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고 나서 내가 가장 걱정됐던 건
공부도 아니고, 선생님 말씀을 안 듣는 것도
아니고 친구들과의 관계였다.
혹시 내 아이가 어울릴 친구가 없으면 어떡하지?
친구들한테 치이면 어떡하지?
약간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라
더 그런 걱정이 앞섰던 거 같다.
그래서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오늘 누구랑 놀았어?
친한 친구 생겼어?
하고 묻곤 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이런저런 생활로
정신없이 보내기 때문에
그런 걸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항상 어리석은 질문을 했던 것이다.
누군가와 찐한 인연을 만든다는 건
오래 달리기를 해야 하는 선수처럼 여유를
가지고 뛰어야 하는 것인데
내 마음은 늘 혼자 백 미터 경주를 하듯
달리고 있었나 보다.
몇 달 전 시댁 조카 결혼식에 다녀왔다.
코로나로 인해 모든 여건이 편안하지는
않았지만 결혼식은 화기애애하게 잘 치러졌다.
번거로운 형식을
생략한 결혼식 문화는 나름 단정한
얼굴로 변해가는 거 같아 보기 좋았다.
결혼식의 끝무렵
친한 친구의 장문의 축사가 있었다.
그 축사가 돌아오는 내내
마음 한자리에
가을날의 낙엽처럼 뒹굴거렸다.
귀밑 단발머리 어린 시절부터 만났던 친구는
생일선물로 만화책을 주고받고
시험이 끝나면 같이 햄버거를 먹으러 가고
같이 긴 여행을 하고
같이 시간을 나누고 감정을 나누었다고 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랐지만
거의 모든 일상을 함께 했던 진짜 친구의 눈물 젖은 축사는 하객들을 많이 웃기고 울리고 뭉클하게 만들었다.
그 축사를 들으며 나는 내 친구가 떠올랐다.
친구의 친구였던 내 친구는 나랑은 성향이 많이 달랐다.
나는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향이었고
그 친구는 쾌활하고 활동적인 편에 속했다.
서로 달랐지만 다른 색깔을 침범하지 않았던 우리는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를 바라봐 줄 수 있었다.
내가 그 친구에게 나의 색을 포기하고
적극적으로 다가갔던 건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는
혼자 힘겨운 시간들을 버텨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어머니의 투병으로 힘들고 외로웠던 시절에
나는 가족이 아닌 누군가에게 기댈 사람이 필요했고 그 친구는
내 곁에서 내가 가는 느린 발걸음에 보조를 맞추어
나란히 걸어줬었다.
많은 얘기들을 묵묵히 들어주고
같이 고민해 주던 친구.
그래서 덜 힘들고 덜 지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랑 비슷한 길을 걷고 있던 그 친구는 아직도
아프신 어머니와 함께 무겁고 힘든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나는 친구에게 기댈 수 있었는데
내 친구는 한결같이 자신의 색을 유지하며
나에게 기대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늘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어쩌면 다른 환경에서 같이 느리게 발맞춰 걸어주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늘 미안하다.
인생이란 여정에 친구는 가족보다 더 많은
일상을 공유하는지도 모르겠다.
가족에게 서운한 일, 회사에서 스트레스
받는 일, 새로 만나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허전함, 육아를 하면서 속상하고 힘든 일등
이런저런 일상을
같이 얘기하면 힘든 마음이 좀 덜어진다.
그리고 그런 자리에 나의 찐친은 항상 나의 응원군이 되어서 나를 지지해준다.
그 덕분에 나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참 고마운 일이다.
나의 친구가 그랬듯
나도 친구에게 지금이라도 같이 발을 맞추어
걸으려 한다.
그리고 내 아이도 언젠가는
자신만의 찐친과 함께 나란히 걸어가기를
소망한다.
(사진-네이버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