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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트 Oct 12. 2022

다이어트는 내일 부터

오늘의 식탁. 어묵탕

#어쩌다 마흔 셋 #MZ세대 딸을 키우는 X세대 엄마 #하고싶은 말은 모두 잔소리 # 따듯한 밥이나 먹자 

#맛있으면 0칼로리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몰라?!



오늘의 식탁. 어묵탕 



큰 애가 막 중1이 되었을때, 우리 딸이 학교 다녀오자마자 가장먼저 했던 말 "엄마! 뭐 먹을 거 없어요?" 

"엄마! 오늘 저녁 뭐예요?" "저녁 언제 먹어요?"  

요즘엔 달라졌다! 

"엄마! 제발 맛있는 것 좀 하지 말아요!"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요즘 애들은 다들 이쁘다. 우리 어릴때보다 키도 큰 것 같고 코도 높은 것 같고. 서구화된 식생활과 입식생활의 영향으로 다리도 다들 길어졌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그냥 아이들 하나 하나가 예쁘다. 사랑스럽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빛이 나는 나이. 어린 존재 특유의 사랑스러움과 싱그러움이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예쁜지 모르는 모양이다. 중고등학생이 성형수술을 시켜달라고 조르는 '외모지상주의' 시대니 말이다. 

 

우리 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동생과 자신의 외모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동생은 달걀형 얼굴인데 왜 자신은 달걀형이 아니냔 거였다. 난 물론, "흔해 빠진 달걀형이 예쁜게 아니고, 너의 하나뿐인 얼굴이 소중하다. 넌 이세상에 하나뿐인 정말 예쁜 자두형이다."라고 세뇌를 시켜왔지만. 

중1 가을, 요즘 우리 딸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다이어트 할거야"다. 중1이라는 시기에 공부보다 외모에만 관심이 있는 것도 안타깝지만, 객관적으로 봤을때 전혀 살찐 외모가 아닌것 같은데 다이어트라니. 하지만 난 "다이어트는 무슨 다이어트야!" 라든가 "쓸데 없는 데 신경쓰지 말고 공부나 해"라는 말 따위는, 결코,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 (정말 하고 싶었다는 건 인정^^ ) 하고싶은 수많은 말들을 삼키며, 내 딸에는 아무렇지 않음과 장난스러움을 가장하고 이렇게 말했다. "그래, 너 운동 좀 해야겠다. 요즘 허벅지가 굵어진거 같아.", "넌 다이어트 한다며, 먹지마."  이런 말이나 한데는 내 나름의 이유가 있다. 


먼저, 우리 큰 애는 요즘 청개구리라서, 먹지 말라면 먹고, 먹으라면 안먹는다는 점. 그런 순간들이 몹시 거슬리기는 하지만 중2병 사춘기자녀를 둔 현실이기도 하다.  두번째 이유는, 딸의 의지가 박약함을 이미 알고 있는 엄마의 여유랄까. 다이어트 한다고 해 놓고 "이건 먹어야지~", "다이어트 내일부터 할래."라고 말하는 걸 한두번 본 게 아니다.  물론, 밥 한끼 안먹는다고 죽는것도 아닌데 지 하고 싶은대로 해 보라는 이유도 있다. 어쩌면 다이어트를 말리지 않는 이유 중에는 내 딸이 더 예뻤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섞여있는 지도 모르겠다. 


딸 키우면서 듣는 말 중 기분 좋은 말 중 하나가, "어머~ 엄마 닮아서 예쁘네~"하는 말이었다. 그러다보니 딸이 나이고 내가 쟤인거 같은 착각을 종종 하게 되었는데, 물론 딸이 내가 아님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딸이 예쁘면 어디 내놓을때 자랑스럽고 뿌듯한것도 사실이었다. 딸이 칭찬받는 것이 내가 칭찬받는 듯한 기분을 가져다주는 알수없는 현실. 지금 현재 보기 좋은 몸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운동해서 나쁠 건 없다는 생각. 

물론 내 딸이 예쁘지 않다고 사랑하지 않을 것은 아니지만, 나 역시 알게모르게 외모지상주의 시대에 물들어 있는 거겠지.


언젠가 들은 지인의 지인은, 딸이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몇 천만원을 들여 얼굴을 다 성형해 주었다고 하는데. 난 결코 우리 애들에게 해주지 않겠다는 장담을 할 수는 없겠다. 나 역시 애들이 조르면 빚을 내서라도 해주고 싶어질 지도 모르는 거다. 그러기 전에 애들에게 세뇌를 시켜놔야겠다. 매일 매일 "넌 너무 예뻐. 정말 사랑스러워. 이세상에 하나뿐인 명품이야. 성형한 수많은 사람들의 비슷비슷한 얼굴과는 달라. 하나님이  빚으신 예술품이 너야." 물론 진심이다. 난 우리 애들이 이미 너무나 사랑스러우니 말이다. 


내가 지금 당장우리 딸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쪼끄만게 다이어트는 무슨 다이어트야!"라는 말 대신, 

뜨끈한 어묵탕 한 그릇. 


우리 큰애는 입맛이 아빠를 쏙 빼 닮아서, 얼큰한 국물을 너무나 좋아한다. 

꽃게와 무, 된장, 고춧가루를 넣고 시원하게 우려낸 국물에  한번 데쳐내 깔끔한 어묵 꼬치를 넣고 쑥갓과 표고버섯, 청양고추 등을 예쁘게 올린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지. 

"얘들아, 저녁먹어라! 꽃게 어묵탕했어! "


역시나 우리 딸은 툴툴 대며 자리에 앉는다. "엄마! 내가 제발 저녁에 맛있는거 하지 말랬잖아!"

"어, 너는 먹지 마. "

"아니, 다니어트는 내일부터 할래. 엄마, 내일은 진짜 맛있는거 하지 마!" 

"그래~"

또 지키지 않을 약속을 하며...

오늘은 따듯할때 맛있게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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