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한 부부

by 수다쟁이

남편의 코로나 격리가 끝나고 하루의 휴가가 더 주어졌다. 우습게 봤던 코로나는 지금의 아픔이 크기보다는 긴 후유증으로 함께 할 거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리고 나는 완벽한 격리를 한다고

코로나 환자보다 더 지쳐있었다.

일주일간의 집안 생활이 답답했는지

남편이 커피 한잔 하러 가자고 제안을 했다.

항상 우리 둘 사이엔 딸이 있었는데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둘이 차를 마시러 나가니

뭔가 좀 어색했다. 친한 친구가 빠져버리고 친구의 친구를 만나고 있는 느낌이랄까? 언제부터인가

남편과의 둘만의 발걸음은 낯선 사람과 걷는 낯선 공기가 맴도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남편은 앞서 걷고 나는 뒤에서 한 발치 떨어져 아빠를 따라가는 모양새로 걸어갔다.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는 어색한 일은 없었다.

아마도 팔짱을 끼면 남편이 더 창피해하거나 어색해할 것이기에 시도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살짝 뻘쭘했다.

빠른 걸음의 남편을 뒤쫓아가느라 나는 가쁜 숨을 헐떡이며 "좀 천천히 걸어"라고 말을 했다.

예전에는 그래도 내 걸음의 보폭을 맞춰줬었는데

자기 보폭만 생각하며 걷는 남편이 얄미웠다.


가는 내내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혼자 생각했다.

할 말이 없어 아이 학원 얘기 공부 얘기 시댁 얘기를 늘어놓았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주변 사람들의 얘기도 꺼내보았다. 별 재미없이 시큰둥 반응하는 남편도 억지로 얘기를 내뱉는 나도 대화가 자연스레 이어지거나 즐겁지는 않았다.

뭔지 모를 마음의 긴장이 풀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남편의 보폭에 맞추어 걷느라 숨이 가빴다.


찻집에서도 커피를 앞에 놓고 각자의 핸드폰을 꺼냈다. 핸드폰을 보다가 거기서도 아이 얘기를 꺼냈다. 아무 얘기도 안 하면 너무 어색할 거 같아서였다.

아직 먼 아이의 대학 얘기 아이의 친구 얘기 아이의 교육 얘기 등등

아이 얘기가 없었으면 우리는 무슨 말을 했을까?

생각해보았다.

마치 처음 만난 어색한 커플처럼..

애써 할 말을 찾으려 하니 대화거리는 점점 더

없어졌다.


그러고 보면 남편과 나는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는

늘 아이의 남편과 아이의 엄마 역할에만 충실했던 거 같다.

남편이 뭘 좋아하는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남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남편이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우리는 서로 묻지 않았었다.

늦은 나이의 짧은 연애와 결혼은 서로에 대해 알기보다는 바로 삶과 육아라는 전쟁터에서 살아가는 시간들로 채워진 날들이었다.


아이가 커가며 조금씩 여유로운 시간이 주어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삶은 팍팍했지만 짬짬이 남는 시간들과 잘 지내기 위해서는 나를 찾는 연습이 필요할 거 같았다. 하지만 나이 50이 넘어서 나를 찾는 일은 무언가 남의 옷을 얻어 입는 듯 엉거주춤하고 버겁기만 한 숨바꼭질처럼 느껴졌다.


문득 아이가 다 커서 독립을 하면

남편과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나에게도 묻고 남편에게도 물어봤다.

당신은 ○○이 다 크면 뭐할 거야?

글쎄!

뭐 하고 싶은 거 없어?

뭔가를 찾아야지..

그게 뭔데?

글쎄!


아이들의 꿈은 막연한 환상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터질 거 같은 풍선이라면,

남편과 나의 노년의 꿈은 왠지 모르게

안갯속에 쌓여 빛을 잃고, 바람이 새는 풍선처럼 초라할 거 같았다.


돌아오는 길에 등산가방을 멘 어르신들이 눈에 보였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혹은 시간을 때우기 위해, 혹은 산이 좋아서 각기 다른 목적으로 산을 오르기도 하지만 또 어쩌면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 산을 오르는 사람도 꽤 있을 거 같았다.

그 모습 속에 나의 모습도 오버랩되고 있었다.


아름다운 노년으로 가기 위해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뜻밖의 외출이 준 숙제가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일단은 남편과 좀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은 친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