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잠이 많은 나에게 커피는 항상 생명수와 같았다.
커피를 마셔야 정신이 차려지고
하루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커피 종류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블랙도 믹스도 또 다른 어떤 것도..
뭔가 집중해야 하는 일을 할 때도
혼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릴 때도
친구와 전화로 수다를 떨 때도
머리가 아플 때도
피곤한 날에도
화가 나거나 마음이 불안 한때도
덥거나 추울 때도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어 스산할 때는
더더욱
커피는 늘 나의 시간들 속에 마주 앉아
나의 흐트러진 생각들은 정리해주는
한 모금의 정화수이기도 했다.
결혼 전 가끔 친구를 만날 때 들리던 커피숍은
결혼 후 아기를 낳고는 가본 적이 없었다.
아이가 아주 어릴 적에는 아이와 함께 커피숍에 간다는 건 아예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고
주부가 된 이후의 커피숍은
시간에 대한,
돈에 대한 사치라고 느껴지기도 했었다.
주부에게 3000원 이상의 커피값은
아이의 기저귀 값이나
분유값으로 머릿속에서 계산되기 때문이다.
아이가 어릴 적의
커피는 항상 내 생활 속에 있었지만
비싸고 고급스러운 커피가 아닌
인스턴트커피가
항상 그 역할을 대신했다.
그리고 그때의 커피는 충분히 내가 살아가는
하루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힘이 됐었다.
조금 더 세월이 지나 커피숍도 전업주부 마음을 아는지 밖에서 사 먹는 커피숍 커피가
박리다매 전략으로 저렴한 커피가 나오기 시작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천 원!
맛이 엄청 좋진 않았지만
천 원짜리치곤 그럭저럭 괜찮았다.
집에서 먹는 거보단 비싸지만 내 손을
거치지 않고 누군가로부터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대접받는 기분으로 천 원을 쓰는 건
별로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동네 아기 엄마를 만나도
기분 좋게 커피 한잔을 건넬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가끔 산책을 하면서도
뭔가 기분이 울적한 날
육아로 인해 심신이 지친 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테이크 아웃해서 걸었다.
그러면
내 안에서 빠져나간 에너지와
생각들이 다시 차오르며 충전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가 아이가 조금 더 크고
이제는 아이와 함께 가끔 커피숍에 가서
한두 시간 얘기하고 나올 수 있는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늘 비슷한 일들의 이야기지만
나는 커피를 한잔 마시며
아이는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시며
마음속의 이야기들을 꺼내어 놓을 수 있었다.
산만하게 이리저리 자라나던 마음은
한결 가볍게 가지치기를 한 나무처럼
정돈되어 있기도 했다.
남편은 커피값을 아까워했지만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산책을 하며
커피숍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건 나에게
자꾸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서글픔을
대접받을 곳 없는 전업주부의 허전함을
몸은 좀 편해졌지만 정신적으로 힘이 드는
엄마로서의 무게감을
내 인생의 아쉽고 허탈한 마음을
위로해주는
마법의 묘약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