저나 진짜 예술가에게는 예술가 냄새가 나는 모양이다. 작가 이응준이 미장원에 갔을 때 반소매 티셔츠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있는 그에게 원장 선생님이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음악이나 그런 거, 예술을 하는 분이세요?”
그가 말한다.
<작가로 살아온 지난 30년 간 대체 내 몸 어디에 어떤 문신을 해대고 어떤 어둠을 염색한 것일까. 집으로 걸어 돌아오는 내내, 나는 조용히 슬퍼했다.>
예술가의 아름다움과 어둠이 문신이, 염색이 되었다니. 슬프기는 커녕 쿨하기 그지없지 뭔가. 아까 잔나비 팬채널인지 그런 곳에서 잔나비 보컬의 조각 같은 얼굴을 보았는데 그에게도 볼 수 있었다. 아름답고, 어둡고, 뭔가 음습하고 퇴폐적인 문신을. 예술가의 얼굴이었다. 이응준을 비롯 이런 사람들이 결혼이나 관습의 굴레 따위 입고 살리 없다.
내 얼굴은 어떨까. 유부녀이지만 음습하고 퇴폐적인 무언가, 어둠 같은 문신, 치명적인 예술가의 그것이 조금이라도 있나. 그러면 졸라 신날 텐데.
로봇이 되어갈까 봐 두렵다. 그렇다고 진짜 퇴폐녀가 될 수도 없어 적정선을 찾아 본다.
잔나비 음악을 듣다 잔나비 얼굴을 뚫어지게 보다 괜히 이런저런 고민에 빠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