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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daugust Jun 20. 2022

#7 그래서 나의 첫 멜버른 집

 우리는 2주간 집을 계속 보러 다닌 결과, St kilda에서 본 아파트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이번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아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렌트비를 제시된 가격보다 조금 더 올려서 적었고, 3개월치를 미리 낼 수 있다는 조건도 걸었다. 사실 이 아파트는 그동안 우리가 보러 다닌 집들보다는 가격대가 좀 있었다. 규모가 큰 아파트여서 수영장과 헬스장도 이용할 수 있었고, 아파트 건물 바로 앞에 트램이 다녀서 한 번에 시티도 갈 수 있다. 올라간 가격대만큼 경쟁률은 낮았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선택을 받았다! 기쁨과 안도감은 이루어 말할 수 없었다. 이제 더 이상 옮겨 다니지 않아도 된다니!

 그런 와중에 우리가 예약해두었던 마지막 아파트 한 군데. 이곳을 보러 가느냐 마느냐 고민 중이다. 멜버른에는 바다를 따라 남쪽으로 쭉 부촌이 자리하고 있는데 가장 유명한 부촌은 시티와 적당히 근접하면서도 바로 바다 앞 동네이면서, 명문 사립 중고등학교가 있는 지역인 Brighton*이라는 지역이다. 여기서 조금만 더 내려가면 위치한 곳이 바로 Hampton. 우리가 집을 보러 갈 곳이다. 시티에서 트레인을 타고 30분 거리. 한적한 동네. 하지만 가격대가 있는 지역이다 보니 우리 예산에 맞추려면 작은 스튜디오 사이즈의 아파트밖에는 구할 수가 없다. 아파트도 규모가 작아서 수영장도, 헬스장도 없다. 가장 큰 장점은 근처에 바다 있다는 것. 남편은 동네 구경도 할 겸 근처에 바다도 있고 하니 한 번 가서 보자고 했다. 나 역시 안 갈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일단 한 군데 결정된 곳이 있기도 했고(아직 계약 전이긴 하지만), 다른 때보다는 마음 편하게 여행하듯 마지막 인스펙션 현장으로 향한다. 트레인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앞에 있는 아파트. 오 역세권. 근처 건물이 공사를 하고 있어서 주변을 펜스를 쳐 놓아서 입구가 헷갈렸다. 입구를 찾지 못해서 반대편까지 걸어가서 두리번거리며 헤매고 있는데, 우아하게 잘 차려입은 할머니가 우리에게 다가와서 인사를 해주었다.

'안녕? 너네 괜찮아?'

'아! 안녕? 우리 아파트 보러 왔는데 입구를 못 찾고 있어.'라고 하니

'거긴 반대쪽으로 돌아가야 해'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외국에 나가면 인종차별은 분명히 있다. 그렇지만 호의적인 사람들도 이렇게 분명히 있다. 나중에 글에 쓰겠지만, 나는 호주 이민생활을 하면서 차별적인 무시를 받은 건 오히려 한국 사람에게서다. 감히 말할 수 있지만, 호주에서 나는 정말 많은 위로를 받았다. 사람에게든, 자연에게든. 해외 이주를 고민하는 데 있어서 인종차별 때문에 크게 고민한다면 절대로 두려워하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다. (사실 다른 것이 더 두렵... 에헴.)




 이상하게도 오늘 그 집을 보러 온 다른 사람이 없다. 경쟁이 없다는 얘기. 오호라..? 이거 이 아파트도 우리가 신청하면 될 수 도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스쳤다. 미닫이로 열리는 방 1개 거실 겸 부엌. 발코니. 그리고 자그마했지만 따로 세탁실도 있었고. 그 옆으로 화장실도 있었다. 그리고 냉장고도 빌트인으로 달려있었다. 집을 둘러보는 동안(사실 둘러볼 사이즈도 아니다) 부동산 에이전시도 우리에게 귀띔해주었다.

'아마 너네가 신청하면 바로 들어올 수 있을 거야. 어때? 마음에 들어?'

그래 그렇지 이렇게 돌아가야지, 이제야 집 볼 맛이 난다 야. 라며 거들먹거리고 싶었지만,

'오 정말? 좋아. 신청서 오늘 내고 갈게.'라고 칼같이 대답했다. 집 보는 건 금방 끝났다. 방 하나 짜리 스튜디오를 하루 종일 볼 일은 아니니까. 트레인 타고 온 시간보다 짧게 끝난 집 보기. 여기까지 온 시간이 아까워 서라도 우리는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지도를 보니 걸어서 6분 거리에 해변이 있었다. 세상에, 역세권+씨(sea) 세권이라니. 아파트 옆 건물에 있는 1층 카페에서 카페라테 2개를 테이크어웨이(호주는 to go가 아니고 take away) 했다. 남편과 홀짝홀짝 커피를 마시며 바다가 있는 곳으로 걸었다.


hampton beach


 도착한 Hamptom beach. 해변 옆으로는 바다를 따라 자전거도로와 산책로가 이어지고 바다는 끝도 없이 펼쳐진다. 해변가를 따라 걷는데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온 할머니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되지도 않는 영어로 대화를 겨우겨우 이어 가면서  어느새 내가 한국에서 디자이너를 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여기 아파트 보러 왔는데 동네가 너무 좋다.'

'응 나 여기 사는데 너무 좋아. 여기로 이사와.'

할머니와의 담소가 끝나고 우리는 돌로 만들어진 피어를 쭉 걸었다. 나는 그때 불현듯 느껴졌다.

여기다. 여기야, 내가 살 곳. 나 여기서 살게 될 거 같다.


바다 산책을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다시 아파트 근처 상점가로 향했다. 오후 5시. 상점들이 벌써 하나 둘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카페는 이미 다 문을 닫았고, 길 건너에 이제 저녁 영업을 시작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눈에 들어왔다. 리소토와 피자를 하나 주문했다. 생각보다 맛있는 맛에, 생각보다 많은 양에 놀랐다. 식전 빵과 리소토, 피자 한 판. 결국 우리는 피자를 남겼고 남은 음식은 집에 가져가기로 했다.

 





우리는 여러 가지로 St Kilda 아파트가 조건이 좋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더 가는 건 Hampton 아파트였다. 그래서 과감히 시설 좋고 위치 좋은 곳을 포기하고 좀 더 멀고 좀 더 좁지만, 마음이 가는 곳을 선택하기로 한다. 그래도 아직 두 곳 모두 계약서에 사인을 하기 전이기 때문에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순 없다. 부동산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오길 바라면서 집으로 돌아왔고, 다음날 점심으로 싸왔던 그 동네 피자를 데워먹고 있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집주인 승인 났어. 너네 사인하러 언제 올 수 있니?'


 우리는 hampton 아파트로 결정 후 부동산에 가서 최종 사인했다. 남편은 많이 걱정했다. 만일 자기가 일을 구해서 밖에 나가 있는 동안 아내 혼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낼 것인가. 지루하거나 하면 시티라도 나가서 돌아다니던지 그래야 할 텐데, 너무 조용한 동네에 있다가 우울해하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그러나.

그의 걱정이 민망할 정도로 나는 잘 지냈다. 남편이 출근을 하면 카페에 가서 커피를 시켜놓고 블로그에 글도 써보기도 하고. 근처 도서관에 놀러도 갔다. 바로 옆 마트에 가서 마트 구경도 하고. 아침 러닝도 시작했다. 걸어서 바다에 갈 수 있는 집. 나는 이 동네에 사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다. 조용하고, 눈이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해주는 사람들. 밤에도 시끄럽지 않은 동네. 발코니 문을 열면 멋진 하늘을 볼 수 있고. 아파트 바로 옆에 큰 마트도 있고. 커피만 사러 나왔다가도 어, 한 번 가볼까? 하는 마음만 내어준다면 쉽게 바다까지 걸어갈 수 있다.






나는 혼자 나가서 오징어도 잡았다. 잡은 오징어는 양동이에 담아 두었다가, 남편이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면 회를 떠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 그때  오징어회는  인생 오징어회다.  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내심 나를 걱정하던 남편은 혼자 나가서 오징어를 잡아 양동이에 당당히 담아 들고 들어온 나를 보고는, 모든 것이 기우였다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내가 잡은 첫 오징어



기가 막히게 맛있었던 오징어회
남편에게 오징어 잡은 곳을 소개해 주었고, 이날 남편도 잡았다 (굉장히 뿌듯)



 살아보니 살 수록 더 좋았다. 아파트가 있는 길 따라 상점가들이 줄을 이어 있고, 커피 귀신인 나에게 정말 필수 요건인 카페도 골라 갈 수 있을 만큼 여러 군데가 있다. 동네에서 가장 큰 마트가 아파트 건물 바로 옆 1층에 있었고, 그 옆으로는 약국이 그 맞은편엔 우체국이 그리고 식당들이 상점가를 매우고 있었다. 버스도 아파트에서 나오면 바로 앞에 정류소가 있었고, 트레인도 아파트에서 1분도 안 되는 거리였다. 이 모든 요소들을 집을 구할 때 생각하고 구했던 건 아니지만, 우리의 마음이 가는 곳으로 왔더니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내가 러닝 하던 길
나의 러닝 반환점






그리고 우리가 구했던 아파트

실제 우리가 살았던 집. 우리가 나가고 이 집은 팔렸다.

실제 우리가 살았던 집이다. 우리의 살림살이가 그대로 부동산 사진에 남아있다. 반갑기도 하고 그립기도하고,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처음 이사 갔을때는 식탁도 없어서 바닥에서 밥을 차려먹기도 했는데...

나는 정말 이곳에서 정말 행복하게 살았다.

하지만 실제로 계약 기간인 1년을 다 채우지 못했다. 

그 이유는...

진짜 우리 집이 생겼기 때문이다. 

호주에 와서 나는 우리 집을 갖게 될 줄은 몰랐다, 정말.











나의 호주 안내서


*Brighton Beach


나도 호주 국기 그림을 가진 하우스 앞에서 한 장 남겨보았다


 멜버른 시티에서 차로 25분 정도 떨어진 곳이다. 트레인으로도 바로 갈 수 있기 때문에 접근성도 좋아서 관광객들이 꾸준히 찾고 있는 아름다운 비치로 유명하다. 여기서 가장 유명한 것은 형형색색으로 줄지어있는 비치 하우스인데, Bathing box라고 불리며 개인 소유이며 실제로 부동산처럼 매매도 한다. 수상레저 용품을 보관하는 용도로 쓰인다. 컬러감 때문에 사진을 찍으면 예쁘게 나와서 여기에서 이 하우스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많이 찍으러 오곤 한다. 멜버른에 여행할 계획이라면 한 번쯤 가볼 만한 곳이다. 여기서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면 Middle Brighton Baths라는 곳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바다 수영도 할 수 있고, 카페 겸 다이닝도 할 수 있는 레스토랑도 있다. 여기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추천한다.




middle brighton에 위치한 The baths

이미지 출처 : https://www.middlebrightonbaths.com.au/
이미지 출처 : https://concreteplayground.com/melbourne/things-to-do/brighton-ba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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