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에서의 조우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환대와 순환 -

by 수다쟁이

개학을 며칠 앞두고 남편이 갑작스러운 휴가를 계획했다. 일본에 사는 남편 친구 @@씨네 가족이 고향인 문경에 와있다고..

우리 가족도 여름휴가를 가을로 미루고 물놀이 한 번 못해본 방학이 아쉬움이 남았었는데

방학을 며칠 남기고 떠나게 된 문경으로의 휴가는

지루했던 여름을 붙잡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그리고 어쩌면 @@씨의 가족들과 만난다는 것이 휴가의 설렘을 한층 더 배가시켰다.


문경이란 지역은 스치듯 지나친 기억밖에는 없는 곳이라 큰 기대 없이 방문한 곳이지만 예상외로

산을 품고 둘러싸인 마을이 무척이나 고즈넉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산을 따라 자리한 계곡도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도 막바지 여름을 붙잡고 떠난 여행에서 만난 뜻밖의 행운이었다.




일본에 사는 남편 친구는 8년 전 우리 가족이 첫 해외여행을 계획했을 때 미안하게도 일주일이나 숙박을 신세지고 어릴 적 친구라는 이유로 민폐 아닌 민폐를 끼쳤던 미안하고도 고마웠던 친구다.

한국에 올 때마다 간혹은 잠시 얼굴을 볼 때가 있었지만

이렇게 가족들과의 오랜만의 조우는 8년 만이다.


아이가 6살 때 설레는 맘으로 아이의 첫 여권을 만들고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아이에게 "비행기를 탈 때는 신발을 벗고 타는 거야"하고

진담 같은 농담으로 장난을 치며 우리는 비행기에 올랐다. 정말 친구네만 믿고 아무런 계획 없이 갑자기 떠난 여행이었다.

두시 간 남짓 비행기를 타고 오사카 공항에 내린 우리는 공항까지 픽업 나온

친구 부부와 함께 친구의 집인 일본의 연립주택으로 향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낯선 일본에 낯섦을 느끼지 못했던 건 아마도 친구 부부의 마중과 번거롭지 않은 여정에서 오는 친근감 때문인 거 같다.


누군가를 집으로 초대해 숙박을 책임진다는 건 친구의 아내 입장에서는 참 부담스러울 텐데.. 하는 생각에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웠지만, 무작정 남편을 따라 아무 준비도 없이 갑자기 떠난 여행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나도 미안한 마음의 짐을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왠지 모르게 미안하다^^)


타국 생활의 외로움 때문인지 남편 친구는 한국에서 들어오는 우리를 몹시 반가워했었다. 그리고 일본인인 와이프도 처음 보는 우리 부부와 아이를 낯가림 없이 대해주었다.

아이들은 6살 4살 8살 같이 놀기에 충분히 좋을 나이였고 만나자마자 친해졌다.

젤 맏언니인 ○○은 동생들을 야무지게 잘 챙겼고, 언니로서 배려심도 아이답지 않게 세심했다.

동생 ◇◇은 누구에게나 스스럼없이 안기고 우리 부부를 잘 따르고 신기해하면서도 좋아했다.


우리 부부와 딸은 미안하면서도 고마웠고 또 미안하면서도 편안한 여행이었다.

아는 집을 거처로 두고 낯선 해외에서 여행을 한다는 건 이미 한 꺼풀 보호장비를 몸에 두른 것과 같았다.


하루 이틀은 우리 가족만의 시간을 가지고 도시를 둘러본 적이 있었는데, 초행길에 정보도 없고 준비 없이 간 여행길에 남편과 나는 의견 충돌도 많고, 어디를 갈지, 무얼 먹을지, 어떤 열차를 타는 게 맞는지 많이 싸우고 우왕좌왕했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나머지 며칠은 @@씨 가족의 안내에 따라

같이 움직인 여행이어서 순조롭게 이어졌었다.

일본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을 보고, 맛볼 수 있었던 것을 맛보고, 그리고 일본이란 나라를 경험할 수 있었던 여행이었다.


일본이란 도시에 대한 기억은 넓은 편의점, 깨끗한 거리, 료칸 체험과 온천 그리고 온갖 종류의 자전거를 탈 수 있었던 곳(아이는 지금도 온갖 종류의 자전거를 탔던 이곳을 기억한다), 그리고 먹거리로는 스시와 돈가스, 라면이 기억이 남는다.


나머지는 온통 같이 추억을 공유했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다.

불편했겠지만 항상 편안한 얼굴로 아침을 마련해주고,

설날 아침에는 일본식 떡국이라며 떡국을 끓여주던 @@씨의 아내와

일본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곳을 안내하고 아이들이 즐겁게 놀 수 있는 곳을 찾아 같이 발걸음을 해 준 남편 친구 @@씨

어린이가 어린 동생들을 챙기며 양보하느라 고생했던

시종일관 자유로운 영혼인 ◇◇은 우리에게 큰 웃음과 사랑을 주었다.


그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 받은 나는 아직도 8년 전의 기억이 엊그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8년이 지난 문경에서의 @@씨네 가족들과의 조우는

행복했던 일본 여행의 시간들로 우리를 잠시 데려다 놓았다.

아! 그때는 이랬었는데..

아이들은 어렸고, 귀여웠었고, 우리들은 나름 젊음을 간직했던 순간들이었다.

지금은 훌쩍 커 버린 아이들과 조금은 늙어버린 우리들이 있었지만 추억을 안고 만나는 오랜만의 조우는 시간의 거리를 훌쩍 뛰어넘었다.


아이들에게 나는 잘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들을 사진첩을 들추며 안내했다.

대접받은 사람만 기억하는 시간들이 더 많았지만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그 시절의 행복한 시간들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다시 만난 문경 여행에서 우리는 모노레일 기차를 탔고

얼음장같이 차가운 계곡에서 물놀이를 했다.

같이 칼국수를 먹고

간혹 옛날 학창 시절을 들추어 이야기를 했다.

마지막 밤에는 문경시내의 한적하고 인심 좋은 식당에서 푸짐하게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식당 사장님은 인심이 좋으셨고, 가족 모두는 기분 좋은 한 끼에 짧은 만남의 시간을 풍성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에 둘러싸인 문경의 산골은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빛내주기 위한 멋진 배경이 되어 주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버리면 아마도 아이들은 지금의 시간들을 잊을 것이다. 또 다른 무수한 추억들이 아마도 그 기억들을 빼앗아가고, 그리고 지금의 한국 여행에 대한 기억들도 옅어지겠지?


하지만 우리 가족이 일본 여행에서 친구 가족에게 받았던 환대와 추억이 저장되어 있는 것처럼

@@씨네 가족에게도 문경에서의 짧았던 만남과

반가움의 마음이 긴 여운으로 저장되길 바래본다.

그리고 또 언젠가는 그 추억들을 같이 들추어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환대는 이렇게 순환하면서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그럴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 준 만큼 받는 관계보다 누군가에게 준 것이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세상이 더 살 만한 세상이 아닐까. 이런 환대의 순환을 가장 잘 경험할 수 있는 게 여행이다.

김영하 작가-여행의 이유 p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