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경, 생리, 달거리, 그날? 어떤 용어가 가장 표준적이고 점잖은지 잘 모르겠다. 이런 여러사람 보는 글에서 저 용어를 쓰게 될 날이 올줄은 몰랐기에,그 용어와 관련된 배경지식이 많이 부족하다. 어쨌든 그것은 많은 여자들, 특히 생리량이 많고 생리통이 아주 심한 내 삶에서 아주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동안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아니 마치 생리를 하지않는 사람처럼 꽁꽁 숨겨두며 살았다.
생리를 처음 시작했을 중학생 즈음, 생리라는 것에 대해 죄의식을 가졌다. 남자보다 열등하고 어리석은 여자가 죄를 지은 탓에 그 벌로 생리를 받았다나.. 무튼 그런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고, 그 다음부터 미성숙하지만 순수하고 착했던 내 마음과 사회 외부에서 주어지는 금기들이 아주 잘 결합되어, '생리'라는 단어는 공적인 상황에서는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 단어가 되었다.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생리라는 단어는 무언가 꺼내놓기 부끄럽고 민망한 단어이다. 얼마 전 이효리가 방송에서 생리 이야기를 꺼냈을 때(그때도 생리라는 용어가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다) 후속 기사가 쏟아졌던 것도, 우리 사회에서 그것이 얼마나 금기시되는지 알 수 있게 한다.
하지만 내 삶에서 그 생리기간은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이다. 수능일이 생리일과 겹치지 않도록 피임약을 먹으려고도 했고(그것은 이후로도 중요한 날들마다 반복되었다), 마흔이 넘은 지금에도 여전히 내 삶에 많은 영향을 준다. 아이둘 데리고 2주 제주여행을 계획했는데 겨울 제주라 다소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비행기 예약도 마쳤고 숙소도 다 정했는데, 생각해보니 여행기간이 생리기간과 겹치는 게 아닌가. 미레나를 한 이후 생리량이 많이 줄어서 깜빡했는데, 그것을 인지하자마자 두 번 고민 않고 포기가 되었다. 위약금을 내고 취소를 했다. 이처럼 생리는 내 삶에 많은 영향을 주는 일로 아주 큰 문제이다.
지난 주말이 생리기간이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몸인데 무언가를 하면 꼭 탈이 났기에, 이번에는 그냥 주말 내도록 빈둥거렸다. 딱히 할 일이 생각나지 않아 생전 잘 보지 않는 유튜브를 봤다. 왜인지 <아르나우의 성전>이라는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농노의 초야권(순결)을 영주가 가져간다는 제목에서 끌렸던 것인가.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긴 했지만, 영상으로 보니 정말 충격적이었다. 또 남편에 의해 여자(아내)는 죽을 때까지 돼지우리에 갇혀있기도 했다. 왜 이토록 여성의 인권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던가. 해도해도 너무 하지 않은가.
나는 <여성사학회> 회원이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여성인물, 그중에서도 조선시대 여성인물 중심의 연구를 할 예정이었으므로, 여성사에 관한 읽지 않은 책이 집에 많다. 갑자기 읽고 싶어졌다. 이토록 여성의 인권을 함부로 한 역사는 도대체 어떻게 시작되었던 것일까 궁금했다.
<여성사>책은 여성사라는 학문에 대한 필요성부터 설명했다. 역사는 남녀가 균등하게 다루어져야 마땅하지만 그동안 그렇게 서술되지 않았고 주로 남성위주의 역사였다. 거의 남성사라고 이름붙여도 틀리지 않을 정도이다. 그러므로 이제껏 소외되었던 여성을 보다 중심으로 가져와 역사 연구를 해보자는 것이다. 거기에다 여성이 핍박받은 역사, 그리고 해방되어가는 역사, 그리고 나아갈 미래를 다루자는 것이다.
어제밤 또 한 유튜브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여성사박물관>을 건립 예정인데, 거기에 200억 넘는 돈이 들어간다니 반대하는 내용이었다. "여가부의 뻘짓"을 방지하기 위해 청와대에 청원도 넣었다고 했다.
문득 기억이 난다.
2019년 12월, 나의 둘째가 15개월정도 되었을 때이고 코로나가 시작되기 한달쯤 전이다. 그때는 첫째가 기관을 가고 있었고 둘째도 이제 좀 컸으니, 나도 못 쓴 논문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서울 학회에 참석하러 갔다. 그 학회는 첫째 임신중기 이후에 처음 참석하는 거니, 거의 4년만이었다. 학회 진행 시간은 두세시간이었지만, 대구에서 서울까지 왕복 6시간이 넘는 긴 여정이었으므로, 아기엄마인 나로서는(특히 그 당시 남편이 아이둘을 혼자 볼 수 없어서 주말인데 베이비시터 이모님까지 오시도록해서) 큰 용기와 결심으로 참석한 학회였다.
얼른 학회만 듣고 내려올 참이었는데 마침 12월이라 학회를 마치고 식사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우리나라에 여성사학회는 딱 그 하나로, 내게는 연예인같은 교수님들이 많은 곳이다. 그 분들과 사적으로 인사를 나눌 수 있는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남편에게 전화해 양해를 구하고 기차표를 한 시간정도 미룬 뒤 식사장소에 갔다. 그 곳에서 우연히 내 옆자리에 그 여성사박물관을 준비하고 계신 책임자분이 앉으셨다. 나로서는 마치 연예인 옆에 앉은 것처럼 떨렸고 영광스러웠다.
그런데 당시 논문주제로 여성 인물만을 생각하고 있었던 나는, 여성사 전반에 대한 관심과 이해는 아주 많이 부족했다. 그런데도 대화 중에 주제 넘게 내 의견을 개진했다.
"여성사라는 이름을 붙여 박물관을 만드는 것은 오히려 양성평등에 위배되는 것이 아닌가요? 여성해방보다 중요한 것은 양성평등인데, 그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박물관은 아닌가요? 차라리 신사임당 박물관 또는 허난설헌 박물관 같은 걸 건립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여성사에 무관심한 대중의 의견을 대표하듯, 아주 정확하고 똑부러지고 한편으로는 매정하게 이야기한, 자신보다 한참 어린 나의 그 말 끝에, 그 관장님께서는 고개를 푹 숙이셨다.
나는 뭔가 너무 했나싶어 민망했지만, 그러고 그 일은 곧 내 기억에서 잊혀졌다. 그리고 어제 그 유튜브를 보고 그날의 관장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얼마나 절망스러우셨을까.
그래 대중들은, 아니 여성사로 논문을 쓰겠다는 나조차도 이렇게 인식이 부족한 실정인데, 정말로 보수(돈)가 아닌 역사의식으로 일하고 계신 그 분들은 얼마나 힘이 빠지실까.
여성사박물관에 200억이 투자된다고 하지만 그 관련 일을 하시는 분들에게 주어지는 보수는 정말 적다. 그 분들은 역사의식으로 일하고 계신다. 그 교수님도 그 일을 수차례 거절하셨지만 적임자가 없어서 계속 맡고 계신다고 했다. "이제 정말 그만해야지"라고 말씀하시지만, 후임자가 마땅히 나타날까 싶다.
이후 코로나가 터지고 줌으로 진행된 어느 학회에서 "한국군 위안부"에 관한 발표가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가 아니다. 6.25전쟁 때 "한국군 위안부"라는 말이다. 일본의 그것을 아주 잘 모델링해서 한국군을 위해 위안부를, 우리나라 군인(정치인)이 만든 것이다.
그 교수님께서는 20년이 넘게 "한국군 위안부"에 대해 연구하셨고, 오랜 방황 끝에(여러 차례 연구를 포기하려고 하셨다) 책을 출간하셨다. 20년이 넘는 연구 시간동안 아주 많은 핍박이 있었다는 말 끝에, 눈물도 흘리셨다. 그 분이 그 핍박에도 연구를 지속한 것은, 오로지 역사의식 때문이다. 그 책이 출간되는 데 2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고 그동안 남성정치인과 남성학자들의 많은 방해가 있었다. 하지만 그 책이 출간되어도 그 교수님께선 부와 명예, 그 어느 것 하나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그리고 그 책으로 그걸 바라셨던 것도 아니다. 그 분은 책임감과 역사의식으로 연구하시고 출간하신 거다. (나는 그래서 요즘 흥미위주의 책이 이토록 많이 나오는 현실에 대해 불만이다. 대중의 관심과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에, 진정 주목받아야 할 책이 주목받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여성사박물관>의 건립에 200억 넘는 돈이 투자된다고 하지만, 그것을 진행시키는 교수님께 그 돈이 가는 게 아니다. 그 분들은 역사의식을 가지고 그 일에 임하고 계신거다. 하지만 때때로 그 분들도 흔들린다. 내가 아는 그 분들은 약한 분들이시다. 까마득한 후배가 대중의 인식이라며 마뜩찮은 이야기를 똑부러지게 할 때, 역정을 내는 게 아니라 좌절하며 "그래 나는 이제 안 할란다" 하시는 분들이다.
미국의 역사학자 거다 러너는 말했다.
"여성의 역사는 여성의 삶을 변화시킨다. 여성의 과거 경험에 대한 짧은 접촉이더라도 여성들에게 심리적으로 가장 심오한 영향을 미친다."
<여성사>는 필요한 학문이다. 그간 역사에서 소외되어온 여성을, 역사의 주변부가 아닌 중심부로 이동시켜 여성의 삶을 재인식하기 위해 꼭 필요한 연구영역이다. 우리 여성들이 지금 왜 이런 인식을 하고 사는지 그 근원을 깨우쳐주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해줄 학문이다. 심리상담 영역보다 어쩌면 더 근원적으로 중요한 학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생리가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만 사람들 앞에서 나는 생리를 하지않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배가 아파서 데굴데굴 굴러도 진통제를 먹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했다. 그건 내 의지가 아니라 사회에서 부과된 바람직한 모습이었다.
이제는 좀 궁금하다. 내가 왜 그런 인식을 당연하게 받아들인걸까. 그래서 다시 여성사를 찬찬히 살펴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