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플 운동화를 사고 나이를 디스카운트받다.

by 수다쟁이


주말 오후 딸의 운동화를 사러 스포츠 매장을 들렀다.

단정해 보이는 스니커즈를 사려고 이것저것 신어보는데 매장의 상냥한 직원이 일정 금액이 넘으면 2만 원을 할인해준다고 했다. 뜻하지 않은 할인 얘기에 득템이라도 한 듯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아싸! 이 참에 내 운동화도 하나 사야지'하고

내 것도 같이 고르기 시작했다.

물욕은 어쩜 뜻하지 않은 할인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인가 보다.^^


깔끔해 보이는 스니커즈는 심플하고 이뻤지만

바닥이 딱딱해서 어쩐지 신으면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했다. 이제는 이쁜 거보다는 편한 걸 추구해야 하는 나이라는 게 잠시 서글펐지만,

마음을 바꿔 워킹화로 눈을 돌렸다.

의외로 깔끔한 신발이 눈에 들어왔고 착용감도 스니커즈보단 훨씬 편했다.

느닷없이 몇 개의 스니커즈를 신어보던 딸에게도 같은 신발을 권했다.


우리 커플 운동화 사자~~^^

난데없는 커플 운동화 제안에 딸은 멀뚱해했지만

그다지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너도 딱딱한 스니커즈보다는 워킹화가 더 편할 거야.." "키 크려면 운동도 많이 해야 하니 아무래도

이게 더 좋을 거 같아" 하며 커플 운동화에 당위성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불현듯 커플이라는 말이 나를 설레게 했다.

그것도 어린 딸과의 커플이라니..

남편과도 한 번도 커플티나 운동화를 사본 적이 없었다. 왠지 같은 옷, 같은 신발 속에는

나라는 존재는 없이 촌스러움을 첨가하는 거 같아서였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꼽으라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거 같아서였다.

그건 젊은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지 우리처럼

어정쩡한 중년에겐 어울리지 않는 일인 것처럼 여겨졌다.


왜 꼭 굳이 촌스럽게 똑같은 걸 입어?

자기한테 어울리는 걸 입지? 하며

커플티나 커플 운동화를 착용한 사람들을

왠지 모르게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었다.

생각해보니 그건 어쩜 부러움의 시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할 수 없어서

외면하려고 했던 일들..


사실 젊은 연인들이 커플티나 커플 운동화를 입고 있으면 눈길이 한 번 더 가고,

젊은 아기 엄마가 아기랑 예쁜 커플 옷을 입고

있으면 이뻐 보였다.

커플이란 것에는 젊음이란 무늬를 새겨 넣은 거 같기도 하고, 색깔로 치면 핑크빛이나

새파란 하늘빛 진초록 빛이 담겨있기도 했다.


그래서 어색하지만 나도

한번 시도해보고 싶어졌다.

내가 촌스러워지는 걸까?

아님 늙어가는 나를 감추고 싶은 것일까?

아님 나만큼 키가 커가고 발이 커가는 딸이 대견해서일까?

딸과 세대차이를 없애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봄이 오는 설렘 때문에 마음까지 같이 부풀어 오른 것일까?

그도 아니면 할인율 때문에 과감해진 것일까?


어쩌면

나도 요즘 사람인가 봐..

아직은 늙지 않고 젊어..

나도 커가는 딸이랑 발맞추어 걷을 수 있겠지..

세대차이는 무슨 세대차이..

다 같이 사람은 나이를 먹는 거지 뭐~~

나만 나이를 먹나?^^

이런 위로를 받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호기롭게 워킹화 두 개를 사고

신고 갔던 신발은 쇼핑백에 넣었다.

딸과 한 발 두 발 새 신발을 신고

발맞춰 걸어오는 내내 나는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러면서 딸에게 물었다.


신발 너무 이쁘지?

우리 커플 운동화 너무 잘 산거 같아 ~~^^

산 김에 내일은 아빠 것도 하나 살까?


커플 운동화를 사고 나는 친절하고 상냥한 직원에게 2만 원을 할인받은 게 아니라

20년의 나이를 디스카운트받은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