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죽음에 대해 알고 싶은 미성숙한 어른이야기 - 여섯
최근 들어, 들여다보고 싶지 않고 회피하고 싶었던 '죽음'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에 대한 각자의 생각들을 털어놓다 보니 "사람은 다르다"라는 개념에 대한 통찰이 생겼다.
'그래 사람은 다 다르지, 태어난 환경에 따라, 문화에 따라, 교육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지'라고 스스로 말하고 다녔고 제대로 알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 캐나다에서 모인 사람들. 한국 안에서도 지역별로 다른 곳에 사는 이들이 모인 이곳. 인터넷 안에서 진짜 그들의 목소리를 듣다 보니 "왜 우리가 다를 수밖에 없는지" 조금은 이해되었다. 또한 그동안 내 삶에서 익숙하고 편했던 목소리가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조용하게, 조금씩 나를 한쪽 세계로 몰아가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단순히 외적인 영향을 넘어서 내적으로 쌓아 올린 우리들의 경험 이야기가 지금 여기, 우리를 만들게 된 건 아닐까? 어쩌면 다르다는 걸 알아차리는 자체가 배움의 시작이 아닐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각자의 소리를 들으러 여섯 번째 수업에 참여하였다.
우리 문화에 존재하는 차이점과 다양성에 대한 토론 방식을 생각해 보면, 어떤 숨겨진 편향성이나 편견 등을 찾아볼 수 있다. 내가 지금 거주하는 뉴잉글랜드 지역에서는 종종 유대 관계를 통해 서로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하며 새롭게 인연을 맺는 것을 반갑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거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런 경향은 어쩌면 동일성을 강요하는, 쉽게 알아차리기 힘든 종류의 폭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마치 같은 소리만 반복해서 들려오는 방에 모여 있는 것처럼, 비슷한 생각과 비슷한 말만 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소셜 미디어도 이런 문제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 책 [나의 기억을 보라 by 아리엘 버거] 중 -
[여러분은 어떻게 죽고 싶은가요? 나는 이렇게 죽고 싶다는 죽음의 모습이 있을까요?]
[저는 침대에 누운 채로 평온한 상태로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요. 특히 침대 주변에 서 있는 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싶어요. "나의 딸로, 나의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맙다. 너희를 키우는 동안 참 즐겁고 행복했고 감사했다"라는 말을 전해주고 싶어요. 그래서 제가 떠난 후로도 가족들이 그 말을 기억하며 슬픔에서 그리움에서 가볍게 웃음이 나길 바라는 것 같아요.]
[당신에게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마음을 표현하는 게 왜 중요할까요?]
[작년 초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요양병원에서 갑작스럽게. 그러다 보니 저희 엄마를 포함한 다른 자식들이 마지막 가시는 길을 함께하지 못했어요. 엄마는 늘 그걸 가슴 아프게 생각하셨어요. 어떤 인사도 전하지 못한 거, 마지막 눈감는 순간을 함께 하지 못한 거. 아마 그런 엄마의 눈물을 보면서 다짐했던 거 같아요. 나는 죽는 순간에 꼭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싶다는. 그게 남겨진 가족들이 덜 슬퍼하는 길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지금까지 내가 직접 목격한 죽음이나 미디어를 통해 알게 된 죽음 중 가장 마음 아프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죽음이 있나요?]
[뉴스기사를 통해 알게 된 죽음 가운데 '아동학대'로 죽음을 맞이한 아이들의 소식이 저를 가장 마음 아프게 하는 거 같아요. 특히 2020년도에 '정인이 사건'을 봤을 때 몇 날 며칠을 뉴스, 시사프로그램 등을 찾아서 보고 댓글도 쓰고 관련된 인터넷 카페 등에서 알려주는 가해자들에 대한 정보도 일부러 찾아다녔어요. 정인이를 입양한 부모에 대해 알아갈수록 아빠보다는 엄마의 잔혹함에 더 불편함을 느꼈어요. "자식을 키우는 엄마라는 사람이 어떻게 저런 행동을 할 수가 있어? 엄마가 되가지고는", "남들 앞에서는 착한 척하고, 뒤에서는 애한테 저런 짓을 하다니"라며 엄청난 분노를 느꼈던 거 같아요. 어리다는 이유로, 말 못 하는 아이라는 이유로 배고픔과 폭행을 견뎌내야 했던 그 아이를 생각하면서 많이 아파하고 울었어요. 그리고 보이는 행동만으로 그 사람을 좋다, 나쁘다로 판단했던 저의 지난날들이 떠올라서 부끄럽기도 했던 거 같아요.]
[혹시 당신은 남 앞에서의 모습과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이 다른 사람을 직접 본 적이 있나요?]
[잘 떠오르지 않아요. 직접 본 적은 없는 거 같거든요.
아.... 그런데... 저요.. 저인 것 같아요. 맞아요. 제가 그런 적 있어요.
사람들은 제가 연년생 삼 남매를 키우고 있다는 이유 만으로 "진짜 대단하다, 멋지다. 존경스럽다"라는 말을 많이 해요. 저도 밖에서는 남들을 의식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혼내거나 훈육할 때도 평소보다 부드럽게 하는 편인데, 집안에서는 '보는 사람이 없다'는 걸 알기에 소리도 지르고 화도 내고 짜증도 내며 온갖 지랄을 떨 때가 있어요. 특히 집안일이든 육아든 버겁다고 느껴지거나 몸이 아플 때는 별거 아닌 걸로도 아이들을 혼낼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면 돌아서서 생각해요 '네가 나이가 몇인데, 애도 아니고, 어떻게 애랑 똑같이 싸우냐'하고 말이죠.
생각해 보니 저는 어느 순간 '요즘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TV프로그램을 안 보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오은영 박사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이고 육아에 대한 정보나 도움을 얻고자 보기 시작했는데, TV속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집에도 저렇게 방송카메라를 설치해 뒀더라면 나도 저렇게 보였겠다'라는 동질감을 느껴서 보기 불편했던 거 같아요. 나만 알고 있는 나의 미성숙한 모습을 들켜버린 느낌이었어요.]
[당신은 스스로 '나쁜 엄마'처럼 느껴질 때 어떠나요?]
[멍해지는 거 같아요. 애들이 저를 불러도 대답도 잘 안 하고 밥도 대충 차려먹고 모든 게 하기 싫고 귀찮게 느껴져요. 그리고 '내가 아이들을 키우는 게 맞나? 차라리 아빠가 키워야 하는 거 아닌가?'라며 자신감도 떨어져요. 아이들이 내 옆에 있음으로 인해 잘못 클까 봐 불안하기도 하고요. 모든 게 다 엉망진창이 된 것 같아져요]
[그럴 때마다 다시 나를 일으켜 세워주는 건 뭘까요?]
[불안함이요. 내가 이렇게 나태하게 누워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할 때, '그래도 일어나야지.' 하는 생각들. '저 때문에 배고픔도 성장도 멈춰버린 아이들'의 미래가 그려져서 불안해지기에 다시 힘내보려고 하는 거 같아요.]
[그렇게 힘이 들어간 상태는 또 어떤 때인가요?]
[평소에 힘을 많이 주고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늘 빠르게 움직이고, 바쁘게 왔다 갔다 하는 제 모습이 보여요. 숨을 가볍고 편안하게 쉰다기보단 매 순간 숨을 참고 있는 거 같아요. 그런 상태로 있다 보면 신랑과 부딪히는 일도 있어요. 부부싸움을 하게 되죠 결국.
그런데 희한하게도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목소리를 크게 내거나 싸울 것 같은 분위기를 내면 자기들끼리 더 잘 노는 것 같아요. 까르르 거리는 소리를 내며 웃고 떠들고, 오히려 그런 순간에는 아이들끼리 싸우지도 않아요. 신기해요]
[아이들을 잘 관찰해 보세요. 저는 오히려 아이들이 염려가 돼요. 아이들이 방어적으로 부모의 기분 상태를 맞춰주는 거 같거든요. 그렇게 참고 지내다가, 부모의 사이가 좋아지면 그동안 참아왔던 공격성이나 셋이서 해결하지 못한 일들을 해결하려고 싸울 거예요. 제 말은 어떻게 들리세요?]
[맞아요. 저희가 싸울 때면 셋이서 잘 지내다가 오히려 저희 사이가 좋아지면 싸웠던 거 같아요. 아이들이 못난 부모를 만나서 참... 고생이 많네요]
[내가 두려워했던 건 무엇이었을까요? 무엇을 피하고 싶었던 건지 눈을 감고 자신과 연결해 보세요]
[어릴 적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요. 365일 일을 하는 아빠, 혼자서 저와 동생을 돌보는 엄마. 엄마가 혼자서 무언가를 찾아 헤매요. 어느 날 운전면허증을 땄다며 기뻐하는 엄마가 보여요. 그 차로 저와 동생의 학원길, 먼 학교길을 데려다줘요. 차에는 엄마가 직접 만든 볶음밥, 과일간식들이 있어요. 새벽 5시에 매일 엄마가 일어나서 식구들 아침을 준비해요. 그 덕에 저와 동생은 한 번도 아침을 거른 적이 없어요. 그렇게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그 너머 취직준비를 할 때도 취직이 되어서도 결혼을 하고 첫째를 낳고서도 엄마는 쉬지를 못해요. 계속 엄마노릇을 하고 있어요. '쉬는 엄마'를 본 적이 없어요. '나태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엄마'는 없어요. 아빠가 속을 썩일 때도 바느질, 서예, 그림을 배우러 동사무소에 가던 엄마가 아빠와 이혼을 하고서는 음식장사를 시작해요. 제가 기억하는 엄마는... 방황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나를 일으켜 세우는 건 '그래도 일어나야지'하며 힘을 내는 엄마를 보고 자라서였어요. 그런 엄마가... 두려워요... 그렇게 쉬는 법을 모르는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내 옆에서 사라질까 봐... 죽어버릴까 봐... 두려워요...
전 아직 엄마에게 말하지 못했거든요. 엄마덕에 내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엄마 덕에 사랑을 받은 만큼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다는 걸, 엄마가 애쓴 순간마다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는 걸...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던 순간은 25살에 엄마와 함께 침대에 누워 잠을 자는데 엄마에게 나는 엄마냄새가 너무 좋아서 자던 엄마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냄새를 맡았다는 걸.... 그 모든 것들을 말하지 못했어요. 그 고백들을 털어놓지 못한 채 엄마를 잃을까 봐 두려웠던 거 같아요.]
수업을 마친 후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누군가는 한적하게 배우자와 단둘이 또는 화려한 꽃들이 장식된 들판에 누워 마지막 햇빛을 눈에 담은 채 웃으며-또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색깔처럼 비슷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죽음 뒤에는 자신이 살아온 경험의 무게와 살아보고 싶었던 미지의 삶의 모습이 묻어 나와 듣는 내내 미소와 씁쓸함이 뒤엉켰다.
내가 아무리 죽어라 노력해도 원하는 삶이 왜 살아지지 않은 걸까? 나는 늘 궁금했었다. 답을 찾으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발을 들여놓았던 수많은 공동체와 강의, 책, 모임에서도 알려주지 않았다. 얼핏 "이게 정답이야. 이렇게 살면 돼"라고 들려주었던 정보들은 사실 내 삶에는 적용되지 않은 무용한 것들이었다. 그럴수록 넘치게 머리와 가슴에 담으려고 했다. '아직은 내가 부족해서 그런 거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한 20프로는 알 것도 같다. 누적된 데이터로도 적용되지 않는 유일무이한 나의 인생에 대해 답을 아는 이는 없을 것이다. 답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별자리로 혈액형으로 MBTI로 설명될 '나' 였으면 이렇게 복잡하게 찾아 헤매지도 않았을 것이다. '검색'만 하면 '나'에 대한 결과값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 매 순간 파도가 몰아치는 지점이 있다. 나의 경우 아이들에게 나쁜 엄마가 될 때, 그리고 부모의 그림자를 그대로 비추며 살 때인 것 같다. 파도의 성질을 모르고 무턱대고 몸으로 맞서려니 두렵고 불안한 게 사실이다. 내가 서핑하듯 파도를 타게 될 때는 내가 나에 대해 알아갈 때가 아닐까 싶다. '아 지금 또 나에게 파도가 몰아치려 하구나' 알아차렸을 때, 나쁜 엄마도 부모의 그림자도 사라질 것이다. 다름을 인정한다는 건 어쩌면 스물다섯 살에 엄마냄새를 맡으며 잠들던 내가, 엄마로부터 새겨진 사랑의 조각을 나눠주는 마흔 살이 돼 가는 과정이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제와 다른 당신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다름은,
그렇게 우리에게 이야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