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6개월여를 갇혀 지내던 어느 날
남편이 캠핑용품을 중고로 샀다고 톡이 왔다.
헉! 왠 느닷없는 캠핑용품!
여행도 다소 힘겨워하는 내게 캠핑이라니!
너도나도 유행처럼 아이를 데리고 캠핑을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때론 나 귀찮은 것만 생각하지 말고 아이를 위해 캠핑을 다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한 번도 그게 나의 일이 될 줄은 예상치 못했다.
아이가 좀 더 어릴 적에 지인들과 어울려
글램핑이란 걸 한 번 경험한 후로는
더욱더 바깥에서의 잠자리는 못하겠다는
결론을 속으로 내렸었다.
그래 그 경험이면 충분해..
나중에 정 캠핑을 해보고 싶으면
글램핑이나 캠핑카에서 하루 더 자보면 되지..
이렇게 스스로에게 캠핑을 하지 못하는
합리화를 부여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한 오랜 집콕 생활에 나도 많이 지쳐있는데
하물며 아이들은 오죽 심심할까? 싶었다.
남편은 아마도 딸이 심심하고 답답해하는 걸 알기에 그랬으리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를 위해 캠핑을 한번 가보는 것도 괜찮겠지? 하고 마음을 바꿔 먹었다.
그리고 캠핑용품을 50만 원어치나 샀으니
한 번은 다녀와야겠지? 하는 생각도 반은 작용했다.^^
나름 기대 반 걱정 반인 마음으로 캠핑장에 도착해서 첫 장비인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텐트 치기는 비교적 쉬웠다. 펼쳐서 대각선으로
폴대만 연결해 고정시키면 끝이었다.
문제는 타프였다.
한번 시험해보고 간다 했는데
마땅히 칠 때도 없고 그냥 동영상을 보고 이미지 트레이닝만 하다 간 남편은 자꾸 뭔가 고정이
안되고 쓰러지는 타프 장대와 두 시간 가까운 사투를 벌였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나는
캠핑 가자고 한 사람이 타프도
못 치면서 캠핑을 가자했냐고 한바탕 잔소리를
늘어놓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았다.
남편도 그 소리를 들을까 싶어 힘든 내색도
못하고 진땀을 뻘뻘 흘리는 게 눈에 보였다.^^
얼마 후 나름 그럴듯해 보이는 타프를 보고
남편은 한시름 놓는 거 같았다.
타프를 못 치면 캠핑에서 지는 싸움을 한 것이고
타프를 치면 캠핑에서 이기는 싸움을 한 셈이었다.
그리고 남편은 자기 자신과의 자존심을 건 싸움에서 승리를 한 듯 뿌듯해했다.
그리고 더 반듯한 모양을 만들기 위해 자꾸
타프를 고쳤다.
타프 치러 캠핑 온 사람처럼..^^
딸과 내가 무슨 남자가 타프도 못 쳐? 하는 놀림을 받을까 내심 한가득 걱정을 안고 간 남편의
첫 번째 도전은 많은 시간을 잡아먹었지만
비교적 성공적으로 끝을 맺었다.
두 번째 관문은 장작 피우기였다.
캠핑의 꽃은 어쩜 장작 피우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래! 캠핑을 왔으면 장작을 한 번은 피우고는 가야지. 티브이에서 보던 불멍도 한번 해보고..(정말 불을 보고 멍하니 있으면 불꽃에
빨려 들어간 듯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다.)
하지만 장작을 피우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불을 붙이기도 쉽지 않았지만
불을 너무 세게 피면 장작이 금방 타버려 30분 만에 다 탈 거 같았고,
불이 죽을 듯 말듯한 시점에 장작을 넣으면 불이 옮겨 붙지 않았다.
밀고 당기기를 잘해야 불은 적당한 불꽃을 내며
오래 유지될 수 있었다.
열정적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아쉽게 인생을 마감하기도 하고
꽃피지도 못한 인생이 너무 어처구니없게 사라져 버리기도 하는 것처럼
장작 피우기 밀당은 삶의 밀당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어찌 됐건
남편이 처음으로 피운 장작은 토치의 도움을 많이 받으며 두 시간 넘게 불꽃을 이어갔다.
새로운 일에 대한 두 번째 도전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캠핑의 도전은 짐을 가져왔을 때처럼
잘 챙기기였다. 짐을 펼치기는 쉬웠지만 집에 가져갔을 때 손이 많이 안 가게 가져가는 것 또한 캠핑의 중요한 역할이었다.
그래서 앞쪽 구역에 오래된 캠핑러처럼 보이는 아저씨가 혼자 오셔 캠핑을 즐기다 짐을 챙기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다.
모든 짐은 칼같이 각을 맞춰 정리되고 있었다.
자질 구리 한 짐 정리부터 네모난 캠핑용 박스에 담고, 텐트를 접고 의자를 집어넣고 타프를 잘 털어 각 잡아 접고 이 모든 것을 차에 빈틈없이 차곡차곡 담아 넣었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깔끔하고 세련되게 캠핑용품은 정리되었다.
불과 30분 만에.
나이가 지긋해 보이시는 아저씨의 뒷모습이
왠지 모르게 세련되고 스마트해 보였다.
"여보 저 아저씨 잘 봐봐
우리도 갈 때 저렇게 정리를 하는 거야
집에 가서도 손 많이 안 가게.."
집에 가는 날 우리는 좀 일찍 일어나 잠자리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침낭을 하나하나 잘 접어 넣고
베개도 그리고 입고 잤던 파커도 부피감없이 잘
접어 넣었다. 그래야 짐이 줄고 차에 다 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짐은 아침을 먹고 정리하기로 했다.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그릇을 정리하고
먹고 남은 다른 부식품을 정리하고
쓰레기를 분리하고, 얼추 정리가 끝나자 텐트를 집어넣었다.
약 한 시간이 넘게.
그리고 나머지 타프와 의자는 맨 마지막에 집어넣는 걸로 캠핑의 정리를 마쳤다.
아마도 두 시간가량 정리에 힘을 쏟아부은 거 같았다. 아침부터 기운이 쭉 빠졌다.
캠핑에 다녀온 후 우리가 했던 일을 생각해보면
텐트를 치고 밥을 해 먹고 산책을 하고 불을 피우고 다시 텐트를 접어 차에 실은 거 밖에는 없었다.
그런데도 캠핑은 뭔가 다른 삶의 방식으로의 새로운 도전으로 느껴졌다.
편안한 생활에 안주했던 일상으로부터
다시 원시적인 삶으로의 회귀랄까?
요즘 남편이랑 같이 재미있게 보는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그곳에는 속세에서 상처받고 힘들었던 사람들이 자연과 살아가며 상처를 치유하고,
편안함을 느끼며, 삶의 의미를 찾고
행복을 느낀다.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삶의 기로에선 사람들은 오로지 자연과 마주하며
태초 인간의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때
비로소 자아를 발견하고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무척 편안해 보였다.
그곳의 생활은 무엇보다 원시적이다.
자연인은 산을 오르고, 혼자 집을 짓고
필요한 물건을 만들고, 가축을 기르고
물고기를 잡고,
오로지 산에서 버텨내기 위해 하루 종일 고군분투한다.
그러면서 기쁨을 느낀다.
삶의 집착 성공 책임감 등등 모든 것을 다 내려놓는다. 그래서 행복해 보인다.
그래서일까? 그것은 때론 많은 남자들의 로망이 되는 거 같았다.
현실을 뒤로하고 오로지 자신과 마주하고픈 삶을
동경하는 이유겠지..
그래서 어쩌면 자연인이 되고픈 사람이 캠핑러가 되는 것일까?
뜻하지 않았던 나의 첫 캠핑은
아무 생각 없이 시작되었지만
앞으로의 캠핑은
사는 게 좀 힘이 들 때
복잡한 마음이 싫어질 때
사람들에게 좀 지칠 때
훌쩍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몸을 힘들게 해서
정신적 자유를 얻게 하는
사소하지만 행복한 일탈이 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