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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트 Oct 12. 2022

아무 일도 없던 듯이   

오늘의 식탁. 연근전

#어쩌다 마흔셋 #우물안 개구리 #딸들에게 #하고 싶은 말 #나는 대화라 하고 딸은 잔소리라 한다 #잔소리 아니야 걱정이야 #하고싶은 말 대신 따듯한 밥상을 #엄마 14년차 #이 정도 쯤이야  #MZ세대 딸을 키우는 X세대 엄마 #딸에게 차마 하지 못한 말 #START~!

 

 



오늘의 식탁. 연근전



연근 根 

'뿌리 근'자를 쓰지만 연근은 줄기다. 근데 웃기는건

줄기라고 하지만 땅 속에 있다. 

연근의 트레이트 마크는 저 구멍. 

구멍이 숭숭 뚫린 모양새가 "나 감자 아니오! "하고 외치는 것 같다.

"에헴. 미끈덩한 마랑은 다르지. 난 연근이올시다."




냉장고를 열고 통연근을 꺼낸다. 흐르는 물에 흙을 말끔히 씻어낸 후, 필러로 껍질을 얇게 벗긴다.

순식간에 뽀얀 속살을 드러내는 연근. 칼판에 옮겨 새로 산 큰 칼을 들고 서걱 썰어본다. 

역시 칼을 사길 잘했네. 깔끔하게 썰리는 연근을 식촛물에 담그며 만족감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퍼진다.

(연근을 썰면 바로 식촛물이나 소금물에 담가야 떫은 맛이 사라진다고 한다) 

이제 연근을 썰어서 한번 데쳐낸 후 밀가루, 달걀옷을 입혀 곱게 지져낼 참이다. 그렇다. 지금부터 만들려는

연근전은 우리 딸들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 중 하나다. 남들은 연근으로 주로 조림을 해 먹는 듯 한데, 같은 연근이어도 우리 딸들은 연근 조림을 그닥 좋아하지 않으니 엄마로서 이런저런 변주후 얻게된 금쪽 레시피다. 


연근전을 처음 하게 된건 큰애의 잦은 코피 때문이었다. 지금생각해보면 어린애들에게 흔한 코피이지만, 그 당시엔 굉장히 걱정이 되었었고, 병원에서는 심하면 코 안을 지져야된다(?)고 했는데, 친정엄마가 연근을 먹이라고 하셨다. 그 덕분인지, 성장하면서 저절로 사라진 것인지, 이제는 코피가 잘 나지 않는다.

그렇게 지혈의 용도로 시작한 연근요리였지만 최근에 주로 연근전을 부치는 건 딸들에게 무언가 미안한 일이 있거나, 묵은 감정이 있을 때다.  어색해지기 전에 서둘러 연근전을 부쳐내면 딸들은 방긋 웃으며 연근전을 먹고 엄마 최고를 외쳐주니, 아무일도 없던 듯이, 관계를 회복시켜주는 나름 특효약인 셈이다. 언젠가는 연근전도 약발이 다 되는 날도 있겠지만. (내성이 생기기 전에 새로운 약을 찾아낼 수 있을까.)


연근을 썰때는 너무 얇지도 너무 두껍지도 않게 일정한 두께로 가지런히 썰어야 한다. 내 취향은 약 0.7Cm다. 마트에서는 자숙 연근이라고 썰어서 데친 연근도 팔지만 그것들은 너무 두꺼웠다. 1cm. 어떤건 1.2 cm도 족히 되어 보였다. 십여년 전 쯤, 딱 한번 사본 자숙연근은 물컹물컹한 식감으로 내 요리를 완전히 망쳐 놓았었다.  그 후로는 이렇게 쭉, 내 선택은 통연근이다. 너무 두껍게 써는 것보다는 차라리 얇은 편이 낫다. 그런데 또 너무 얇게 썰어도 식감이 별로다. 물론 연근 샐러드를 할거라면 0.3 cm 에서 0.5 cm까지도 괜찮지만. 이것도 순전히 개인취향이라서 진리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고보니 연근이 좀 큰데 약간은 남겨서 연근들깨샐러드를 할까 싶다.  하지만 그러면 또 나밖에 아무도 안 먹겠지?


두 딸의 입맛을 맞추는 건 꽤나 까드로운 일이다. 어릴때는 온갖 식재료를 편식없이 먹어주었던 큰 애는 어째선지 초등학교 3학년을 기점으로 양퍄, 파, 마늘 같은 향신채소의 냄새가 싫다더니 채소란 채소는 전부 입에 대지도 않는 편식쟁이가 되었고, 어려서부터 딸기가 징그럽다며 안먹던 둘째는, 새우도 징그럽고 조개는 더 징그럽고 오징어도 생선도 징그러운 해물포비아가 되어버렸다. 알러지 아니다. 그냥 싫다고 안먹는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저녁을 차리는 일은 늘 고민이게 마련.  

연근전 역시 마찬가지다. 고급 요리로 해준다고 명란도 붙여 지져보았지만 명란이 싫다고 해서 실패. 소고기를 다져서 붙여주었던 것도 그냥 연근전이 낫다고 하여 다시는 하지 않게 되었다. 나야 그냥 연근만 부치는 것이 더 쉬우니 차라리 잘된 일이다. 


연근을 써는 사이 인덕션에서 물이 끓고 있다. 김이 오른 냄비의 뚜껑을 열고 굵은 소금을 약간, 식초를 약간 넣는다. 그리고 연근을 집어넣으면~ 끓어오르던 물이 순식간에 사그라든다. 금방도 식는구나. 이내 보글보글 끓어오르기 시작하면 재빨리 개수대로 옮겨 미리 준비해둔 채반에 냄비 속 연근들을 부어준다. 

조심한다고 하는데도 뜨거운 물이 튀었다.... 14년차 엄마이자 15년차 주부인 나는 여전히 늘 데이고 찔리고 베이면서 식사를 준비한다. 물론 내가 조심성이 없어 그런 것도 있지만 서두르다보니, 빨리 맛있게 해 주려는 내 마음을 누가 알까.....


쓰라린 손을 찬물에 담그고 어젯밤 큰애와의 말싸움을 생각한다. 시작은 사소한 대화였다. 뉴스에 자녀가 자신의 부모님을 가정폭력으로 신고하는 일이 늘고 있다기에,  그 황당하고 어이없는 소식을 큰 애에게 이야기 한 것 뿐이었다. "참나, 아무리 부모님이 때린다고 그걸 신고하냐?" 이런 세상 말세같은 뉴스를 읽으면 당연히 내 딸도 나와 같은 반응을 할 줄 알았던 거다. "그러게 별 사람이 다있네~" 뭐 이런 맞장구치는 말 정도? 아니, 딱히 대답을 바란것도 아니었다. 근데 내 딸은 달랐다. 나를 보고 실 실 웃으며 "부모님이라도 때리면 신고해야지."하는 거다. 나는 얘가 나를 놀리나 싶었다. 장난하는건가? 나는 예상외의 답변에 놀라 되물을 수 밖에 없었다. "부모님을 신고한다고?" 그러자 내 딸은, 마치 내 딸이 아닌듯이,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얘기를 하는거다. "당연하지. 아무리 부모님이어도 때리면 안되지. 우리도 인권이 있는데."

나는 순간 너무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동안 키워준 고마움도 모르고 부모님이 좀 사랑의 매를 들었기로소니 자식이 부모를 신고해? 그건 패륜이잖아. 부모님께 감사는 못할망정 은혜를 원수로 갚아? 자식 잘되라고 때리지 못되라고 때리는 사람이 어디있어? 요즘 애들이 정신상태가 이상하고 이기주의라더니 아주 틀려먹었구만? 더구나 내 딸이 이런 말을 하다니! 내딸이 이럴 수가! 나는 순식간에 밀려드는 배신감에 치를 떨며 다시한번 물었다. "그래서, 너도 내가 너 때리면 신고하겠다고?" 그런데 얘는 상황의 심각성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아직도 실실 웃으며 얘기한다. "엄마는 안때리잖아~" 아니, 그래, 내가 지금까지 너를 안때리긴 했지. 그런데 내가 원하는 대답은 그게 아니었다. 나처럼 패륜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더라도, 백보 양보해서, '원래는 신고해야 하지만 나라면 안할 것 같아.' 뭐 이런 대답을 기대한 것이다. 나는 다시한번 물었다. "그럼, 내가 너 때리면 너도 나 신고할거야?" 내가 이정도까지 물으면 내 기분을 눈치챌 만도 하건만, 큰애는 여전히 실실 웃으며 "그럼. 신고해야지"라고 마지막 폭탄을 날리는 게 아닌가. 나는 마침내 "부모를 경찰에 신고하면 연을 끊자는 소리밖에 더 돼?" 하며 흥분하기 시작했고, 어리둥절해하는 딸에게 "너 이리와. 너 좀 맞자! 내가 지금 너 때릴테니까, 경찰에 신고해!! 이 참에 부모자식 연을 끊자!" 하면서 소리쳤고 이번엔 큰 애가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진짜 왜그래~! "그러고는 자기 방으로 가 버리는 거다. 그게 바로 어젯밤의 일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부모가 때렸다고 신고하는 자식이라니. 내 아이조차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니. 


찬물에 담근 손가락에 밴드를 붙이고, 데친 연근도 찬물 샤워를 시킨 뒤 충분히 식은 연근을 위생봉투에 담는다. 그리고 맛소금을 살짝 뿌려 봉투를 여미고 흔들어 섞어준다. 뭐든지 간이 적당해야 맛있는 법. 신혼때는 뭣도 모르고 건강식을 하겠다며 이런 저런 맛없는 음식들을 식탁에 올렸지만, 이제는 어느정도 세상식 타협을 갖춘 음식들을 식탁에 올린다. 그러고보면 세상에 맞춰 살아가고 나도 변해야 하는 건데. 지금 세상에서는 아동의 인권, 청소년의 인권이 중요하긴 한가보다. 나 어릴때만 해도......... 

여기까지 생각하니 순간 헛웃음이 난다. 나도 부모님께 한 대도 맞지 않고 자란 것이다. 


맛소금 간이 적당히 밴 연근에 이번에는 밀가루를 넣고 흔들어준다. 만약 부침가루로 한다면 맛소금은 생략해주는 것이 낫다. 부침가루에 적당히 간히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달걀을 풀어 달걀물을 준비한다. 여기에도 맛소금, 후추를 살짝 넣고, 다진마늘을 반 티스푼 정도 넣어 열심히 섞어준다. 갑자기 머릿속이 바쁘다. 나도 안맞고 자랐는데 왜 맞고 자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지? 하긴, 나는 맞을 짓을 안했으니까 안맞고 큰게 당연하지. 맞을 짓을 하면 맞아야지! 아니 근데, 우리 애들은 맞을 짓을 한게 없는데.... 그러고 보니 뭐가 맞을 짓이지? 어젯밤 뉴스에서 본 그 아이는 무슨 일로 맞은 것일까.


부모가 자식을 때릴만 나쁜 일을 떠올려보자. 음.... 거짓말? 하지만 거짓말을 했다고 때리는 건 좀 아니지 않나..... 거짓말을 하는 건 보통 혼날까봐 두렵거나 뭔가 감추고 싶어서 일텐데... 때리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면, 친구와 싸우거나 심각한 폭행? 아니, 친구를 때린 일로 훈육해야 하는 상황에 내가 아이를 때리는 건 좀 아니러니 한데? 오히려 나쁜 영향만 받을 것 같다. 그럼. 아주 아주 나쁜거, 도둑질? 아니 근데 도둑질 하는 애가 때린다고 말을 들을까?  도둑질하는 애도 원인이 다양할텐데 요즘 무슨 증후군이런걸로 도둑질 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도둑질한 이유나 심리적 원인을 파악해야 하는게 아닐까? 이쯤 생각하고 나니, 오히려 더 알수 없게 되어버렸다. 무슨 일로 자식을 때린 걸까.


봉투를 열어 밀가루 옷을 입은 연근을 하나 하나 털어낸다. 밀가루가 과하면 예쁘게 부쳐지지 않는다. 적당히 밀가루를 털어내고 달걀옷을 입혀 달궈진 후라이팬에 올린다. 불은 세게 할 필요가 없다. 연근을 이미 데쳤기 때문에 겉의 달걀물만 익을 정도로, 달걀물이 타지 않게 부쳐내면 된다. 사실 다른 전에 비해 연근전은 쉬운 편이다.  호박전은 너무 오래 부치면 풀대죽(?)처럼 흐물흐물 퍼지고, 고기전은 속까지 익었는지 예상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데, 연근전은 다시말하지만 이미 한 번 데쳐낸 것이므로 그냥 달걀옷만 예쁜 색으로 지져내면 된다. 나는 이렇게 쉬운 요리로 최고의 엄마라는 얘길 들으며 생색을 내고 있다. 


자식을 키운다는 건, 어쩌면 내가 키우는 게 아니라 저절로 자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내가 굳이 잔소리하고 야단치지 않아도 바르게 잘 자라고 있는데, 어젯밤엔 내가 원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고 화를 내 버린 거다. 편식을 하는 일만 해도 그렇다. 주는 대로 받아먹던 나이를 지나, 자신의 취향이 생긴 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골고루 먹어야 건강에 좋긴 하지만. 또 음식을 남기면 안되긴 하지만...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 나도 어릴때 편식이 심했는데 뭐. 다시 이랬다 저랬다하는 마음을 붙잡는다. 그래, 어젯밤엔 내가 괜히 흥분한게 맞아. 자기 생각이 그렇다는데 내가 뭐라고 생각을 바꾸라고 하겠어. 

그래도 굳이 사과는 하지 않을 작정이다. 사과라니. 내가 그 정도로 잘 못한건 아니지 않아? 철없는 마흔 셋 엄마는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하며 연근전을 부쳐낸다. 

"얘들아, 연근전 먹어라~! 따듯할때 얼른 나와! "

 

다행히도 애들은 엄마 최고를 외치며 연근전을 맛있게 먹는다. 아삭아삭한 식감이 최고라나. 

그래, 그렇게, 아무 일도 없던 듯이, 연근전. 

부모자식 사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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