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RG Jan 12. 2023

그년이 내게 가르쳐준 것

2022년의 마지막 한 주를 지나면서 나는 하루라도 빨리 새해를 맞이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이 거지 같던 한 해를 말끔히 지워버리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간’이란 개념은 그 흐름을 측정하는 도구일 뿐 새해라고 무슨 천지개벽이 나겠냐마는, 나에게는 쇄신의 기회가 간절했으므로 그 어떠한 새로움이라도 붙들어야 했다. 이미지 세탁하는 유명인들처럼 과거의 나는, 더러운 기억은, 세차게 돌아가는 세탁기에 넣어 시원하게 빨고 ‘새 해’ 아래 뽀득하게 말린 뒤 새로운 휴먼비잉이 되어 빨리 등장하고 싶었다.


2023의 머리끄덩이를 잡아다 눈앞에 무릎 꿇려 두고 싶은 심정이었기 때문에 플래너(다이어리)부터 구비해 놓고, 새해에 이루고 싶은 목표들을 급하게 썼다. 그걸 가불 하듯 12월의 마지막 주부터 하나씩 클리어 해 나가니 그나마 마음이 편해졌다. 마지막 한주가 참 길게 느껴졌다.


드디어 2022년은 작년이 되었고, 새해가 밝았다.


작년 한 해는 ‘부정’의 한 해였다. 부정不正한 일들이 벌어졌고, 내가 부정不淨하게 여겨졌다. 나는 부정否定당했으며 이 모든 걸 나는 부정적인 시선으로만 보았다.


올해는 그러고 싶지 않다. 새하얀 운동화에 때타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처럼 하루하루를 보낸다. 새하얗게 맑고 투명하게 지내려 노력한다. 이십 대의 어느 공허했던 날, 나는 가방에 필기도구와 다이어리를 넣고 가장 좋아하던 공원으로 갔다. 벤치에 혼자 앉아 혼자인적이 별로 없던 나를 새삼스레 돌아봤었다. 늘 누구에게 기대고, 막막하고, 갑갑하고, 겁이 많은 나였다. 아무도 나를 막아서지 않았지만 주위가 온통 막힌 것 같았다. 지금의 나는 훨씬 씩씩하다. 외국 살면서, 애 둘 낳고 키우면서 겁대가리를 상실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겁을 내기엔 나이가 너무 많다는 자의식 때문이기도 할 거다. 아니, 나이를 뭘로 먹은 건 아니기 때문일 거다.


적어도 나는 매해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얼기설기 짜놓은 목표이든, 최근처럼 타이트하게 짜는 목표이든 이루려고 노력하고,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십 대의 막막함은 아니지만 결이 다른 사십 대의 막막함이 분명히 존재한다. 어느 해도 쉽게 보낸 적은 없다. 그러나 나는 성장하므로 새해에도 겁내지 않는다.


작년을 헌신짝 취급하듯 말했다만 나는 그 년(?)이 나에게 가져다준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안다. 그년은 나에게 ‘ 악물고 사는  뭐란  가르쳐주었다.


_여기 모인 글들은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꼈던 시간 속에서 썼다. 무언가를 지키기 위하여 한자리에 오래 웅크려 있었다. 자주 지쳤고 쉽게 엉망이 되었다. 그래도 내가 지키고 싶었던 것들을 열렬히 지키고 싶어 했다. 균형을 찾기 위해 자주 어금니를 깨물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간은 이를 악물고 가장 열심히 산 시간이라는 것을, 여기 모인 글들을 쓰는 동안 알게 되었다.

김소연, <어금니 깨물기>


지난 한 해가 나에게는 큰 환란이었고 그 안에 나의 무력함을 확인하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러나 두려움을 각오로 바꾸며 어금니를 깨물었다는 김소연 시인처럼 나도 작년을 버티며 어금니 깨무는 법을 배웠다. 두려움을 각오로 바꾸었다.


이제 나는 안다. ‘작년’, ‘그 년’이 내게 가르쳐  . 무력했지만  악물고 버틴  시간이 가장 열심히  시간이었다는걸.


작년에 어떠한 어려움을 당하였더라도 그년에게 쫄지 말고, 지지 말고, 새해에는 모두 어금니 꽉 깨물고 버티기를!

존버하기를!





작가의 이전글 글쓰기의 병목현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