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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다쟁이 Jan 26. 2022

인연을 만들어 준 월남쌈(산뜻)

남편과 나는 늦은 나이에 친구의 소개팅으로 만났다.

늦은 나이의 소개팅은 서로에 대한 기대감이 별로 없는 채로 하루를 어찌 잘 때울까 하는 마음으로 나가기 마련이다.

비가 오는 날, 나는 검은 원피스에 청재킷을 입고 어쩌다 보니 약간 허름해 보이는 투명한 우산을 쓰고 남편과 처음 만났다.

꾸며도 크게 티가 나는 스타일도 아니고 해서

수수한 차림으로 소개팅 자리에 나갔다.


주황색 우산을 쓰고 나타난 남편의 모습은 나름 깔끔하고 댄디한 모습이었다.

키도 크고 외모도 소개팅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준수한 모습이었다.


첫인상에서 나에게 살짝 실망한 모습(남편은 내가 비닐우산 같은걸 쓰고, 촌스런 원피스를 입고 나왔다고 생각했다)을 한 남편과

'멀쩡한 사람이 왜 여직 장가를 안 가고 소개팅에 나왔지?'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한껏 치켜뜬 나는

어색하지만 나이가 주는 편안함으로

주절주절 수다를 떨며 첫 만남을 가졌다.

남편의 나에 대한 첫인상은 지극히 평범하고

외모가 끌리는 편은 아니지만 성격이 좋을 거 같은 털털한 사람이었고,

나의 남편에 대한 첫인상은 여전히

'허우대 멀쩡한 사람이 왜 여직 장가를 안 갔을까?' 하는 의심을 품은 호기심이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의 어느 날

남편은 문자로 "등산 한 번 가실래요?"

하고 문자를 보내왔다.  

어차피 나는 성격 좋은 여자로 남편에게 각인되었기에

답장도 농담조가 섞인 말투로 상대방이 듣기 좋게 던졌다.

"○○씨와 함께라면 어디든 괜찮습니다.^^"


그렇게 잡힌 등산 계획의 목적지는 용문산이었다.

학창 시절 언젠가 한 번 가봤던 용문산은 용문사 절까지 사브작사브작 걷기 좋고, 주변 경관도 아기자기하고,

천년 된 은행나무의 위용이 자리했던 고즈넉한

곳으로  남아있었다.


7시쯤 만나기로 했던 나는 새벽 3시쯤부터

산에서 먹을 도시락을 싸고 있었다.

무슨 마음이었는지 그 당시 요리에는 관심도 

없었나는 도시락을 싸기 위해 전날 양손 가득

장을 보고, 김밥을 잘 싸려고 작은 압력밥솥도

하나 준비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무슨 생각으로 그랬을까? 싶지만

호기심과 함께 첫인상에 대한 호감이 나를

그런 열정으로 몰아넣은 것이 아닌가 싶다.


도시락으로 준비한 음식은 월남쌈과 김밥이었다.

월남쌈은 요리라고 하기엔 어딘가 좀 부족하지만

그 당시에는 많이 접해보지 못하던 음식이었고,

나름 모양새가 폼나 보일 거 같았다.

일일이 페이퍼에 말아서 사선으로 자른 월남쌈은

내가 왠지 요리 꽤나 했던 사람으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김밥은 밥이 살짝 되직해서 설겅설겅 입안에서

재료가 따로 돌아다녔지만 최선을 다한 덕에 모양은 그럴듯했다.

집에 있던 두릅도 삶고 후식으로는  딸기와

커피를 준비했다.

먹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양손 가득한 짐은  식구가 소풍 가는 날 같았다.


새벽부터 김밥이랑 월남쌈을 싸느라 나는 이미 탈진상태여서 산을 오르는지,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입이 까끌했지만,

남편은 되직한 밥으로 싼 김밥과

낯설지만 산뜻한 월남쌈에 이미 감동하고, 

폭풍 흡입하기 시작했다.

산처녀도 아닌 여자가 싸온, 뜬금없지만 몸에 좋다는 두릅과 초고추장, 맛있는 딸기와 커피는

자취를 하며 밥을 사 먹으러 나가기 귀찮아서 초코파이 두 박스로 주말 끼니를 때우던 남편에게는 다시 올 수 없던 호사였던 것이다.


그리고 한순간에,

그날 내가 싼 월남쌈과 김밥은 나를 굉장히 착실하고, 배려 깊고, 부지런하고, 참한 여자로 탈바꿈시켰다.


월남쌈이 인연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인연이 남편과 나를 인연으로 만들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우리는 그로부터 6개월쯤 후에 결혼을 하게 됐다.^^



옛날 어른들은 밥을 같이 먹어야 정이 생긴다는

말씀을 하신다.

어릴 적 밥때가 돼서 집에 오시는 손님에게도

항상 식사는 하셨는지 여쭤보고

식사 대접을 하는 것이 도리인 양

번거롭던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밥을 같이 먹고, 식사 대접을 하는 건

시간과 물질적인 그 어떤 것보다도

내가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내어주는 일이라

여겨진다.

누군가와 밥을 먹고,

누군가를 생각하며 밥상을 차리고,

정성을 들이는 시간 속에는 우리가 재료로

넣지 않은  정이나 사랑이라는 양념이 저절로 버무려지는 같았다.


남편과 나의 인연은 추억이라는 글자로 이미 

멀어져 있지만,

그때 내가 만들었던 어설픈 월남쌈과 김밥에는 말로 표현하지 않았던 사랑과 정이라는 양념이

베여있었나 보다.


미세먼지로 날씨가 뿌연 주말..

마음에도 미세먼지가 쌓이는 것처럼 축 쳐지는

하루다.

신선한 야채를 먹으면 왠지 마음에 쌓인

미세먼지를 씻어낼 거 같았다.

월남쌈을 떠올리며 나는 피식하고 웃음이

지어졌다.



(재료 준비)




(새우는 삶아내고, 양념한 소고기는 볶았다.)



(야채는 채 썰어 준비)

(소스는 칠리소스와 참깨 소스를 준비)


(월남쌈 페이퍼에 올린 재료들)



(월남쌈 완성)



재료;

오이, 당근, 양상추, 달걀,  양파, 파프리카
새우,  소고기, 파인애플 통조림


나만의 레시피;

-야채는 4,5센티 간격으로 채썰기.
-새우는 후추, 소금으로 간해서 삶아내기.
-소고기는 간장, 설탕, 마늘, 참기름, 파,
  미림을 넣고 불고기 양념으로 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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