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라마앞 짝다리

웰다잉강사의 삶에서 가벼워지기

by 리턴브레인



사실, 어릴 때부터 '죽음'에 대해서 굉장히 관심이 많았다. 죽음, 그 자체보다는 인간의 삶, 그 마지막이 결국은 '죽음'이라는 것에 반신반의했던 것 같다. 정말 마지막은 죽음이라면 왜 사람들은 이다지도 아웅다웅 헐레벌떡하면서 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에, 죽음 외에 뭔가 계속 살아남을 방법이 있겠지, 했다. 10대 때의 죽음에 골똘했던 그 생각이 몇십 년이 지나 노인복지관 왕초보로서 자격증도 없이 웰다잉강사에 도전하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Y복지관에서의 웰다잉수업은 2시간씩 12회기였고, 한 회기가 끝나면 계속 개강하여, 그다음 회기는 다시 100% 다른 분들로 채워지면 좋으련만, 2시간씩 12회기를 마무리하고, 수료하고도 또다시 재수강하시는 분들이 늘어나다 보니까, 주제는 똑같은데 풀어야 할 이야기는 계속 새로운 것으로 채워나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특히, 첫 오리엔테이션 때, 일주일만 살고 조용히 죽어버리고 싶다고 하신 회원님은 이 수업을 듣게 되어 너무 다행이라고 하시면서 같은 수업을 1년 동안 4회기를 계속 수강하셨다. 물론 처음과 다르게 목소리에 힘도 생기고, 얼굴도 밝아지셔서 무척 다행이긴 했다. 남편과 사별 후, 몇 년을 힘들게 버티다가 이 수업에 참가하시면서 다시 살 수 있게 되셨다고 고마워하셨는데 , 이후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살려 낭독을 하게 되시면서 내게 '보람'이라는 선물을 안겨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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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계속 재수강하시는 분들이 늘어나자, 서로 가까워지기도 했고, 연세들이 있으시다 보니 들려주시는 죽음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들이 구체적이고 신기한 내용들이 많았다. 나보다 죽음에 대해 더 고수이신 분들 앞에서 더 이상 웰다잉만을 주제로 얘기하기보다는 삶에서 가벼워지기 위해 했던 지난날 배낭여행기를 들려드리면 또 그렇게들 좋아하셨다.


나는 1997년 소달구지가 끄는 수레에 핵무기를 운반한다는 얘기를 지인으로부터 듣고, 처음 인도를 방문하기 시작하여, 짧게는 한 달에서 3개월~6개월씩 중국, 티베트, 네팔, 인도를 횡단하거나 미얀마, 태국을 경유하는 배낭여행을 꽤 했었다. 그래서 복지관 회원님들이 죽음에 대한 생생한 체험담을 공유하시면, 나도 만만치 않은 내 경험의 썰들을 풀어놓곤 했다.









당연히 처음에는 인도 바라나시 화장터의 개 dog하고의 대치전이나 티베트고원에서만 시행되는 장례방식인 시체를 잘게 **한 후, 새들에게 내어주거나 바람에 날리는 조장의 장소 세라사원 풍장터에서 라면 얻어먹은 이야기들처럼, 죽음과 연관된 것들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차차 일반 여행기로 넘어갔는데, 그중에는 인도에서 맨 처음으로 달라이라마를 만났을 때의 에피소드도 있다.


2000년대 초반이었던 거 같은데, 나는 당시 달라이라마를 잘 알지 못했고 다만, 정치적, 종교적 최고 지도자임에도 국민들의 교육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던지, 자국의 독립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가진 친미적인 인물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당시 다람살라에서 한국인을 위한 달라이라마의 법회가 4박 5일 동안 진행된다는 얘기를 인도 뉴델리 도착 후 들었을 때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데, 다람살라가 영국군의 휴양지였기 때문에 굉장히 아름답고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다는 얘기에, 여행으로 지쳐있던 즈음에 델리에서 교통편도 괜찮아 갑자기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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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회 마지막날 한 사람씩 달라이라마와 일대일로 대면하는 시간이 있는데, 공식적으로 법회에 단체로 참가한 200여 명의 한국인들의 순서가 끝나고도 티베트스님들이 직접 만든 불상이 남아있으면 배낭여행자들도 받을 수 있으니 기다려보라고 했다. 불상을 지니고 여행하면 안전하다고 해서, 받아가야지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대체로 하얗고 깨끗한 단체 참가자들 뒤로 전혀 그렇지 못한 이방인 같은 배낭여행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반항기 가득한 20대의 눈빛을 한 나는 단상 위의 달라이라마를 호의호식하는 지도자정도로 여기며 팔짱 낀 채 짝다리 짚고, 그 와중에 가끔 곁눈질하며 방자한 태도로 배낭여행자들과 함께 맨 뒷 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점점 줄이 줄어들다가 바로 앞 앞사람 순서까지 왔는데, 그때까지도 팔짱과 짝다리를 풀지 않고 있었다. 높은 법좌에 앉아계신 달라이라마 앞에 서면, 대기 중인 옆의 티베트스님이 재빠르게 목에 흰 천을 둘러주는데 그러면 달라이라마로부터 불상받고 바로 나오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내 순서가 되었는데, 그 와중에 나는 바로 앞사람이 어떻게 하는지를 보고 기억해 두었다가 그대로 해야 하는데, 내 순서가 되어 달라이라마 앞에 서자 내 목에는 누군가 걸어주는 축복의 흰 천이 둘러지면서 웬일인지 내 머리는 그 순간부터 작동하기를 멈추었고, 나는 뇌의 지배를 받지 않고, 마치 몸이 다른 제어장치의 지시를 받는 것처럼, 앞서 지나간 그 누구보다 머리를 깊이 조아리며 달라이라마를 향해 너무나 황공하다는 듯 푹! 꺾여 복종의 인사를 하고, 내 두 팔은 불상을 꼭 받고야 말겠다는 불굴의 의지를 표현하며 힘차게 달라이라마 앞으로 뻗어 제게 하사하소서!! 온몸으로 굴복하고 있었고, 머리끝에서부터 발 끝까지는 거부할 수 없는 환희심이 온몸으로 퍼져 오르면서 잠자던 세포들이 살아난다는 느낌이 들면서 입꼬리가 나도 모르게 지맘대로 귀에 걸릴 정도로 환하게 미소를 짓게 되는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동안의 피로와 이런저런 잡념들이 사라지고, 몸이 가벼워지면서 머리는 왜 또 맑아지는지, 내 순서가 끝나고 밖으로 돌아 나와서는 이해할 수 없고 어이없는 내 행동과 나를 배신한 상쾌함에 '어? 내가 왜 이러지?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 불상을 받아 들고 싱글벙글 정신 못 차리고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그런 내게 바로 뒤에 있던 여행자가 우는 듯이 달려오며, " 나 지금, 너무 기분 좋아요~~, 이제야 내 종교를 인정받게 된 거 같아요. 우리 집은 원래 대대로 불교 집안인데, 저는 어릴 때부터 절에 가기가 싫었고, 교회가 좋았어요, 그 문제 때문에 부모님과 계속 싸우다가 집을 나와서 이번 여행을 오게 된 것인데, 여기서 불상을 받아가서 어머니께 선물로 드리고 화해하려고 했는데, 달라이라마께서 불상을 주시려다가 멈칫하시더니 고개를 저으면서, 너는 이것을 지니지 않는 게 너에게 좋다, 너의 수호신은 다른 분이시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기쁘면서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내 종교가 뭔지 확신이 생겼어요."


울면서 뛰어오더니 주저리주저리 얘기하자, 주변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신기하다며 모여들었는데, 이번에는 그 뒤에 있던 또 다른 여행자가 울듯이 하면서 이번에는 불상을 받아 들고 달려오면서 똑같이 얘기하는 것이었다. 종교만 다르게 말이다. " 나는 기독교를 모태종교로 태어났는데 교회만 가면 머리가 너무 아프고, 이상하게 절을 좋아해서 엄마랑 계속 싸우다가 못 견디고 이번에 여행을 오게 된 것인데, 불상을 받고 싶어서 손을 내밀었더니 달라이라마가 불상을 주시려다가 멈칫하시길래 나도 모르게 달라이마라를 보면서 손을 쭉 내밀었더니, 빙긋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끄덕하시면서 불상을 내어주셨어요. 저는 이번에 제 종교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게 되어 너무 기뻐서 자랑하고 싶어요!"라고 하였다. 주변에 사람들이 다들 신기하다며 어떻게 똑같은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연달아 그렇게 줄 서 있었느냐, 달라이라마는 또 어떻게 그걸 알고 불상을 안주기도, 주기도 하고 그러시냐, 며 이구동성 계속 신기하다는 반응들이었다.


내 바로 뒤에 연달아 서 있던 그 처자들의 얘기들도 정말 신기했지만, 나는 달라이라마 앞에서의 그 짧은 순간, 내가 아닌 듯한 나의 반응이 제일 웃기고 신선했다. 나만 아는ㅎㅎ 쑥스러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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