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왕제약 첫 이야기
커피를 누군가에게 따로 배운 적이 없어 스승이 없고, 커피와 관련한 곳에서 일한 적이 없어 동료도 없다.
남편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커피를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기본 원리에 집중해 오랜 시간 독학해 왔고,
지금도 매일 끊임없이 공부하고 고민한다.
무언가를 오랫동안 이렇게 좋아하고 깊이 공부해 나갈 수 있을까 신기할 정도로 진심인 남편 덕분에 나는 결혼 이후 그저 맛있고 늘 새로운 커피를 얻어먹을 수 있는 것에 만족할 뿐이었다.
그러다 몇 해 전, 맛있는 커피를 나눠먹을 수 있는 좋은 공간을 만들어보자는 목표가 생겼다.
재개발 이야기로 들썩이는 허름한 골목의 주택가 안에서 우리가 운영하던 사무실을 개조해서 [에스프레소 바 상왕제약]을 오픈했다.
카페를 오픈하고 운영하는 데 있어 우리를 적극적으로 도와줄 커피업계의 인맥이나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상의할 사람이 없는 것이 아쉬웠던 적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남편은 더 깊고 넓게 기본을 파헤쳐 연구하고 해결책을 찾아나갔다. 그 결과물을 바탕으로 손님을 직접 상대하는 나는 우리를 찾아준 손님들께 더 자주 여쭤보고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치열하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우리의 유일한 커피업계의 인맥이 손님들 뿐이었기 때문이다.
커피를 내리는 과정이 아무리 대단하고 현란한들 결국 커피를 마시고 즐기는 사람들은 손님들이었으니
한 분이 마시고 가서 다른 한 분과 함께 다시 오고, 예쁜 사진을 올려 자랑하고, 또 다른 몇몇 사람이 궁금해해 주는 것, 맛있었다는 소중한 피드백과, 조심스럽게 개선점을 건네주는 귀한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가는 시간에 매 순간 깊이 감사했다.
어설프고 부족하고 허름했지만 우리를 어여삐 봐주시는 강력한 우리 인맥들이 상왕제약을 많이 찾아준 덕분에 입소문이 나서 커피로 세상 유명한 사람들도 상왕제약에 들러서 우리 커피 맛있다고 칭찬도 해주시고, 우연히 들러 우리를 좋게 봐준 디저트 업계 유명한 한 인플루언서는 이런 일이 직업인 분들은 상업적일 것이다는 편견을 깨고 우리를 진심으로 응원해 주었다. 그런 예상치 못한 따뜻한 마음덕에 고단한 일상에서 큰 힘을 얻기도 했다. 단단하게 맺어진 인연 안에서 오랜 친구가 된 많은 손님들과, 신기하게도 매일 새롭게 들러주시는 분들과의 설레는 첫 만남을 반복하며 커피는 잘 몰랐던 나도 어느새 카페를 함께 운영한 지 3년 차 베테랑 알바이면서 사장님으로 불리는 사람이 되었다.
약으로도 치료되지 않는 스트레스나 마음의 불안이나 아픔을 맛있는 커피 한 잔으로 치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의미, 그리고 그런 마음의 약을 진짜 약을 조제하듯이 정확하게 계량하고 철저하게 관리하여 만들자는 다짐을 담은 상왕십리의 에스프레소바[상왕제약]은 그렇게 조금씩 다양한 시도를 하며 발전해 갔다.
그렇게 시작한 지 3년이 채워지기 전에 또 좋은 공간에 다른 색깔의 카페 상왕제약 홍익점을 오픈했다.
동네의 골목길, 왕십리 홍익동에 위치한 작은 카페인 건 본점과 비슷하지만 조금 더 환한 햇빛이 다양한 각도에서 들어오는 곳이다.
손님들이 통유리를 통해 골목의 경치를 만끽할 수 있게 자리를 배치하고, 치유를 상징하는 노란색 포인트를 중간중간 어우러지도록 넣어보았다. 그런데 매장을 인테리어 하는 것보다 걱정이 되었던 것은 '과연 내가 카페를 혼자 운영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본점은 남편이, 두 번째 공간은 내가 맡아서 운영하기로 한 결정이 과연 잘한 것일까 하는 고민이 들기도 했다. 남편과 좁은 에스프레소바에서 치열하게 일하며 커피에 대한 기본과 진심을 배웠다지만 혼자서 매장의 모든 상황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 버겁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사소한 부분이라도 끊임없이 정성을 다해 가르쳐주고 서포트해 주는 남편 덕에 매일 아주 조금씩 자신감이 채워지게 되었다.
몇 달 동안 짬을 내서 매만진 공간이 그럴싸하게 준비된 후 노란색 어닝이 반짝이는 날씨 좋은 가을날에 오픈을 했다.
기본을 지키자. 좋은 원두를 사용하고, 매일 분해하고 청소하며 깨끗하게 관리한 머신들로 내린 맛있는 커피를 최대한 저렴하게 판매하면서 오가는 손님들에게 편안한 휴식의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집중하기로 했다.
[에스프레소를 조제합니다] 였던 본래의 에스프레소바 상왕제약에서
카페 상왕제약 홍익점은 [오늘의 치유를 조제합니다]라는 문구를 내걸었다.
동네에 흔히 있는 카페 중 하나지만, 매일 만나는 커피 속에서 매번 특별한 치유의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고, 기대보다 훨씬 더 많은 다정한 의미들을 발견하고 있다. 그 소중한 이야기들을 혼자만 간직할 수 없어 소소한 글로 남겨보려고 한다.
상왕제약 홍익점, 그리고 가끔은 본점의 따뜻하고 다정한 이야기를 함께 속삭여 볼 수 있길 바라고,
더불어 남편과 상왕제약을 운영하며 있었던 수많은 우여곡절의 에피소드가 같은 길을 걸어가는 자영업자들에게도 작은 공감의 기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