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해결되지 않은 무언가를, 꿈꾸다
나의 경우 매일 꿈을 꾼다. 꿈을 꾸고 나면 어떤 장면 하나, 어떤 말 한마디가 그날 하루를 집어삼키기도 하는 것 같다. '내 삶에서 해결되지 않은 무언가가 무의식 깊은 곳에 자리하여 꿈으로 나타난다'는 말을 상기하며 오늘은 꿈작업을 진행해 보았다.
[당신이 오늘 아침에 꾸었던 꿈에 대해 말씀해 보시겠어요?]
[원형으로 된 식탁에 저를 포함하여 3~4명이 앉아있어요. 맞은편에는 유재석 님이 앉아있고요. 서로 돌아가면서 고백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보자고 제안했어요. 제 차례가 되자 저는 앞에 앉아있는 유재석 님의 손을 잡았어요. 손이 굉장히 거칠고 쭈글거려요. "여보, 그동안 허리가 많이 아팠는데 몰라서 미안해. 내가 아이들에게만 관심을 가지느라 당신한테 관심이 없었네. 사과할게. 미안해 내가"라고 제가 고백을 해요. 제 애기를 다 듣고 난 유재석 님의 눈시울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어요. 고개를 돌려 울고 있어요]
[왜 그렇게 고백했을까요?]
[최근에 신랑이 허리가 안 좋아졌어요. 재작년부터 그 애기를 꺼냈는데 제가 "한의원 한 번가 봐"라는 이야기를 꺼낼 때면 "내가 알아서 할게. 신경 쓰지 마"라고 얘기하길래 '알아서 하겠지'하며 잔소리처럼 들릴까 봐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올해 들어 '내가 요새 허리가 좀 안 좋은데 회복이 안 되는 것 같네. 이 상태로는 직장이건 무엇이건 쉬어야 하는 건 아닌가 싶어. 계속 이럴까 봐 불안하네'라고 얘기하며 검사를 받기 위해 일을 하루 쉬어야 할 것 같다고 했어요. 그 말을 듣자, '평소에 내가 너무 무신경했구나, 아무리 알아서 한다고 말했다고 진짜 관심을 안 가졌네' 하는 후회가 올라왔어요. 그 마음이 꿈으로 반영된 게 아닌가 싶어요]
[꿈속에서 신랑이 아닌 유재석이 나온 이유가 있을까요?]
[그러고 보니, 제가 개인적으로 유재석 님을 아는 건 아니지만 화면 속에 비친 그분의 모습을 보면서 모범적인 가장이자 아버지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늘 쾌활하고 장난치는 재미있는 모습을 보면 저 또한 웃음이 나고, 선행과 배움과 더불어 잘 살아가려는 모습을 보면 저 또한 잘살아봐야지 다짐했거든요.]
[울고 있는 유재석을 보고 있을 땐 마음이 어땠나요?]
[짠하고 안쓰러웠어요. 그 우는 모습 어디선가 본 거 같긴 한데...
작년 9월쯤이었어요. 신랑이 아이처럼 꺼이꺼이 울었어요. 저랑 아이들 앞에서. 마치 거대한 성이 무너지듯이 주저앉아서 소리 내어 울었어요. 우는 모습도 처음 봤지만 그렇게 서럽게 우는 걸 보니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어요. 정신이 번쩍 들었던 것 같아요.]
[자세히 애기해 줄 수 있나요?]
[저희가 부부싸움을 하는 패턴이 늘 비슷해요. 그날은 주말아침이었어요. 주말이 되었으니 아이들과 함께 어디 놀러 가고 싶고, 그래야 할 것 같은 책임감 비슷한 게 있는데 특별한 계획 없이 아침을 맞이하는 신랑을 보니 답답하기도 하고 화도 났어요. 아빠니까 주말계획을 세우고 가족들을 이끌고 어디론가 가주길 바랐어요. 하지만 내가 원하는 모습을 지니고 있지 않은 신랑에게 티를 냈어요. 인상 쓰기, 설거지 시끄럽게 하기, 아이들에게 청소하고 이불개라고 잔소리하기... 무언(無言)의 시위를 하고 있던 거예요. 직접 말로 할 수 없으니 내가 지금 화났으니 화를 풀어봐 하며 그렇게... 소리 없이... 말없이... 알아주길 바라며...
그날은 신랑도 한계치에 다다랐던 것 같아요. 그렇게 의미 없는 아침의 대화들이 오고 가면서 늘 하던 목소리를 내다가 "내가 남들처럼 회식을 하는 것도 아니고, 술 마시고 놀러 다니는 것도 아니고,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나는... 그렇게 살고 있는데... 대체... 내가... 뭘... 그리.." 한 맺히듯이 주저앉았어요. 억울하면서도 절망스러운 울음과 함께 한없이 작아지는 신랑의 웅크린 어깨를 보니 그저 같이 울면서 등을 쓰다듬었어요. 미안하다고. 내가 미안하다고.]
[그날의 신랑의 한 맺힌 눈물은 당신에게도 신랑에게도 크게 남아있을 거 같아요. 혹시 그날 일에 대해 두 분이 얘기를 나눈 적이 있나요?]
[아니요. 그날도 오후에 아이들과 함께 산행을 하고 내려왔어요. 그냥 평소대로 밥 먹고, 아이들 씻기고, 재우고. 그게 다였어요.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그다음 날인 월요일쯤 문자로만 대화했던 거 같아요. 얼굴을 마주하며 얘기할 순 없었거든요. '여보가 그렇게 힘든 줄 몰랐다. 미안하다. 나도 앞으로 당신이 애기한대로 살아보겠다'라고 문자 했었고 그에 대해 신랑이 '각자 서로 원하는 거 하면서 살자. 누구 말에 의해서, 책임감 때문에,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편하게 살자.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알려달라'라고 답했던 거 같아요.]
[당신이 꿈속에서 유재석이 나온 거. 그리고 그가 눈이 벌겋도록 울고 있던 모습이 나온 건, 당신의 삶에서 해결하지 못했던 무언가가 남아있어서 꿈으로 보여줬던 거 같아요.]
[네, 이제야 꿈이 보이네요]
[저는 신랑이 문자로 '각자 서로 원하는 거 하면서 살자'라는 말이 차갑고 선을 긋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말은 어떻게 들리시나요?]
[맞아요. 처음에 그 애기를 들었을 때 '각자'라는 단어가 '따로 살자는 건가? 별거하자는 건가? 이혼하자는 건가?' 그렇게 해석되었어요. 뭔가 사랑이 식은 것 같다는 느낌도 들어서 불안하기도 했어요. '우리 부부사이는 이제 끝인가?' 싶었거든요.
또 한편으로는 '나이가 몇인데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일일이 알려줘야 되나?' 싶었어요. 딱 보면 집안일이건 육아건 대충 뭘 해야 하는지 보이는데, 그걸 알려줘야 한다는 게 답답하게 느껴졌어요.]
[당신 주변에 집안일이며 육아며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서 하는 남자를 본 적이 있나요? 저도 가끔 TV에서 본 적은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대부분은 잘 몰라요.
신랑이 '해야 할 일을 알려달라'는 의미가 '당신을 돕고 싶으니 명확하게 알려달라고 부탁하는 거야' 뜻이라면, 이 말은 어떻게 들리세요?]
[반갑게 들려요. 답답함이 사라지고 신랑의 입장이 이해가 돼요. 저는 8년간 주부이자 엄마로서의 삶으로 24시간을 채우고 있던 거잖아요. 처음엔 저도 서툴고 몰랐지만 세월의 힘으로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되었듯이, 신랑의 24시간은 저랑 달랐던 거라는 걸.. 이제 보이네요. 그런 신랑의 삶이 있기에 제가 이렇게 지낼 수 있던 건데 말이죠. 저는, 명확한 지침을 내리지 않은 채 직장부하가 알아서 척척 일해주기를 바라며 일을 못한다고 비난하는 못된 상사였네요.]
[한 가지 더 있어요. 당신은 신랑의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알겠어', 무엇을 사과해야 하는지 모르면서 '미안해'라고 말하고 있어요. 왜 그럴까요?]
[이유는 떠오르지 않아요. 하지만 저는 대부분 그렇게 살았던 거 같아요. 상대가 어떤 말을 했을 때, 예를 들면 신랑이 문자로 '각자 서로 원하는 거 하면서 살자'라고 했을 때에도 '따로 살자는 건가? 별거인가?' 생각했듯이, 해석하는 거 같아요. 제 식대로 해석하며 살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질문하지 않아요.]
[당신은 평소에 저에게 모르는 부분이 있거나 배움이 더 필요하다고 느끼면 질문을 많이 해요. 저는 당신을 '모르는 건 끝까지 질문해서 알려고 하는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그런데 당신은 신랑에게는 질문하지 않아요. "그날 왜 그렇게 아이처럼 울었었는지?", "'각자 서로 원하는 거 하면서 살자'는 의미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해야 할 일을 알려달라'는 신랑에게 해야 할 일을 왜 말해주지 않는 걸까요.
혹시 당신은 남편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나요?]
[활용이라는 단어를 들으니, 마음이 찔려요. 매니저가 떠올랐거든요. 아이들과 놀러 갈 때 차를 운전해 줄 사람, 무거운 짐을 날라줄 사람, 계획을 짜서 데리고 가 줄 사람, 돈을 벌어다 줄 사람, 아이들과 놀아줄 사람, 아이들을 봐줄 사람, 나랑 놀아줄 사람... 저는 남편을 그렇게 매니저처럼 활용하고 있네요.
아마 신랑은 내가 자신을 그렇게 활용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을 거 같아요. 알고... 있었을 거예요..]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
[예전에 했던 애기가 떠올랐거든요. '부모든 친구든 회사든 집에서든 사람들은 내가 가만히 있는 꼴을 못 보는 것 같아. 내가 방바닥이라도 쓸고 해야 좋아하지'라고 했어요...
아내인 저마다 자신을 그렇게 대하고 있었으니, 저희 신랑은 정말 외롭고 기댈 곳이 없었을 거 같아요.]
[신랑에게 집은 어떤 곳이었을까요?]
[어릴 때 태어나자마자 신랑은 바쁜 어머님으로 인해 동네아줌마네 집에서 키워졌고, 집안일과 육아는 대부분 아버님이 하셨다고 들었어요. 어릴 적 엄하셨던 아버님은 설거지하는 신랑을 보고 "그런 거 할 시간에 들어가서 공부하면 된다"라고 얘기하셨대요. 다른 집에서 키워지다 보니, 눈치가 빨랐고 칭찬받으려고 음식도 잘 먹고 잘 웃고 명랑했다는 게 기억나요. 아마 신랑에게 집은 긴장되고 불안했던 공간이었을 거 같아요.]
[지금 현재, 가정을 꾸린 집에서 신랑은 편안해하는 거 같나요?]
[글쎄요, 편안하냐고 물어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회사보다는 편안하지 않을까요?]
[당신은 집이라는 공간에서 기분이 왔다 갔다 하나요?]
[그런 편인 것 같아요. 막 크게 웃고 떠들고 놀다가 갑자기 확 짜증을 내고 잔소리하기도 하고.... 좀 왔다 갔다 하는 편인 것 같아요]
[당신의 어린 시절, 집은 어떤 곳이었나요?]
[기억나기로는 7살 무렵부터인데, 그때부터 부모님의 싸움을 봐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부모님이 이혼하신 대학교 시절 전까지 저에게 집이라는 공간은 늘 싸움이 일어나지 않을까 긴장하며 불안했던 곳이었어요.]
[당신은 지금 집에서 편안한가요?]
[네. 전 지금 집이 편안해요. 유년기시절에 집은 부모님의 싸움이 일어났던 곳이었고, 전학 갔던 학교에서는 저를 괴롭히던 친구가 있었고, 회사에서는 갑질하는 상사가 있어서 일을 할 때마다 혼났어요. 지금 제가 있는 집이라는 공간에는 싸우는 부모님도 없고, 괴롭히는 친구도 없고, 갑질하는 상사도 없어요. 생각해 보니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이곳이 제 인생에서 가장 편안한 상태인 것 같아요.]
[아이들은 집에서 편안해하던가요?]
[가끔 아이들이 "집이 최고야", "집에 가서 놀자"라고 하는 걸 보면 그래도 아이들은 집을 편안해하는 것 같아요.]
[당신과 신랑은 어린 시절 공통적으로 집에서 '편안한' 상태를 맛보지 못했어요. 그럼에도 편안하게 살기를 원하고 있어요. 내가 살면서 평생 맛보지 못한 음식을 만들려고 하면 어떨까요? 어렵고 힘들겠지요. 아마 두 분은 그런 상태가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신랑이 "우리 편안하게 살아보자"라고 했을 때, 겪어본 적 없고 맛본 적 없기에 '나는 편안한 게 어떤 건지 모르니 당신이 알아서 좀 다해봐'라고 생각했지만 겉으로 "알겠어"라고 말했고, 그 대답을 들었던 신랑은 더 이상 자신의 얘기를 할 필요성을 느낄 수 없었을 거예요. 그러나 "알겠다"던 아내는 변화가 없고 반복되는 삶에 신랑은 지쳐있던 게 아닐까 싶어요.
하지만 그런 두 분 밑에 있는 아이들이 집을 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이미 최고의 육아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목이 뜨거워요. 심장 저 밑에 있는 무언가가 끓어오르고 있는 거 같아요. 미안함과 후회, 안쓰러움, 연민 등 복잡한 감정들이 날 것 그대로 목을 타고 올라오고 있어요.]
[궁금한걸 끝까지 파헤치는 당신이 신랑에게 질문할 수 없던 건 바로 그 감정들 때문일 거예요. 두려움. 신랑으로부터 듣게 되는 그 말들을 통해 당신 가슴속에 묻어뒀던 감정들을 주체할 수 없기에, 두려워서 물어보질 못했던 거 같아요. 만약 날 것 그대로의 말이 아니라 신랑의 말의 속 뜻이 "우리 행복하게 잘 살아보자"라면 어떨 거 같아요?]
[물어보기 쉬울 거 같아요. 내가 이해될 때까지. 신랑이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나랑 같이 그리는 가족의 모습이 어떤 건지, 삶의 모습이 어떤 건지, 그 궁금함 모든 것들을 말이죠. 사실은 신랑한테 궁금한 게 많아요. 그 모든 것들을 나눌 때까지 함께 살고 싶어요. 그게 진짜 제가 원하는 삶의 모습이에요.]
삶의 일부를 기억해 내고, 고백하는 일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것 같다. 살아간다는 건 그런 것 같다. 이렇게 나의 마음을 꺼내놓고 며칠을 앓다가 회복하는 과정들이 쌓여서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누군가에게는 참회가,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바다. 같이 살아가는 게 더 재미지다. 더 살아갈 이유가 된다.
당신, 참 잘 살고 있어요
우리 함께 잘 살아봐요
아직은 더 들려줄 이야기가 있어요
그러니 가지 마오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