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 다이어리

9. 그 후 1년

by 생쥐양

어제는 내가 경험한 혹은 기억하는 두 번째 죽음인 외할머니의 제삿날이었다. 돌아가시고 처음 마주하는 제사이기에 친정엄마는 직접 음식을 장만하고 가족들을 모두 초대하였다. 서울, 목포에서 외숙모, 외삼촌, 사촌동생들이 한자리에 모이니 엄마 혼자라 넓어 보였던 공간이 북적북적한 사람소리로 가득 차서 제법 '집' 다웠다.


가족 모두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종교라는 하늘아래, 약 한 시간 동안 외할머니에 대한 기도와 찬송, 주기도문을 외우며 마무리하려던 찰나 셋째 외삼촌이 제안을 하나 하셨다.


"우리 각자 돌아가면서 어머님에 대한 기억이나 이야기가 있으면 하나씩 꺼내보는 건 어때요? 아니면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일 년 동안 각자 어땠는지 나눠도 좋을 거 같고요."


무거웠던 입을 우물거리며 먼저 시작한 건 큰 외삼촌이었다 (사실 친정엄마가 나이로 보면 첫째이지만 가족행사에서 리더역할을 해온 건 늘 큰 외삼촌이었다. 이렇게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먼저 시작한 건 어쩌면 가족에 대한, 형제들에 대한 배려고 사랑이었는지 모르겠다.)


"저는요, 사실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일 년 동안 생각이 많이 났어요. 그중 후회되는 게 제일 많아서 그런지 지금도, 어머님 생각하면 마음이 안 좋네요. 우리 어머니 진짜 고생 많이 하셨는데... 저 업고 두 고개 넘어 장에 가셔서 포도 파시고 그렇게 저희 키우셨는데.. 고생만 하시다 가신 거 같네요. "

"저도 그랬던 거 같아요. 결혼생활 30년이 넘도록 매년 명절이면 애아빠랑 애들 데리고 할머니댁 인사드리러 가자고 했는데 올해는 그렇지 못하다 보니 어머님이 돌아가신 게 실감 나더라고요."

"저는 1년 내낸 일부러 어머님 생각을 안 하려고 했어요. 저 20살 때 아버지 돌아가시고 작년에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어찌 보면 저 고아인 거나 마찬가지인 거죠? 형제들 중에서 어머님 옆에서 제일 많은 시간을 보내고 돌봐드린 거 같은데도 어머님이랑 못해본 게 많아서 그냥 아쉽고 그래요."

"나는 이번에 음식 준비하면서 하늘에서 우리 엄마가 보시고는 '아이고, 우리 딸 잘했다' 그러실 거 같더라고. 4일간 명절이라고 집에 있는데 마음 한 구석이 텅 빈 거 같아서 외롭고 쓸쓸하더라. '아, 이제 갈 데가 없구나' 싶어서 그랬나 봐. 그동안 엄마 살아계실 때 한 번이라도 더 찾아뵐 걸 싶어서 마음이 힘들었어. 특히 엄마 임종을 곁에서 못 지켜드린 게... 그게... 그렇게 한이 된 거 같아."

"저 어릴 때 어머님 손 잡고 다니던 병원 있잖아요. 10살 때 아파서 매일 드나들던 곳인데, 회사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이면 꼭 그 병원을 지나는데, 지날 때마다 어머님 생각이 나서 슬프더라고요."


외할머니의 자식들과 며느리들은 기억하나, 이야기 하나에 목소리를 떨고 고개를 떨구며 듣는 이와 말하는 이 모두의 눈물샘을 터뜨렸다. 명절이면 해주신 양념게장, 아픈 손주에게 끓여주신 녹두죽, 음식은 나눠먹는 거라며 두 손 가득 퍼담아 나누어주던 반찬들, 손자들에게 한없이 퍼주던 사랑, 함께 거닐던 동네길, 그 모든 기억의 조각들을 나누며 부모라서 미루어두었던 사랑의 표현들을 한 자리에 모여 앉아 들을 수 있었다.


외할머니가 살아생전 우리에게 남겨주신 유산은 '기억'이었던 거 같다. 빗길을 뚫고 가족들을 만나러 오던 그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에 남긴 말은 "우리 이제 더 자주 모이고, 모여서 어머님 애기 계속 나눠요"였다.


자식들이 모여 앉아 부모님의 기억을 나누는 거,

이 얼마나 찬란한고 멋진 일인가.

나이 든 자식들이라도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나의 뿌리가 없어짐에, 더 이상 만나고 어루만질 수 없음에, 상실의 고통을 겪는다. 고통을 없앨 순 없지만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거, 그 아픔을 들을 누군가가 있다는 게 우리가 가족인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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