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글을 쓰려면
누워서 글감을 생각한다. 의외로 쓰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새 대가리 같은 내 두뇌의 용적이 모처럼 버겁다. 자꾸만 일어나 도망 나가는 글감들의 뒷덜미를 가까스로 부여잡고 다시 구겨 넣는다. 재빨리 메모장에다가 적는다. 새 대가리는 이제 메모장에 적었다는 것만 기억하면 된다.
사랑에 대해 쓰고 싶다.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말 거짓말이다. 인간은 자신을 위해 누군가를 자신보다 더 사랑해야 하는, 가슴 아프고 불안하지만 아름다운 존재다.” 이응준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내게도 사랑과 인간은 똑같이 가슴 아프고 불안하고 아름다워 언제나 좋은 글감이 된다. 누워서 천정 구석을 응시하다 깨달은 것들, 케일럽의 강아지 Scruffy에 대해, 아랫집 남자와, 스트레칭의 유익에 대해 쓰고 싶다. 쓰고 싶은 게 먹고 싶은 것 만치 많아도 재미있는 글을 쓸 재주는 없어 자리를 고쳐 앉고 만다. 아예 일어나 나의 사랑스러운 오피스로 발길을 옮긴다. 새우깡과 바나나와 페레로로쉐를 챙겼다. 고상하게, 말끔하게 앉아 글 쓰는 법을 모르는 것도 고민이다. 먹으면서, 머리를 헝클면서, 다리를 떨면서 쓴다. 아마도 초조함 때문인것 같다.
잘 쓰는 사람들의 글은 라면 넘어가듯 후루룩 읽어진다. 촘촘히 짜인 코미디 대본처럼 잊을만하면 한 번씩 빵빵 터진다. 작가는 능글맞게, 티 나지 않게, 독자를 붙들 장치를 여럿 숨겨 둔다. 마치 한 마리의 뱀이 문단을 가로지르며 혀를 날름대는 것 같다. 지혜롭고, 날카롭고, 재치 있는 언어유희가 낼름낼름낼름 이어진다. 멋만 부린 글은 날름거리기만 하다 끝이 나기도 한다. 그러나 진짜 좋은 글은 뱀 한 마리 고아 먹은 것처럼 보양이 된다.
사실은 많이 읽어야 한다. 최근 별로 읽지도 않으면서 쓰려고 덤비는 나 자신이 한심하다. 라면을 끓일 때는 건더기 수프를 먼저 넣어야 한단다. 그래야 육수가 우러나기 때문이라고. (하하가 말했다. 하하!) 건더기 수프. 코딱지 만하게 말라비틀어진 소고기가 내는 육수 맛이어봤댔자...모자란 맛은 MSG가 해결해주는 것이다. 결국 몸에 안 좋은 맛이다. 그게 내가 쓰는 글의 맛인지도 모른다.
“나는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인데 내가 책을 많이 읽은 걸 자랑으로 여기진 않아요. 나는 이상한 책을 봐요. 나는 기술 서적을 많이 봐요. 항해사 자격시험 문제집, 소방관 불 끄는 법…”
이것이 고수의 책 읽는 법이다. 소설가 김훈의 말이다. 그는 아마도 책뿐 아니라 활자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뭐든 닥치는 대로 읽으며 체화하는 과정을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할 것이다. 그러니까 나의 독서 습관이 문제인 것도 같다. 한 번 꽂히면 동시다발 다섯 권씩 시작하기도 하면서 읽기 싫을 때는 헤어진 남자 친구 보듯 뚱하다. 이런 습관에서 이제 좀 벗어나고 싶다.
고3 때 내 짝꿍은 공부를 참 열심히 했다. 적당히 공부하고, 신나게 놀던 나는 항상 신기한 눈으로 그 친구를 관찰했다. 답답했던 건 그 친구의 공부 방식이었다. 자는 시간을 대폭 줄이고 공부를 한다는데 방법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특히 언어영역을 공부할 때가 그랬다. 짝꿍은 공책을 꺼내 깜지(옛날 말; 빈 종이를 작은 글씨로 빽빽하게 채워 까맣게 만드는 것)를 만들었다.
글의 종류: 기행문, 기행문, 기행문, 기행문, 기행문, 기행문, 기행문, 기행문, 기행문, 기행문
글쓴이: 김훈, 김훈, 김훈, 김훈, 김훈, 김훈, 김훈, 김훈, 김훈, 김훈, 김훈, 김훈
이런 식으로.
“야 너 뭐하냐? 휴우… 언어영역을 잘 보려면.. XX아 뭐든 좀, 먼저 좀… 읽어야지. 뭐라도 좀 읽어! 좀 읽으라고, 이 멍청아!”
날라리에 수포(수학 포기) 자였던 나는 그래도 언어/외국어영역에서 만큼은 항상 고득점을 받았다. 나는 최소한 저런 식의 공부가,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언어영역 문제를 풀 때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는 날라리였다. 고득점에 대단한 비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나처럼 책을 가까이하던 아이들은 지문을 빠른 속도로 읽을 수 있었으며 거기서 문제가 요구하는 것을 쉽게 찾아내 제대로 풀 수가 있었다. 물론 하루 이틀 읽어서 될 일은 아니다. 언어 능력을 키우려면 오랜 시간의 내공이 필요하다. 그래서 짝꿍이 더 안타까웠는지도 모른다.
글 쓰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대단한 비법으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오래, 많이 읽는 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깜지를 만들지 않아도 자동으로 잘 쓸 수가 있다.
텅 빈 머리가 허전해서 그런가 이번에는 죠리퐁을 뜯어 책상 위에 놓고 쓰고 있다. 뭘 쓸래도 뇌가 건더기 수프의 고기 덩어리처럼 쪼그라든 기분이라 자신이 없다. 죠리퐁을 먹으면 글이 잘 써질 거라고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배가 아무리 차도 글은 나오지 않는다. 글로 머리를 채워야 한다. 무작정 많이 쓴다고 잘 쓰게 되는 것도 아니다. (이상하게 자꾸 독거노총각 말투가 나온다. 유튜브 그만 보고 책 좀 읽어야지.) 요행을 바라선 안된다. 뱀이 낼름낼름낼름 거리는 것 같은 글을 쓰려면.
가슴 아프고 불안하지만 아름다운 존재에 대해 아주 잘 쓰기 위해서, 죄 없는 머리털을 그만 쥐어뜯고 책을 읽어야겠다. 허한 머리를 빈 위장으로 착각하지 않기 위해서 오늘부터 뭐라도 잡고 읽으리르아.
이번엔 내가 나에게.
"읽어라 좀 멍청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