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것

by 수다쟁이


작년 이맘때 여름휴가를 당겨서 서해의 태안반도 근처 수목원을 거닐고 있을 때쯤 친하게 지내는 대학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먼저 전화하는 친구는 아니라서 전화를 받기 전에 무슨 일일까? 싶었다.


"어! 민지야 무슨 일이야?" 마치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아는 것처럼 나는 전화를 받았고

민지는 나에게

또 다른 대학 동기의 안 좋은 사실을 전했다.

"어 다른 게 아니라 경민이가 몇 달 전부터 머리가 계속 아프다 했는데 병원에 갔더니 뇌종양 진단을 받았대"

대학 동기였던 경민이는 나랑은 친분이 많지 않고 간간히 민지로부터 소식만 전해 듣던 친구였고, 민지랑은 30년 우정을 간직해 온 절친이었다. 머리를 바위에 부딪힌 거 같은 황망함을 안고 나에게 전화를 걸어온 민지의 목소리에는 불안함과 착잡한 마음이 전해졌다. 한동안 마음을 추스를 수 없어 눈물이 계속 흘렀다고도 했다.


"아! 어쩌냐?"나도 탄식할 말밖에는 달리 다른 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곤 대략적으로 내가 알고 있는 뇌종양에 대한 정보를 전해주었다. 뇌종양으로 오랜 투병 끝에 돌아가신 엄마 때문에 그 병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양성이라면 수술을 잘하면 별일 없을 거야.. 괜찮겠지.."

라는 긍정적인 말을 먼저 해줬다.

"그리고 만약에 악성이라면 글쎄! 사람마다 병의 예후는 다 다르니 열심히 치료를 받는 수밖에는.. 별일 없을 거야.."


갑작스러운 소식으로 인해 가족들이 얼마나 힘들고 절망에 빠져있을지 미루어 짐작이 갔기에 그 소식을 전해 들은 나도

한동안 진흙탕에 빠진 것 같은 착잡함으로 괴로웠다.


휴가를 끝낸 얼마 후 다시 민지의 전화를 받았다.

"경민이는 수술을 했는데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대..

이유는 잘 모르겠나 봐 왜 그런지.."

"아! 그래?... 어쩌니.."


더 이상 위로해줄 말도 해야 할 말도 찾지 못했다.

나는 뇌종양이라는 병을 감당해야 하는 아픔과 가족들의 기다림과 아이들이 갑자기 엄마를 중증환자로 받아들여야 하는 그 황당하고 먹먹한 시간들을 어찌 견딜까 하는 안타까움과 내가 겪었던 시간들이 오버랩되어서 마음이 괴로웠다.

그리고 어쩌면 아픈 친구보다도 가족들이 감내해야 하는 아픔들이 더 깊고 진하게 헤아려졌다.


다행인 건 남편이 굉장히 무던하고 진중하고 꼼꼼하고 참을성이 많은 사람이라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경민이가 남편을 참 잘 만났구나! 그런 사람이 참 드물지.." 하고 전화를 끊었다.




"경민이는 좀 어때?" 간간히 민지와 통화를 할 때마다 경민이의 소식을 물었다. " 어 의식은 좀 있는 거 같은데

욕창도 심하고 의사표현도 아직은 어렵고 그런가 봐."

"아이들은 잘 지낸대?"

"어 다행히 동생 내외가 근처로 이사를 가서 돌봐주고 있나 봐.."


가족이지만 쉽게 할 수 없는 일들을 경민이네 가족들은 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민지는 가끔 아이들에게 편지와 함께 정성 들인 선물을 전해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삼총사처럼 지내던 민지와 경민이의 또 다른 친구인 효은이는

매주마다 시간이 나면 의식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은 경민이를 병문안 한다고도 했다.

그들 셋은 30년 지기 친구로서 서로가 맺고 있었던 그들만의 끈을 끈끈이 부여잡고 있었다.

아픈 경민이의 아이들도 엄마에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려준다고도 했다.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돌이켜보면 내가 엄마의 병간호로 힘든 시절을 보낼 때 상황의 아픔을 받아들이는 괴로움도 컸지만

그런 아픔을 감당해야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람들에게 나라는 사람과 엄마의 존재는 잊히고

나만 스스로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외로움이 더 힘들었던 것도 같다.

그 외로움은 외딴섬에 표류해서 배 한 척 지나가지 않은 망망대해를 보고

나 혼자 소리 지르는 바보 같은 허탈감과 비슷했다.

조금씩 잊힌다는 건 많이 아픈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가족들이 외롭지 않게, 지치지 않게

옆에서 안부를 물어주고, 아이들을 챙기고

주기적으로 병문안을 가주고 마음의 끈을 계속 놓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끈은 외딴섬에 표류한 가족에게 다시 소리칠 수 있는 작은 힘을 주는 거 같았다.




그리고 일 년이 흘렀다.

간간히 문병을 가거나 소식을 전해주던 효은이란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지난주에 코로나 검사를 하고 면회가 가능하다고 해서 면회를 갔었는데

경민이가 말은 못 하지만 말귀를 다 알아듣고 고갯짓으로 의사소통을 해..

30년 전 학교 친구들도 다 기억하고

내가 새로운 일을 시작해서 개고생 한다니까 웃더라고..

욕창도 많이 좋아지고 팔도 움직일 수 있어.."


효은이란 친구는 기적 같은 일들을 나와 절친인 민지에게 알려왔다.

일어날 것 같지 않았던 희망의 기적들이 조금씩 일어나고 있었다.

안타까움의 말들도 긍정적으로 변해갔다.

"경민이는 암튼 대단해 " "누가 봐도 남달라"


아몬드라는 소설에서 윤재의 엄마가 윤재와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사랑으로 다시 기적적으로

살아난 것처럼 경민이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가족들과

30년 지기 친구들의 보이지 않는 마음의 끈이 닿아 있지 않을까?

갑자기 가슴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사진; 네이버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