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유턴

웰다잉은 죽음준비가 아니었다

by 리턴브레인

Y노인복지관에서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한 회기에 12강씩 개강과 종강, 개강이 반복되는 웰다잉수업을 이어나갔다. 더 이상은 일반적인 웰다잉 커리큘럼에 맞추지 않았다. 죽음에 있어 나보다 의연하고, 죽음 관련된 많은 경험을 가지고 계신 분들에게서 갖가지 실제 사연들을 들으면서 죽음이 얼마나 나와 가까이 있고,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인지를 생생하게 많이 배우다 보니, 준비된 내용과 정보들은 정리하여 제공하고, 필요이상의 의미부여도 하지 않았다. 단지, 각자 자신의 존재가치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내게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백지상태에서 출발한 이 웰다잉강사는 2시간 동안 채울 내용을 고군분투하면서 찾다가 예전에 한 일간지에 실렸던, '어느 95세 노인의 수기'를 수업시간에 함께 읽게 되었다. 글을 쓰신 분은 전국 최초로 대학생창업보육센터도 설립하셨다는데, 선구안이 대단하신 분이었던 거 같다. 이 글은 노인복지관의 웰다잉반 수강생뿐만 아니라, 나의 심장을 강하게 진동시켰다.



어느 95세 노인의 수기


나는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결과, 주위로부터 실력을 인정받았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 덕에 63세 때 당당한 은퇴를 할 수 있었죠.

그런데 지금 95번째 생일에 얼마나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지 모릅니다.


내 63년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이후 30여 년의 삶은 후회되고 비통했습니다.

나는 63세 퇴직 후, “이제 다 살았다. 남은 인생은 그냥 덤이야.”라는 생각에

그저 고통 없이 죽기만을 바래고 기다렸습니다. 덧없고 희망이 없는 삶…

그런 삶을 무려 32년이나 살았습니다.


32년의 시간은 지금 내 나이 95세로 보면, 3분의 1에 해당하는 기나긴 시간입니다.

만일 내가 퇴직을 할 때 앞으로 32년을 더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난 정말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때 나 스스로가 늦었다고…, 뭔가를 시작하기에 늦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너무나 후회됩니다.

나는 지금 95세지만 정신이 또렷합니다.


이제 나는 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시작하려 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10년 후 맞이하게 될 105번째 생일날!

95세 때, 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이 글을 읽고, 약간의 멀미현상이 왔다. 수학과를 졸업하고, 수학강사, 학원도 운영하다가 오십넘어서까지 수학을 가르치는 것이 고달픈 거 같아서 셀프은퇴를 했었다. 그리고 훨씬 수월할 거 같았던 노인복지관강사를 시작했던 것이다. 사실 진짜 고달프고 힘들었다기보다는 삼십 대 때, 가까웠던 강사친구가 '학원강사는 자존심 버려야 하니까 오십넘어서는 하면 안되는 일'이라며, 오십이후에는 우아하게 여행과 문화생활만 누릴 거라는 말을 자주 했었기 때문에 어느새 그것이 내 생각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특별히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오십이 되고부터는 이 일이 그만두어야 할 무거운 족쇄가 되어있었다. 그래서 학원을 쫓기듯이 아주 싸게 처분하고는, 이제는 노인복지관 강사해야지, 하면서 나름 만족해하고 있었다. 수학강사일을 그만두더라도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경험이 아니라, 내가 가진 이유 때문에 스스로 자연스럽게 정리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95세 어른의 가르침으로 뒤늦게 찾아왔다.


그리고, 95세 나이에 어학공부를 시작했던 그 분의 마음처럼, 55세에 나도 수학가르치는 일을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남이 보면 재능일 수도 있는데, 나는 그 사실을 몰랐고, 스스로 문질러 꺼버린 타다 남은 재를 찾아 투잡을 준비하게 된 것이다.



비오는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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