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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daugust Jun 14. 2022

#6 하늘의 별_멜버른 집 구하기

 이민에 가장 큰 일은 살 집을 구하는 것이었다. 집은 가장 중요한데 미리 준비해놓을 수 없다는 게 참 불안한 항목이다. 이민을 결정하고 한국에서도 미리 알아봤지만, 알 수 있는 건 호주를 가서 집을 봐야 계약을 할 수 있겠다는 거였다.

 "가서 구해도 금방 구할 수 있을 거야."라는 남편의 말에 사실 큰 문제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도착해서 당장 있을 숙소만 미친 듯이 에어비앤비에서 찾아다녔다. 그렇게 우린 2주만 있을 집만 구해 놓은 체 호주에 도착했다. 도착한 첫날은 구해 놓은 에어비앤비 아파트에 짐만 던져 놓고서 시티로 향했다. 멜버른 시티에서 휴대폰을 개통하고, 은행에 가서 계좌를 개설했다. 두 가지만 해도 벌써 반나절이 지나버리는 호주 시스템.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루프탑 바에 가서 레몬라임 비터* 한 잔을 마셨다. 남편이 여기저기 안내해주는 곳으로 다니면서 문득 나는 생각했다. 앞으로 살게 될 이 호주, 멜버른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게 될 곳은 어디가 될까. 그곳이 어디가 될지 모르지만 그렇게 좋아지는 곳들이 생기게 되기까지의 히스토리, 그리고 그 히스토리가 쌓이는 그 시간들. 나는 이민을 행복하게 해낼 수 있을까.



남편이 좋아하는 멜버른 시티의 루프탑 바에서



블루스카이, 달콤 알싸 한 레몬라임 비터, 드 넓은 바다, 맛 좋은 커피. 이민에 대한 환상에 촉촉이 젖어있던 내가 그 환상이 깨진(지금 생각해보면 시작에 불과한) 건 집을 보러 다니면서 였다. 먼저 우리가 호주 멜버른에서 집을 구할 당시의 시스템을 설명하자면, 간단히 말해서 부동산 에이전시가 갑이었다. 호주는 부동산 매물을 서치 할 수 있는 사이트가 크게 두 군데이다.


https://www.realestate.com.au/

https://www.domain.com.au/


이 두 사이트에서 나에게 맞는 조건과 내가 원하는 컨디션을 선택을 하고 검색한다. 매물 정보를 읽다 보면 Inspection이라는 게 있는데 한 마디로 집 보러 가는 거다. 집을 볼 수 있는 날짜가 나와있는 매물이 거의 대부분인데 그렇지 않은 경우는 내가 따로 담당 부동산과 예약을 해야 한다. 인기가 많은 매물은 볼 수 있는 날짜가 아예 정해져 있어서 그때 내가 맞춰서 예약을 미리하고 가야 한다. 한국에서 부동산을 많이 돌아다니진 않았지만, 신혼집을 구할 때 경험을 떠올려 보았을 때 한국의 시스템과는 생소해서 좀 당황했다. 더 당황스러웠던 건 나만 당황한 게 아니라는 거다. 남편도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7년 만에 제2의 고향에 돌아왔는데 웬걸 고향이 예전 그 고향이 아니었다. 인구도 폭발적으로 많아졌고 부동산 시장 붐이(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일 줄은 몰랐다.

남편은 자기가 집을 구할 당시, 그냥 근처 부동산에 가서 조건을 말하면 그에 맞는 매물을 보여준다고 회상했다. 현 한국의 시스템과 비슷했다. 물론 집을 보려면 미리 부동산과 시간을 예약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우리에게 선택지를 미리 준비해줬던 시스템과 달리 내가 먼저 매물을 골라서 거기서 제시한 시간에 찾아가야 하는 것이었다. 왜?라는 생각은 첫 인스펙션 때 아~ 하면서 바로 이해되었다. 우리가 고른 매물을 보러 온 사람들이 팀으로만 20팀은 족히 되었다. 약속된 인스펙션 시간보다 좀 이르게 도착해서 아파트 건물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스멀스멀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처음엔 설마. 설마. 했는데 그 모든 사람들이 다 우리 같은 사람이었다. 한 집을 보러 20팀이 모인다. 그래서 부동산에서는 아예 방문 가능한 날짜를 정해놓고 자, 이 매물! 올 사람 모여! 라는 시스템일 수밖에 없구나. 바로 납득이 되었다.

 

 인스펙션을 진행하는 부동산 에이전시 직원이 예약 명단을 들고 담임선생님처럼 출석을 부르기 시작한다. 호명된 예약자들이 손을 들고 확인이 끝나면 우리는 줄을지어 신성한 매물이 있는 곳으로 올라간다. 첫 인스펙션이었고 예상했던 대로가 아니라 전혀 다른 상황으로 흘러가는 우리의 '집 보기'에 나는 머리가 너무 혼란스러웠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집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사진으로 여기저기 찍어보고 부엌과 화장실도 놓치지 않고 둘러보았다. 이제 제정신을 차릴 찰나, 인스펙션 시간이 마무리되어가고 있었는데 나는 다시 또 뒤통수를 맞게 되는데... 그건 바로 신청서. 에이전시 직원이 손에 들린 A4용지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한다. 직원이 신청서를 건네주면서

'너 신청할 거야? 작성해서 내면 심사 후에 연락해줄게.'라고 말했단다.

그렇다. 집은 하나. 2팀 이상만 돼도 이것은 컴페티션! 

시티 근방. 아파트. 2명이 살기 적당한 스튜디오 사이즈. 주 $400 이하의 렌트비. 

한여름에 밖에 내놓은 달달한 수박 한 조각에도 초파리가 수십 마리가 꼬일 수 있다는 건 당연한 이치다. 내 상황이 그러했다. 내가 좋으면 다른 사람들도 좋은 것. 나는 심사를 받아야 했다.

심사의 기준은 크게 3가지. 비자. 계좌. 직장.

비자는 남편이 일단 영주권자라 반은 먹고 들어간다 치자. 계좌는 한국에 있는 돈 없는 돈을 영 끌 해온지라 붙어 볼 만했고.(그게 전재산인지는 모를 테지만) 문제는 직장이었다. 나와 남편은 이제 막 호주에 떨어진 백수들이다. 어떤 집주인이 고정수입이 없는 세입자를 환영할까. 당연히 첫 집은 탈락하고 만다.


 다시 노트북을 켜고 집을 찾기 시작했다. 경쟁을 준비해야 했다. 첫 집을 준비 없이 덤벼들었다는 생각에 멜버른에 있는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요즘 집을 많이 구하는 시즌인 데다가 사람이 정말 많아져서 구하는 게 힘들다는 게 대부분의 대답. 그래서 렌트비를 제시한 가격보다 더 올려서 신청서를 내거나, 일시불로 몇 달치를 미리 내겠다는 조건을 거는 것도 방법이라고 한다. wow 이 정도라고? 이렇게 까지 해야 경쟁력이 생긴다니. 골치가 아팠다. 이런들 저런들 우리는 다시 열심히 (우리를 받아줄) 집을 찾아내는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집부터는 각오를 하고 다녔다. 이 집이 안 될 수도 있다는 각오. 금방이라도 다음을 준비해야 하는 각오. 우리는 차가 없었기 때문에 걸어서 지하철을 타고 트램을 타고 움직여야 했다. 하루에 볼 수 있는 매물은 많아야 2개. 스케줄과 동선을 잘 짜야했다. 나름 해외에서 여행을 다니는 기분이라(적어도 나는) 힘들어도 그런대로 위로가 되었다. 그러나 집을 하나 둘 셋, 그 이상 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아... 집을 구하면 이제 차를 구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두 번째 집은 멜버른 시티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조용한 동네의 아파트이다. 그래도 주변에 학교가 있어서 마트나 다른 인프라들이 잘 갖춰져 있었고 무엇보다 아파트 건물이 이제 막 지어진 새 건물이어서 컨디션이 최상이었다. 첫 입주라는 메리트는 한국이나 호주나 어디에서나 매력적이다.





 그런데 마음이 끌리지 않는다. 집을 볼 때 아, 여기다. 여기가 내 집이야. 하는 마음이 생긴다는데. 아직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내가 지금 똥과 된장을 구분할 때가 아닌 건 맞는데, 그래도 1년 이상은 살아야 될 집을 쫓기듯 막 들어가고 싶진 않았다. 백수 부부가 남는 게 시간인 것을... 좀 더 많이 보러 다니다 보면 언젠가는 만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집을 보러 가서 그 동네 탐방하는 일도 매우 즐거운 일과였다. 집을 보고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며 동내 분위기를 살폈다(는 허울 좋은 핑계다. 커피와 버거가 먹고 싶었지). 내가 좋아하는 카페라테를 정말 맛있게 즐길 수 있는 호주. 어느 카페에 가도 중박은 치는 맛. 가격도 $4- $4.5로 한국 가격으로 치면 4000원대이다. (그 당시 환율 8백 원대)









세 번째 집은 시티에서는 좀 가까웠지만 생각보다 공간이 좁았다. 부엌도 굉장히 간소했고 무엇보다 해가 잘 들지 않아서 사진에서 보이듯이 밖은 화창한데 집은 불을 켜도 어두웠다. 이런 집은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 집은 어플라이도 안 했던 거 같다. 괜찮아. 우리에겐 다음 집이 있을 테니까.







멜버른 시티에서 가까운 곳에 St Kilda beach가 있다. 남편의 말을 빌자면, 예전에는 약쟁이들이 많이들 모여 약을 하는 곳이라 해변에서도 바늘을 조심해야 하는 바다라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예전이다. 우리가 갔을 때도  지역 분위기가 많이 변화되었고 그때나 지금이나 집값이 굉장히 많이 오른 동네이다. 어쨌든 시티에서 가까우니까 어떤지 이 지역의 아파트 매물 하나를 보러 갔었다. 그리고 남편과 나는 둘 다 이 집이 되면 좋겠다는 의견을 가지고 그 집에서 나오게 된다. 아파트 바로 앞에 시티로 바로 가는 트램이 있다는 게 큰 장점이었고, 아파트기 때문에 치안이나 보안도 걱정할 게 없었다. 내부 컨디션은 오래되긴 했지만 우리가 살기에는 그리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근처에 해변이 있다는 것. 이 해변에는 밤이 되면 펭귄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이날 우리와 함께 동행한 남편의 친한 동생이 펭귄을 보여주겠다고 해변까지 데리고 가주었다. 나는 사실 농담하는 줄 알았다. 아니 여기서 무슨 펭귄을 봐? 다시 되묻는 게 바보 같아서 농담으로 넘겼는데, 피어를 걷다 보니 정말 펭귄을 볼 수 있는 스폿이 안내되어있었다. 카메라 라이트 없이 사진을 찍어야 하고 반드시 조용히 해달라는 안내와 함께. 어둑어둑한 곳에 펭귄들을 위한 빨간색 보호 라이트만 켜진 채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어둠과 침묵 속에 우리는 귀여운 펭귄을 만날 수 있었다.

한 가지 놀라웠던 건, 동물들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야생 펭귄이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으니 카메라 라이트 금지, 소음 금지였는데, 이 모든 걸 단 한 사람도 어기는 사람이 없었다. 사실 한국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라 오... 하고 놀라웠다. 덕분에 나도 이 귀여운 야생 펭귄을 볼 수 있었다. 이 펭귄들은 다시 헤엄쳐서 어딘가로 갔다가, 또 밤이 되면 이리로 오곤 한단다. 멜버른 여행을 계획하신다면 이런 작은 이벤트도 경험해보는 거 나쁘지 않을 거 같다.




 이 날 차를 태워 준 동생이 고마워서 저녁을 사기로 했다. 멜버른 시티 근처에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모여있는 Lygon street 이란 곳이 있다. 여기서 저녁을 먹기로.


확실히 이탈리안은 한국에서 먹는 게 제일 맛있다. 호주에서 먹었던 여기도 맛있긴 했는데 나는 역시나 한국인이라 그런지, 파스타나 피자는 한국에서 먹었던 맛이 제일 맛있다. 그래도 호주 와서 디너다운 디너를 가져져 보았다. 저 많은 음식을 다 먹고 나니 배가 터질 거 같았다. 아. 배부르다! 근데 우리 집 구할 수 있겠지?






이민 후 처음 찍은 우리의 투샷














나의 호주 안내서


*레몬라임비터(lemon lime bitters)



 레몬에이드와 라임쥬스 그리고 비터가 가미 된 음료이다. 호주에서 사람들이 즐겨마시는 음료이기도 하다. 바에서도 주문해서 즐길 수 있고 집에서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나는 이민 전 시드디로 여행 갔을 때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앞의 바에서 처음 마셔보았다. 바 직원이 직접 눈앞에서 만들어주었는데 그 청량감은 이루어 말할 수 없다. 집에서 만들어 먹을 때에는 얼음과 탄산수에 레몬쥬스(혹은 라임쥬스)를 섞고, 마지막으로 비터(아래 사진 참조)를 첨가해주면 된다.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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