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의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봉우리가 보이더니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햇살에 기대어 살포시 수줍은 얼굴을 내민다.
꽃이 피는 걸 놓치지 않으려면 순간순간
잘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심결에
피었다 인사도 하지 않은 채 떠나가버리기 때문이다. 봄은 청춘처럼 늘 그렇게 짧다.
어느덧 나도 나이 50을 넘겼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엄마는 50이 되니 만사가 귀찮고 일하기가 싫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어릴 적에 듣던 50이란 나이는 너무 까마득해서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마음의 동조를 했던 거 같다.
막상 내가 50이 되고 보니 그때 그 동조가 어린 마음에만 있던 동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50이 되니 이상하리만큼 만사가 귀찮아졌다.
집안일도, 먹는 일도, 소비욕구도, 인간관계도..
마치 무기력증에 걸린 사람처럼
모든 일이 시들해지고 즐거울 일도 흥분할 일도 없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살아온 날들과 살아갈 날들의 무게중심이 50을 넘자 반대로 기울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친구 시어머님의 부고가 있었다.
긴 투병은 아니셨지만 모든 죽음은 늘 안타까움과
함께 했다.
꼬장꼬장하고 단정하게 살아오신 80 노인의 성품은 아프시면서 더 예민해지시고
친구의 정성스러운 간병에도 불평이 많으셨다고 했다.
아마도 당신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으리라 짐작해본다.
그리고 결국엔 서운함을 품으신 채 눈을 감으셨다고 했다.
보내는 이도 떠나는 이도 참 마음이 아픈 일이었다.
막연하게 80이라는 나이가 되면 살아가는 일도
죽음이라는 것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거 같지만
모든 이들에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건 참 어려운 일인 거 같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늘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막연한 두려움을 지닌 채로 마음과는 먼 곳에 자리하기 때문이다.
문득 봄이 오는 길목
꽃이 피는 날들 속에
꽃이 지는 모습도 같이 그려본다.
꽃이 지는 그림은 슬프고 처연하지만
꽃잎 하나하나가 바람에 실려 흩날리는 뒷모습은
그려질 수 없는 그림처럼 아름답기도 하다.
먼 훗날
내가 마지막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매화꽃이 바람을 타고 흩날리는
봄날의 그림이었으면 좋겠다.
오늘따라 활짝 핀
갱년기의 매화꽃은 그지없이 싱그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