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

by 수다쟁이


아이를 낳고 15년쯤 전업주부로 살았다.

나는 엄마라는 이름이 좋았고 그렇게 사는 게 행복했다. 아이가 크는 걸 내 눈으로 지켜보고 아이에게 부족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소박하고 푸근한 정서를 물려주고 싶었다. 물려줄 돈은 없지만 따뜻한 마음, 긍정적인 생각, 타인에 대한 배려를 할 줄 아는 심지가 굳은 사람으로 아이가 자라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멋지게 성공하는 것보다도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가슴 깊이 넣어주고 싶은 것이 나의 작은 소망이기도 하다.


배움이 크지 못하셨던 나의 엄마는 바쁘게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으로 삶을 가르쳐주셨던 것 같다. 장남인 아버지께 시집을 오신 엄마는

부모가 안 계신 두 동생들을 시집 장가를 보내시고,

방 한 칸에서 이모의 아들인 사촌오빠를 데리고 와 새벽서 너 시에 일어나 연탄불에 새벽밥을 해주며 학교를 보내셨다고 했다. 간혹은 아프신 큰집 할아버지를 아버지가 모셔와 돌보시기도 했고, 또 간혹은 갓 시집온 친척 아주머니의 친정엄마가 되어주기도 했다. 내 기억에 엄마는 늘 새벽에 일어나셔 도시락을 싸셨고, 큰 대야에 담긴 어마 무시한 손빨래를 하셨던 모습도 남아있다.

그런 피곤한 일상 속에서도 엄마는 늘 기쁘게 사람을 맞으셨고.. 늘 따뜻하게 안아주셨다.

엄마가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었던 따뜻한 마음과 따뜻한 정서가 있었기에 나는 평범한 삶이지만 마음만큼은 언제나 풍요로웠다.

하지만 살아보니 그건 참 쉬울 것 같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마음 안에는 늘 사랑을 품고 현실 속에 주어지는

버거운 삶은 삶대로 지고 살아온 엄마의 삶과 사랑을 미약하게나마 내가 따라 걸을 수 있을까?





아이가 어릴 때는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잠을 재우는 것도, 밥을 먹이는 것도, 아이와 놀아주는 것도 몸이 지쳐 늘 질질 끌려가야 하는 날들이 많았다.

하지만 아이가 점점 크기 시작하자 내가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일들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육체적인 일들이 줄기 시작하는 건 편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엄마의 역할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 허탈감과 무기력감도 같이 주었다.


내가 열심히 살아야 아이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데 주부로서 나는 늘 같은 패턴의 느슨한 살림과

점점 줄어가는 것 같은 엄마 역할이 이제는 아이에게는 아무런 목적 없이 살아가는 나태한 중년의 아줌마처럼 보일 거란 생각 때문에 주부라는 자리가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간혹 아이는 "엄마는 꿈이 뭐야?

젊을 때 뭘 하고 싶었어?"라고 질문을 했다.

"글쎄!"

"막연하게 내가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선생님이 될 수 있다면

글을 쓰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

사실은 꿈이 없다고 말하기에는 아이에게 부끄러워 그럴듯하게 지어낸

내가 만들어 낸 나란 인생 속에 펼쳐진 소설 속의 꿈이었다.


말을 내뱉고 나자 문득 나라는 사람의 존재감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라는 물음표가 그려졌다.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건 뭐지?

선생님은 남들이 보기에 좋아 보일 것 같은 직업이었기에 하고 싶었던 것 같았고,

글을 쓰는 건 내가 좋아하는 일이긴 하지만 남들과 다른 특별한 재주는 없어서, 또 그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열정도 없어서 시도하지 않았던 막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이에게 엄마가 할 수 있는 무언가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예전의 우리 엄마가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고 끊임없이 새로운 일에 도전했던 것처럼..

나도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막연하게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글쓰기를 시작했다. 꼭 무엇이 되지 않아도 좋은 글쓰기..

내가 좋아서 즐거움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글쓰기..

무언가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글쓰기..

그리고 그런 글쓰기의 시작의 첫 관문은 브런치라는 플랫폼이었다.


친구가 알려준 브런치라는 글쓰기 플랫폼은 일단은

글을 써서 합격을 해야지만 글을 쓸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단다. 코로나로 지루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나는 처음으로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작가 신청을 했다.

하지만 특별할 것 없는 일상 글들은 번번이 탈락을 했다.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해 본 도전이 두 번 세 번째는 오기가 생겼다.'아! 왜 안되지?'

'하긴 내 글은 콘셉트가 없잖아 특별한 것도 없고'

나도 사실 내 글이 무엇이 문제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한두 달에 한 번씩 시도해보던 브런치 도전은 1년 만에 열 번째 도전 끝에 합격이란 메시지를 받게 되었다.

탈락 메시지가 다섯 번이 넘어가자 합격이란 기대감도 없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 어때?'

어차피 재미로 시작한 건데..라고 나 스스로를 다독였다.


옆에서 이것을 지켜보던 딸은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엄마의 도전을 바라보다가 시간이 갈수록 나의 글을 시큰둥하게 바라봤다.

"엄마! 이번에도 안될 거 같아

기대하지 마.."

엄마 글이 나쁘진 않지만 그렇다고 썩 좋지도 않으니 너무 실망하거나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다 열 번 만에 이루어진 브런치 합격은 나보다 딸에게 더 큰 감격을 주었다.

"꺅! 엄마! 끊임없이 도전하니 되긴 되네.."

별 것 아니지만 별 것 인 것 마냥 딸은 나의 도전에 대한 성취를 뛸 듯이 기뻐해 줬다.


"○○아! 네가 이렇게 기뻐해 주니까 엄마가 오히려 더 뿌듯해!"

뿌듯함의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내가 포기하지 않고 1년 동안의 시간들을 꾸준히 애써왔다는 것이다. 떨어지면 뭔가가 부족했겠지..

하며 브런치에 글을 쓰는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으며 부러워하기도 하며 배우려고 노력했었다.

그리고 나의 아이에게도 포기하지 않고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꾸준히 도전하면 언젠가는 이루어진다는

작은 성취감과 기쁨을 알게 해 준 것이다.


내가 써 내려가는 작고 소소한 일상 속에서 나는 아이에게 내가 느끼는 작은 마음의 소리를 전해주고 싶다.

우리 엄마의 세포와 피 속에 담긴 따뜻한 정서가 나한테 전해졌듯이 내 안의 세포 안에 담겨있는 작은 소리와 울림이 나의 아이에게도 전달되기를 바래본다.

나의 영원한 구독자인 나의 딸을 위해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그리고 한 걸음 나의 꿈에도 발걸음을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