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공중전화기에 대고 미친 듯이 울며
친척 아주머니께 전화를 했다.
"아줌마 엉엉엉 엄마가 어제 뇌종양으로 입원했는데
언니가 그 소식을 듣고 갑자기 아기를 낳으러 갔다는데
엉엉엉
좀 가주실 수 있겠어요? 엉엉엉.."
그렇게 목놓아 울었던 적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건강하시던 엄마는
언니가 아이를 낳으면 키워주겠다던 엄마는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지셨고
언니는 그 충격으로 조산을 했다.
다행히 아기는 건강하게 태어났다.
그때의 그 울음은 엄마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는지..
임신한 언니한테 잘해주지 못한 나의 미안함이었는지 모르게 처절했고 가슴 아팠다.
그 가슴 아팠던 하루가 7년을 이어갔다.
때로는 무심하게
때로는 힘겹게
때로는 지루하게..
수술과 항암치료 그리고 36회의 방사선 치료
엄마가 몸을 가누고 걸을 수 있던 시간은
1년 남짓이었다.
엄마는 방사선 치료의 후유증으로
몸은 중심을 못 잡고
점점 흔들흔들 앞으로 고꾸라지기 일쑤였고
가끔은 치매처럼 엉뚱한 말을 하기도 했다.
시간이 갈수록 몸은 배터리가 다 된 장난감처럼
기능을 상실했다.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는 것처럼
엄마는 다시 아기가 되어 기저귀를 차고
4년 가까운 세월을 누워계셨다.
그리고 몸과 마찬가지로 의식도 점차 없어지셨다.
건강이 당신의 최고의 자랑인 양 사셨던 엄마는
사그라드는 꽃잎처럼
7년의 아픔을 간직한 채
돌아가셨다.
35도를 넘는 8월의 광복절에.
그리고 1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때의 갑갑하고 힘겹고 아팠던 기억들은
자라나지 않는 몸속의 용종처럼
묵직하게 가슴속에 남아있다.
그리고 가끔 꺼내어져 나를 눈물짓게 한다.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아이를 키운다는 이유로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엄마니까 이해해주시겠지? 하는 이유로
해를 걸러 산소를 찾았을 때 덤불 쑥이 무성한 때가 있었다.
그래서 그날은 또 엄마를 두고 온 그날처럼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했다.
엄마의 기일을 앞두고
또다시 더위가 찾아왔다
집 앞의 천을 따라 알 수 없는 잡풀들이 무성해졌다.
그 무성한 풀숲 사이로 엄마의 무덤이 보인다.
잘 계시겠지.. 편안하실 거야..
아.. 올해도 풀이 많이 자랐겠다.
억세게 자란 풀을 보면
난 늘 엄마 생각이 난다
들꽃 같이 살다가신 엄마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