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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G May 10. 2023

공황 한가운데서

공황 한가운데서 공항을 몇 번이나 오가야 했다. 공항 한가운데에서도 공황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건 내 선택이 아니었다. 한국에 계신 아빠가 위독하셨기 때문이다. 한 번은 위기를 넘기셔서 미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두 번째 공항으로 향할 때는 이미 돌아가신 뒤였다. 나는 비행기 타는 것을 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편인데, 아파하시는 아빠를 생각하면서 두 달 사이 한국을 두 번 오갔다. 고행하는 수도사의 심정으로 비행기가 터뷸런스에 흔들릴 때마다 아빠 생각을 했다. 나 같은 환자는 비행기를 탈 때마다 죽음으로 향하는 기분이 드니까 그것은 나에게 완벽한 고행이 맞다.  아빠도 이렇게 힘드셨겠지. 누군가는 거기에 죽음을 비교하는 나를 쪼다라 여기겠지만 사소한 데서 쉽게 패닉을 경험하는 나는 딱한 병자가 맞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글쓰기는 나에게 힐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아픈 상처를 끄집어내 곱씹고 싶지가 않다. 그런데 활자들은 자꾸만 그걸 들춰내라고 나를 종용하고 제멋대로 조합한다. 아빠 잃은 슬픔이 아물어갈 때 뭐라도 쓰자 다짐했었는데 또 이렇게 쓰고 있다. 그러고 보면 참척의 고통을 겪은 박완서 작가가 그 슬픔의 결정체를 고스란히 글로 적고 책으로 남긴 것은 대단한 용기가 아닌가 싶다. 강인한 정신력, 그리고 무엇보다 나 같은 삼류 글쟁이가 아니었으므로 아프더라도 글쓰기는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 것이다.


높은 고도에서 비행기는 난기류를 만나 엄청나게 흔들릴 수 있으나 절대 떨어지지는 않는다. 비행기는 그저 기류에 몸을 맡긴 체 이리저리 흔들릴 뿐 흔들리면서 제 갈 길을 향한다. 내가 수영을 못하는 것과 난기류에 흔들리는 비행기를 못 견뎌하는 것은 내 지체를 어딘가에 내다 맡길 줄 모르기 때문이다. 신앙인이라 하기 부끄럽게도 나는 나를 완벽히 통제하기 원하지, 어딘가에 내맡기려 하지 않는다. 결국 괜찮을 거란 믿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믿음, 신이 나에게 결국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리라는 믿음이 너무 부족하다.


그러나 어떠한 연유로 내가 병을 얻었든, 나는 이제 나의 몸을 최우선으로 돌보려 한다. 그까짓 글쓰기가 나에게 아픔과 고통을 가중시킬 뿐이라면 그만 써도 일말의 아쉬움이 없다.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해 준 조언을 십분 받아들이려 한다.


“이제 남 얘기 그만 듣고 네 얘길 해.”

“이제 남 돌보지 말고 너 자신이나 돌봐.”


공황 한가운데서 성심성의껏 나를 돌보기로 작정한다. 쓰고 싶을 때 쓰겠다.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다짐한 것처럼 당분간 공항갈 일은 안 만들 거다. 누가 아빠 일을 물어보려 전화하면 안 받을 거다. 누군가 고민상담을 위해 전화해도 안 받을 거다. 심심하다고 놀아달라 해도 안 놀아줄 거다. 에어비엔비처럼 내주던 우리 집도 당분간 폐쇄다. Hospitality에 너무 목메고 살다가 hospitalized 되게 생겼으니 나는 나만 아낀다 당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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