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지금 행복하잖아?

-갱년기의 시간-

by 수다쟁이

자주 일상을 공유하는 친한 친구가 다른 얘기 끝에

"넌 지금 행복하잖아"라는 말을 했다.

느닷없는 행복이란 말에 풋하고 웃음이 나왔다.

나의 친구는 커리어 우먼이다. 40이면 수명을 다한다는 디자인 업계에서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나름 잘 나가는 친구가 나의 보잘것없는, 어쩜 무료한 일상을

행복이라고 얘기해주고 있었다.

부러움의 시선은 어쩌면 그 친구에게 닿아있는데 말이다.


"행복? 글쎄!

잘 모르겠다. 내가 지금 행복한 건지는.."

아이가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자라주고 결혼하면서부터 직장을 그만두고 싶다던 남편이

아직은 회사에서 버텨주는 것이 참 고마운 일 이긴 했고 감사하기도 하다.

무탈한 것을 행복이라고 느끼며 살기도 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빈구석 때문에 쉽사리

행복이란 단어가 나의 생각의 책장 속에는 잘 끼워지지 않는다.




나는 지금 갱년기가 도래했다. 열이 확 오르며 식은땀이 주르륵.. 더워서 흐르는 땀인지 나만 흐르는 땀인지 잘 분간이 가질 않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알 수 없는 곤욕을 치르지만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다. 땀은 생각보다 금방 가라앉고

더우면 샤워를 한 번 하거나 얼음을 탄 시원한 석류즙으로 몸의 온도를 달래 본다.

치열한 고통에 비하면 이런 몸의 변화는 어쩜 아무것도 아니다.

세월이 가져다주는 내공만큼 이런 몸의 변화는 별 것 아니라 응수하고 빨리 적응해버리고 싶었다.

밤에 깊은 잠을 자지 못하는 건

낮에 몸을 조금 피곤하게 하거나 잠깐 쉬는 걸로 대체하면 그것도 비교적 견딜만했다.


하지만 갱년기의 변화는 몸으로만 오지 않는다. 몸보다 마음의 변화가 심상치 않다.

삶이 그리 오래 남은 것 같지 않은 마음도,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무료하다는 마음도,

내가 그동안 나를 위해 열심히 살아오지 않았다는 마음도,

이리저리 드는 소외감도, 노후에 대한 걱정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편치 다.

곳곳에서 느껴지는 화살같이 뾰족하게 파고드는 열등감이 나를 괴롭혔다.


아이를 위해 부족하지만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고, 내 할 일을 하려고 노력했다는 생각 뒤켠에 나는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능력 없는 전업주부라는 사실이 괜스레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아이들을 둘셋씩이나 키우면서도 워킹맘으로, 또 자기만의 커리어를 쌓아가는 요즘의 30대 엄마들의 고군분투하는 글 속에도 자꾸 부러움의 시선이 꽂힌다.

나는 나의 힘겨웠던 시간들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 아이 잘 키우고 살림 잘하면 됐지 하고

나 스스로를 위로하던 약발도 이젠 다한 것 같았다.


주변의 아이 친구 엄마들은 하나둘씩 아이들의 학원비라도 벌고자 아르바이트를 하고

계약직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모습도 내가 움츠려 드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녀들은 나보다 용감하고 그리고 보통은 10년 가까이 젊은 엄마들이다.


15년 가까운 경단녀인 나는 그녀들이 부러웠다.

무엇이라도 뛰어들 수 있는 용기와 젊음이..

마음의 괴로움과 헛된 시간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허탈감을 벗어나고자 나도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젊은 엄마들을 따라 구직사이트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구직사이트를 지켜보다 결국은 결혼 전에

했던 학원강사 자리를 훑어보게 됐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은 이제 나이도 많고, 책을 놓은지도 오래고, 아이를 키우며 하기엔 시간도 맞지 않아 더 이상은 나의 직업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직업을 구하려니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초등 논술학원에 이력서를 넣게 되었다. 파트타임도 가능하고

수업에 대한 부담도 크지 않을 것 같았다.

많은 나이는 내 몫이 아니라 생각했다.

연락이 오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대충 적어낸 이력서를 보고 두 군데서 연락이 왔다.

한 곳은 너무 많은 질문과 요구를 했다.

나는 자신 없는 말투로 답변했다.

"네 제가 일을 쉰 지 가 너무 오래되긴 했습니다." 무조건 잘할 수 있다는 말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나는 경력도 많지 않았고, 오랜 경력단절은 나의 자신감 없는 목소리에 스며들어 있었다.

전화를 끊고 나는 전화가 다시 오지 않을 것을 짐작했다.


또 한차례 걸려온 전화에서는 이번 주에 면접을 보러 올 수 있냐고 했다.

이번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얼른 집 앞의 옷가게를 가서 흰 바지와 단정해 보이는 티셔츠를 하나 사 입었다.

조금이라도 나이에 대한 부담감을 없애고 싶어서였다.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집을 나서는 길에 모처럼 생기가 돌았다.

15년 만의 면접이 다시 나를 뭔가 쓸모 있는 사람으로 대접해 주는 것 같아서

들뜬 마음으로 학원을 향했다.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게 새삼 설레기도 했다.


원장 선생님은 수업에 관해 얘기를 했고 시간에 관해서도 얘기를 했다.

"이번 주 토요일부터 수업해주실 수 있나요?"

" 아 죄송한데 이번 주 토요일을 예정된 중요한 결혼식이 있어서요.. 일요일은 가능합니다."

"아 그럼 일요일은 아침부터 오후 5까지 수업이 가능할까요?"

"아! 제가 하루 종일은 좀 어렵습니다.

오전 3시간만 가능합니다."

주말 하루를 온종일을 학원에서 보내는 일은 체력적으로 자신이 없기도 하고

주말만 기다리는 초등학생인 아이에게 하루 종일

엄마가 없다는 게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면접을 마치고 돌아오는 내내 나는 마음이 찜찜했다.

앞자리가 5로 시작되는 나이에 나를 불러준

고마운 일이었는데

적어도 둘 중에 하나는 오케이를 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생전에 나오는 관리가 허생에게 이것도 저것도 하지 못하겠다는 핑계만 늘어놓다 혼나는 장면이

문득 내 머릿속에 스쳐갔다. 내가 방금 허생에게 조언을 구하러 온 관리랑 비슷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그 학원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친구의 행복하냐는 말에 내가 선뜻 행복하다는 답을 하지 못한 건

내 삶에 대한 부족함보다는 나에 대한 자아실현에 대한 목마름 때문인 것 같았다.

가진 그릇은 작았지만 이상만 높았고 무언가를 갈망했지만 실천하지 않고 안주하는 삶을 살았다.

객관적인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딱히 부정할만한 무엇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나를 자꾸 괴롭히게 되는 시간이었다.


어쩌면 갱년기에 찾아온 자괴감과 열등감은 채워지지 않은 나의 삶에 무언가를 찾아가는 새로운 시간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 나에게 새로운 기회가 온다면 무조건 열심히 해보겠다고 말해야겠다.

그러면 나는 아마 지금보다는 조금 더 행복해질 테니 말이다.



(사진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