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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트 Oct 12. 2022

조던 운동화와 아이폰, 그리고...

오늘의 식탁. 편백나무찜

#어쩌다 마흔셋 #우물안 개구리 #MZ세대 딸을 키우는 X세대 엄마 #딸에게 차마 하지 못한 말 #오늘도 따듯한 밥상 #식기전에 먹자꾸나 





오늘의 식탁. 편백나무찜 



편백나무 찜기를 새로 장만했다. 내 기준에선 비싸다. 근데 너무너무 사고싶었다. 

진짜 좋은 편백나무로 깨끗하게, 못자국 없이 짜맞추어낸 이 편백나무 찜기로 말할 것 같으면, 

이제 더이상 비싼 음식점에 가지 않아도 집에서 편백나무찜을 해 먹을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편백나무 향이 곱게 밴 찜 요리들은 건강에도 좋을 것이며, 뽀대나는(?) 상차림을 가능케 해줘 

손님초대요리로도 좋을 것이고, 평소에도 만두나 떡을 쪄먹는 등 다양하게 활용 할 수 있다. 

단호박도 고구마도!  

근데 이거, 막상 사고 보니 몇 번 안쓸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아깝다.... 사진이라도 많이 넣어야 겠다....... 






조던 운동화와 아이폰, 그리고..




싱크대 높은 칸, 저기에 편백나무찜기가 있다. 비틀 비틀, 손을 뻗어보지만 닿지 않는다. 그리고 

아아.. 내 다리에 경련이 날 것 같다. 


결국 사다리를 가져다 꺼낸 편백나무찜기. 손이 닿자마자 화르르 덮쳐오는 편백나무 향이 기분좋게 스며든다. 꺼내느라 동동거리는 동안 슬슬 올라오던 약간의 짜증마저도 순식간에 사라진다. 역시 최고급 편백나무가 맞긴 한가보다.  이 편백나무찜기는 사용 후에 깨끗이 씻어 그늘에서 말린 다음 보관해야 하는데, 이게 부피가 크다보니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싱크대 가장 높은, 손이 닿지 않는 곳을 차지하게 되었다. 


말려놓은 편백나무찜기를 다시 사용할때에는 번거롭지만 이렇게 꺼내어 물을 충분히 먹여준 후 불에 올려야한다. 깨끗한 물에 편백나무찜기를 담그고 있자니 또 이런 저런 상념들이 몰려온다.  

분명 좋지만 분명 귀찮은 일이 늘어날것이 뻔한, 그래서 내가 몇 번 사용하고 안쓸지도 모를 이 편백나무찜기를 갖고싶어서 나는 몇 날 며칠을 고민에 빠졌던가.


사실 그동안 나는 물욕이 없는 편이라고 여겨져왔다. 남편은 늘 "00(내 이름)이는 갖고 싶은거 없어?"라고 물으며 "소유욕이 없어?"라고 웃었지만, 아니었다. 나는 그저 옷이나 가방에 관심이 없었을 뿐, 내재된 소유욕이 무궁무진했던 것 같다. 나는 이 편백나무찜기를 너무너무 갖고싶었으니까. 비록 사놓고 두어번 밖에 쓰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사실 물욕이 없기로는 우리딸들만한 애들이 없었다. 

우리 딸들로 말할 것 같으면~ 중1, 초3이라는 나이가 되도록 무엇을 사달라고 졸라본 일이 없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때에도, 자기 애들이 '마트에서 드러눕는'다는 동생의 말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았으며, 실제로 마트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아이를 보았을때는 처음 보는 광경에 조금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기도 했다. 우리 딸들은 "이거 사 줄까?" 물으면 별 대수롭지 않게 "그런거 집에 있어"라고 대답하거나, 순진한 눈망울로 "엄마 그거 갖고싶어?"라고 되묻는 아이들이었던 거다.


물론, 부족함 없이 자라서 갖고싶은게 없을 수도 있다. 생일때면 수많은 이모, 삼촌, 고모, 할머니 등등 가족과 친지로부터 선물을 넘치도록 받아왔고,  킥보드가 필요하면 킥보드를, 자전거가 필요하면 자전거를 사주며 평범하게 남들 하는 건 하면서 키우긴 했다. 아이스크림이 먹고싶다고 하면 언제든 사줬고 (너무 많이 먹는다고 건강이 염려돼 안사주는 부모님들도 있긴한데, 우리 애들은 한개를 반도 다 못먹어서 그럴 걱정이 없었다) 늘 갖고싶은 게 없다는 아이들이라 더 살피며 키웠다. 


한참 포켓몬 빵이 유행하던 때에도, 내가 보기에 우리 아이들은 모르는 눈치였다. 헌데, 친구가 편의점에 줄을 섰다는 얘기를 들은 어느 날, "너희 포켓몬 빵 아니? 그게 유행이라던데 정말인가~"라고 말을 꺼내자, 아이들은 역시나 대수롭지 않게 '안다'고 대답하는 거였다. "응 그거 유행이야 엄마. 우리반 애들 그거 스티커 모으고 그래. 학교가지고 오면 안되는데 가져와서 자랑하는 애들도 있어." 초등학교에 다니는 둘째는 주로 남자아이들이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중학교 1학년인 큰 애는 "나도 편의점에 애들이랑 가본 적 있는데 항상 없더라."하고 의외의 대답을 내 놓기도 했다. 하긴 중1정도 됐으니 호기심에 한두번 산다 해도 포켓몬 스티커나 모을 나이는 아니긴 하다.  


뭐 굳이 포켓몬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이렇게 우리 애들이 욕심이 없고 무소유의 정신을 자신도 모르게 실천하며 살고 있는 것은 사실인것 같았는데. 어느 날 마침내 그 날이 오고야 말았다.     


"엄마 나 이거 갖고 싶어요."

어느 날, 중 1인 큰애가 불쑥 내민 휴대폰 안에는 초록 검색창에 조던 운동화라고 써 있고, 웬 운동화들 사진이 주루룩 나와 있었다. 나이키 마크가 그려진. 그렇다. 패션이나 유행에 큰 관심이 없는 나도, 나이키 마크 정도는 안다. 그런데 가격이 이십만원 후반대부터 오십만원대까지, 뻥 좀 보태서 뒷목을 잡을 수준인 거다. 

나는 생전 처음 무언가 갖고싶다는 딸이 내민 운동화 사진들에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이미 이 아이의 운동화는 다섯켤레는 족히 되는 것 같았다. 나이키, 뉴발란스, 필라, 슈콤마보니, 타미힐피거, 그리고 지금 브랜드는 생각나지 않는 선물 받아 한번도 신지 않은 빨간 단화, 마치 슬리퍼처럼 뒤꿈치 부분이 없는 운동화, 가죽으로 된 단화, 지금 생각나는 것만 해도 다섯켤레는 훨씬 넘는다. (앞서 말했다시피 친척이 많고 선물받을 날들도 너무나 많다 어린이날 생일 크리스마스 등등)   

그런데, 조던 운동화라..... 


일단 나는 인터넷에서 보는 것 보다는 실물을 보는 게 좋겠다며 대답을 미뤘고, 딸아이와 함께 찾아간 우리동네 백화점 나이키 매장에는, 매장이 꽤 큰데도 불구하고, 조던 운동화는 남성용만 들어와있다고 했다. 내가 안사주려는 건 아닌데 마침 매장에 없으니,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딸에게 여기는 없으니 다른 곳에 있는지 알아보자고만 이야기했다. 의외로 큰애는 순순히 물러섰다. 자기도 당장 사달라는 것은 아니었다며.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딸은 이번에는 깨진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엄마 나 이거 이제 진짜 바꿔야 될 거 같아." 사실 이 애가 쓰는 휴대전화는 내가 사용하던 것인데 엘지에서 나온 스마트폰으로 굉장히 좋은 거였다. (그렇다, 나는 이름을 잘 못외운다. 특히 기계에 관해서는 무관심하고 잘 사용하지 못하는 기계치다. ) 내가 2년 쓰고 새것을 사면서 나 쓰던 멀쩡한 폰을 준건데, 내가 준 바로 그 날, 충전한다고 소파 팔걸이에 두었던것을 누군가가 떨어뜨려 액정에 금이 가더니, 깨진 면적이 점점 넓어져 이제는 완전히못 쓸지경이 되고야 만 거다. (딸은 자신이 떨어뜨린 것이 아니고 소파에 앉아있던 아빠가 그랬을 거라고 하지만 아빠도 자기가 그런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어쩌면 우리 먼지(고양이)가 그런것 같기도 하다. 애초에 휴대전화를 소파에 그것도 팔걸이에 올려둔 것이 문제라고 하기엔, 실은 나도 종종 거기에 폰을 올려 둔채 충전하곤 했었으므로 이문제는 더이상 따질 수가 없게 되었다.)

문제는 남편과 나 둘 중, 아직 누구도 휴대전화를 바꾼지 2년이 되지 않았다는 거다. (이미 다들 알겠지만 휴대전화를 2년 약정으로 구입한 후 2년이 지나면 새 폰을 2년 약정을 걸어서 사고, 우리가 쓰던걸 아이를 주는 방식으로 지내왔다.) 이 일을 어쩌면 좋을까.  그런데 아이는 거기다 무심히 한마디를 보탠다. 

"나도 아이폰 갖고 싶어."


사실 언젠가 '아이폰이 갖고싶다' 이 말을 듣는 날이 올 줄 알았다. 

뉴스를 보면 젊은이들의 대부분은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다는데, 그 이유는 아이폰이 세련된 느낌이며, 삼성폰은 아재폰 느낌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난 앞서 말했듯이 기계치이고 기계에 관심이 없다보니 그때 그때 남편이 추천해주는 제품을 별 생각없이 사용했지만, 내 친구들의 경우 6명 모임에서 나 빼고 5명이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으니... 40대인 우리도 이 정도 인데, 젊은이들이 아이폰을 선호한다는 뉴스가 과장은 절대 아닐 터였다. 

그동안에도 건너 건너 들은 누구 아들은 초등학생인데 아이폰을 사달라고 떼를 썼다는 아이도 있었고, 아이폰 쓰는 아이들끼리만 문자인지 대화인지를 할 수 있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그동안 다행히 우리 딸이 아이폰을 사달라고 하지 않기에 우리 딸은 정말 물욕이 없구나 하고 오해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날이 오고야 말았다. 이제 우리딸은 더이상 엄마 아빠가 주는 옷 입고 주는 물건을 그냥 쓰는 아이가 아니다.   조던운동화가 갖고 싶고, 아이폰이 갖고 싶은, 십대!!!! 사춘기!!!!! 이제 뉴스에서 본 것 처럼 부모님 등골을 빼먹는다는 패딩이나 명품 가방을 사달라고 할 지도 모른다. 소름이 오싹 끼쳤다. 

그래도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이 위기를 넘기기로 했다. 아니, 미루기로. 남편에게 말이다.


"정말 바꿔야 될거 같긴 하네. 근데 너도 알겠지만 난 이런거 잘 모르니까, 좀 이따 아빠 오시면 얘기해보자. 아빠한테 잘 얘기해서 꼭 바꿔줄게. "

 그 뒷말은 속으로 삼켰다. 아이폰이든 아니든 바꾸긴 바꿔줄게. 

마침내 우리 가정에 태풍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 뒤는 시시했다. 

내가 씻는 사이 딸애는 아빠와 얘기해서 새로 살 휴대전화를 결정했는데, 인터넷으로 전화기를 구경하다보니 마음이 바뀌어서 삼성폰, 화장품케이스처럼 네모나게 접는 폰을 사기로 했다는 거다. 마치 태풍이 온다고 대비하라며 잔뜩 요란스런 긴급방송을 내보내다가 태풍이 우리나라를 비켜가버린 것 처럼. 다행이지만 허무한 기분. 한편으로는 괜히 갖고싶은걸 안사줘서 애 마음에 상처를 준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오빠, 율이가 아이폰 갖고싶다는 거 오빠가 살살 꼬셔서 바꾼거야?"

"아니? 자기가 고른거야."  

"오빠가 삼성폰이 더 싸다거나 뭐 그렇게 얘기해서 애 갖고싶다는 거 안사주고 억지로 바꾼 거 아니고?"

"아닌데?"

남편 말을 듣고 보니, 아이폰이나 삼성 접는 폰이나 가격은 큰 차이가 안난다고 했다. 오히려 남편이 보기에 나중에 중고폰을 팔면 아이폰을 더 비싸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아이폰을 사는 것이 이득일 수도 있겠다고 했다. 하지만 딸은 삼성의 접는 폰이 예뻐서 그것을 골랐고, 남편은 갖고싶은 것을 고르면 되지 무엇을 사든 상관없다고 했다. 게다가, 우리들의 경우 전화를 많이 쓰니까 약정으로 구입했지만 율이는 6천원짜리 알뜰폰 요금을 사용하기 때문에 그냥 자급제폰으로 사는 것이 낫다고 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나는 남편의 말을 믿는다. 그렇게 시시하게 우리 딸의 첫번째 반란은 끝나고 말았다. 스스로 한시간도 안돼 뜻을 접다니.


나는 아이폰 사달라는 딸의 데모도 못보았으며, 그 후로 조던 운동화 얘기는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 편백나무찜기를 인덕션에 올리고 있다. 

나는 무엇을 그렇게 걱정했던 걸까. 


남들이 우려하는 사춘기라는 것이 우리집에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 사춘기는 너무나 무섭고 엄청나게 잔인해서 우리 가정의 평화를 박살내버릴것 같은 그런 공포. 문득, 그게 실재하는 감정인지 궁금해졌다. 

아니 이러다 언젠가 사춘기 딸과 못살겠다며 엉엉 우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 


지금 이애는 사춘기인걸까 아닌걸까. 사춘기가 지난 걸까, 아직 안온걸까. 

갖고싶은게 있는데 엄마 아빠 생각해서 못사고 있는 건 아닐까. 

조던 운동화와 아이폰은 이대로 잊혀져도 되는 걸까. 왜 조르지 않은 걸까.

딸보다 더 철이 없는 '마흔세살' 내가 산 편백나무찜기에는 오늘 우리의 저녁식사가 뜨겁게 익어가고 있다. 역시 나는 쓸데 없이 생각이 많다. 

"얘들아 얼른 나와, 저녁먹자~! 오빠! 따듯할때 먹어야 맛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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