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복지관 웰다잉강사

이토록 무모한 도전기

by 리턴브레인

셀프 은퇴하는 마음으로 하던 일을 정리하고, 문득 노인복지관에서 수업을 해보면 어떨까, 했을 뿐이다. 너무 심심하지 않게, 일주일에 하루 정도, 일이 있는 게 좋을 거 같았고, 대단한 준비 없이 시작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딱히 자격증이나 경력이 필요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고, 노인복지관이 어디에 어떻게 설립되어 있는지도 몰랐다.


노인복지관수업에 필요한 자격증도 없었고, 60세 이상을 대상으로 무엇이든 해본 경험, 경력이 없던 상태에서 덜컥 시작하게 된, 동작구 S노인복지관 10여 년 숙련자들 앞, 부끄럽고 죄송한 단전호흡수업을 시작하고 얼마 뒤, 다른 지역구에 있는 Y노인복지관에서 강사모집의 공고가 떴는데 다양하게 과목들이 꽤 많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과목을 찾아보았더니, 이게 웬 떡이냐, 산수반이 있는 것이다. 산수반이 무슨 자격증이 필요하겠는가? 먼저 찜!, 해놓고, 또 할 만한 과목을 살펴보니, 웰다잉이 있었다. 좋은 죽음 이란, 인간에게는 숙제 같은 것이기에 감히 자격증 따위가 있으리라고 생각을 못했다. 자격증 없는 나는 나의 능력에 대한 자기 점검 없이 무작정 웰다잉도 지원을 했다.


이력서와 강의계획서를 양식에 따라 작성 후, 이메일로 보내야 했는데, 달리 채울 내용 없는 이력서에는 소중한 이름, 주소, 전화번호, 이메일주소를 온 마음으로 가득 채워 넣었다. 자격증과 경력을 써넣는 곳은 표로 쓰게 되어있어서, 이제 막 시작한 단전호흡강사 한 줄 넣고, 다른 줄은 섭섭하지만 깔끔하게 비워놓았다. 이력서에는 볼 게 없기 때문에 '바로 서류탈락~!!'에서 살아남고자, 강의계획서만이라도 제대로 채워 제출해야 했다. 차별화 전략을 위해 남들이 안 쓸 거 같은 항목을 강의계획서에 기입했다.


면접은 비대면 줌이었다. 수업에 대한 나의 생각을 묻는 질문은 별로 없었던 것 같고, 자기소개를 간단히 해보라고 했는데, 내가 제일 자신 없는 것 중에 하나가 자기소개였기에, 당연히 아주 짧게 했다. 그리고, 담당자는 수업에 대한 안내를 했는데, 코로나시국이라 첫 개강 후 3개월 동안은 비대면 줌으로 한단다. 첫 수업만 복지관에서 주의사항과 수업안내등 대면수업으로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고, 나머지 3개월 동안의 수업은 줌으로 진행한다고 하니, 채용되기만 한다면, 얼마나 운 좋은 기회인가! 노인복지관 왕초보로서는 꼭 잡고 싶은 조건이었다.


그런데, 합격자 발표되었으니 홈페이지에서 확인하라는 문자를 보고, 홈페이지 채용정보 게시판에 들어가 보니, 최종합격자에 다른 과목들의 강사명과 함께 내 이름도 올라가 있는 것이다. 산수반과 웰다잉 2개 모두 합격인지 한 과목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합격자명단을 위에서 아래로 보면서 내 이름을 확인하고, 이게 무슨 일이지, 싶어서 다시 아래에서 위로 훑으면서 내 이름을 또 확인했다. 나중에 문자가 왔는데, 웰다잉 과목으로 채용된 것이었다. 12회기 수업으로 3개월마다 개강하는데, 계약기간은 1년이었다. Y복지관은 단전호흡수업 중인 S복지관보다 훨씬 큰 곳이었고, 나는 자격증도 없었고, 이제 시작한 초보강사에게 2시간짜리 웰다잉수업을 맡기다니!


그래서 이 복지관이 이상한 곳은 아닌지 인터넷으로 검색까지 해 보았다. 예전에 **복지관, **교육대 이런 이름의 사건들이 있기도 해서 도심 한복판이라도, 혹시라도 수상한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곳은 아닌지, 사건사고가 있던 곳은 아닌지 하고 열심히 검색해 보았더니, 업무가 지나치게 많은 곳이라는 글이 보였고, 복지사끼리의 왕따 문제등이 검색에 걸렸다. 다행히 의심스러운 연결고리나 사건사고 같은 것은 검색으로는 나오지 않았다. 이때가 2022년이었는데, 나는 이때까지 노인대학, 노인복지관, 경로당을 구분하지 못하던 때였고, 노인복지관은 어떻게 설립되는지 아예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아무런 자격증도 정보도 방향도 없이 웰다잉수업을 시작하게 된 이 무모한 노인복지관 초보강사는 이제 개강오리엔테이션수업 준비를 해야 했다. 개강 수업 다음 주부터는 바로 줌수업이기에 줌사용방법도 익혀야 했고.



뭔가를 차근차근 배워나가는 것을 잘하지 못하는 나는 완전 기본적인 사용법만 익힌 후, ppt를 띄우고 그냥 주야장천 떠들기로 했다. 동영상을 이용하거나 여러 가지 기법들을 활용하면 좋겠지만, 정작 웰다잉내용도 잘 모르기 때문에 줌사용법만 공부하고 있을 수는 없었고, 부담스러운 단전호흡수업도 준비해야 했고, 웰다잉공부도 해야 했고, ppt사용법, 수업자료를 준비하면서 줌수업을 만들어가야 했다.



S노인복지관 단전호흡강사로 출강한 지 한 달이 지날 때쯤, 드디어 Y노인복지관의 개강일이 되었다. 노인복지관에서는 호칭은 뭐라고 해야 할지, 노트북은 내가 준비하는 것인지, 마이크를 사용해야 할지, 자기소개를 해야 할지, 첫인사를 뭐라고 해야 할지 아무것도 정해놓지 않은 채, 무턱대고 냅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다. 생각보다 젊고 멋쟁이인 분들이 앉아계셨고, 나는 별 할 말이 없었던 관계로 앞으로 수업을 함께 할 것이고, 다음 주부터는 줌으로 수업을 하겠다는 안내등을 아주 큰 소리로 하고, (이상하게도 나는 떨리면 목소리가 엄청 커진다.) 단체 카카오톡방도 만들었다. 그리고, 준비해 온 설문지를 돌렸다. 문항을 좀 많이 넣으려고 했는데 딱히 아는 게 없다 보니, 넣을 내용이 없어서 12문항 정도로 설문지를 만들었다. 설문지를 나눠 드리고, 한숨 돌리고 있는데, 아주 멋있게 차려입고, 금테안경에, 화장도 곱게 하신 분이 "선생님, 여기 좀 잠깐..." 도움을 요청하듯이 나를 부르셨다. 가까이 다가가니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설문지의 문항을 가리키며 머뭇머뭇 자그맣게 물으셨다.

" 여기에는 '한달'이라고 되어있는데, 나는 '일주일'만 살다가 그냥 조용히 죽어버리고 싶은데, 그러면 예,라고 해야 합니꺼, 아니오,라고 해야 합니꺼?" 약간의 겁을 먹은 깊이 주름진 얼굴, 가까이 눈을 맞추니 짙은 화장으로 우울을 감춘 표정, 대충 듣는 순간에도 고민을 품은 질문에 나는 당황했고, 시야가 먹색으로 가려지면서 숨이 턱! 하고 막혀왔다. 설문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었다.


"나는 앞으로 한 달만 살다가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매 년 하고 있다. 예( ) 중간( ) 아니오 ( )"


오신 분들의 생각이 약간 궁금하기는 했지만, 사실 이 설문지를 만들 때 진지함 따위는 없었고, 첫 시간이니 워낙 준비된 게 없어서 오시는 분들의 성향도 파악할 겸, 시간 때우기를 위해서 문항들을 만들었었다. 때문에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것들을 그대로 붙이거나 참조했기 때문에 제대로된 생각을 하면서 준비하고 만든 게 아니었다. 그랬던 이 질문에 진실한 답변을 위해 그토록 고민하시는 분의 부름에, 일단 '이것은 기간보다는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가 핵심'이라는 답변을 드리면서, 숨죽이고 있던 책임감이 피어나는 것을 느끼며 나는 약간 굳어졌고, 오리엔테이션을 마칠 때 쯤, 앞으로 이 수업은 제대로 준비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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