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 다이어리

10. 죽음에 대해 알고 싶은 미성숙한 어른이야기 - 일곱

by 생쥐양

[지난 세 달간의 수업을 떠올려보면서, 기억에 남는 게 있을까요? 머리, 가슴, 배 신체 부위 중 어디에서 느껴지나요?]

가슴에서 느껴져요. 특히 가슴이 짓눌리듯이 압박감이 느껴지고 순간적으로 숨이 가빠졌어요


[선생님은 가슴, 즉 '연결'이 중요하신 것 같아요. 그렇다면 '연결'하기 위해 내가 믿고 있는 신념이 있나요? 그 신념으로 반복하고 있는 행동은요?]

저는 저의 연애사가 쭉 떠오르는 거 같아요.

상대와 연결되기 위해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퍼줘야 한다고 믿었어요. 그러기 위해 상대가 말을 하지 않아도 예를 들면 뭐를 사달라거나 해달라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 맞춰줬던 거 같아요. 제 눈엔 그게 보였던 거 같아요. '이때쯤엔 이게 필요하겠다', '이렇게 하면 상대방이 편하겠다' 하는 것들이요.


[그렇다면, 내가 상대방에게 '이렇게까지 해봤다' 하는 거 있을까요?]

집에 안 쓰는 컴퓨터가 있었어요. 그 당시 컴퓨터 값이 꽤 나갔거든요. 그런데 남자친구가 컴퓨터가 없어서 PC방 가서 학기수업 신청하고 리포트 쓰는 게 불편하고 힘들어 보여서 집에 있는 컴퓨터를 갖다 줬어요.


[선생님이 생각하는 '사랑'은 무엇일까요?]

아낌없이 주는 거, 상대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거

그게 사랑 같아요


[그 사랑은 '언제부터'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나요?]

내가 그렇게 받아봤던 게 떠오르네요. 저희 엄마요. 엄마가 저를 그렇게 키워주셨어요

고3 때 학교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면 12시가 다 되었어요. 매일 엄마는 저를 데리러 오셨어요. 그리고 배고파했을 저를 위해 새벽에도 밥을 차려주셨고요.

어릴 때 제 옷은 사계절 내내 바뀌었는데 엄마가 옷을 사는 걸 본 적은 없는 거 같아요

그렇게 엄마는 자식들에게 본인의 시간, 돈을 아낌없이 주셨어요.


[그런 엄마의 사랑은 어떤 느낌일까요?]

편안해요. 내가 손하나 까딱 하지 않아도 음식이며 옷들이 나오니까요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기도 해요. 엄마가 얼마나 희생해서 나를 키웠는지 봐왔기에 그만큼 내가 효도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니까 좌절스럽고 저를 비난할 때도 있어요.


[그렇다면, 그 당시 연애했던 상대방은 어땠을까요?]

너무 잘해주니까 한 편으로는 부담스러웠을 거 같아요.


[지금 남편과의 관계에서는 어떤가요?]

그 질문을 받으니 신기하게도 제가 반대로 하고 있는 게 보여요.

지난 연애 때는 퍼주기만 하다가, 지금 남편에게는 오히려 받고 싶은 마음이 큰 거 같아요.

왜 그런 걸까요? 결혼했기에 더 이상 잘해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서 그런 걸까요?


[남편과 부부싸움 할 때의 패턴을 떠올려보세요. 무엇이 보이나요?]

저는 속으로 '알아서 해야지. 이것도 몰라?' 라며 삐치고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아요

그럴 때 신랑은 "명확하게 내가 해야 할 일을 알려줘. 그렇게 한계를 알아야 하지. 나는 이미 100프로를 하고 있는 거 같은데 200프로를 원하는 느낌이라서 힘들어"라고 얘기했어요.


[맞아요. 선생님은 '상대방이 말하지 않아도 해주는'게 사랑이라고 알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도 '신랑이 알아서 해주기'를 원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으니 화를 내고 싸움이 나는 거지요.

지금까지의 선생님의 연애방식은 '퍼주기'였는데, 왜 반대로 신랑에게는 '얻으려' 할까요?]

모르겠어요. 진짜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 제 모습이 보여서 더 안 보여요. 도대체 왜 그러는지.


[예를 들어볼게요. 다른 텃밭에 씨앗을 잔뜩 뿌려놓고서는 내 텃밭에서 뿌린 만큼 거두려 하고 있어요.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내가 받고 싶은 걸 줄 수 있는 사람을 고르게 되어있어요. 이 말은 어떻게 들리나요?]

정확히 무슨 뜻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신랑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런 느낌은 있었던 거 같아요.


[내가 신랑에게 받으려 했던 건 무엇일까요?]

저는 처음 볼 때 신랑에게 끌렸던 세 가지가 있어요.

든든해 보였고, 따뜻해 보였고, 지적이었어요.

연애를 하면서는 깜짝 이벤트도 해주고, 여행계획을 짜주며 새로운 곳에 저를 데려가주고 했던 모습들도 좋았던 거 같아요.

생각해 보니, 저희 아빠에게 없는 모습을 봤던 거 같아요. 든든함, 따뜻함. 지적임

결혼하고 나서 신랑이 핸드폰 게임을 자주 했어요. 제 기준으로는 너무 오래 하는 거 같아서 그만하라고 하자 화장실 갈 때도, 방에 혼자 있을 때도 몰래 게임을 하더라고요. 그게 부부싸움의 시작이었어요. 어느 날은 제가 "내가 무릎 꿇고 빌어야 게임 그만할 거야?"라고 울면서 얘기하자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그냥 스트레스 푸는 거일뿐인데. 내가 뭐 얼마나 한다고!"라며 반박했어요. 그 모습이 왜 그렇게까지 싫었을까 생각해 보니 저희 아빠가 친구들이랑 화투도 치고 카드게임도 즐기셨는데 그걸로 부모님이 싸우는 걸 많이 봤던 거 같아요.

아마도 '나는 너의 지적인 모습에 끌렸는데 이렇게 게임만 하다가 우리도 이혼하게 된다'는 두려움이 있었나 봐요.

기억하나하나를 떠올려보니, 제가 신랑에게 받으려 했던 세 가지를 잃을까 두려웠던 순간에 늘 싸웠던 거 같아요.


[남편은 선생님에게 그 세 가지를 주겠다고 말한 적이 있나요? 없을 거예요.

단지 내가 그렇게 상대방을 보고 판단했을 뿐이에요. '넌 나에게 세 가지를 줘야만 해. 너는 줄 수 있는 사람이야.'라고 말이죠.

결혼생활하고 9년이 지난 지금, 남편이 그걸 줄 수 없다는 걸 확인했음에도 '넌 그걸 가지고 있는데, 왜 안 주는 거야'라면서 싸우고 있던 거예요.]

맞아요. 정확히 떠오르진 않지만 남편이 따뜻하거나 든든하거나 지적이지 않다는 걸 확인했던 순간들이 스치듯 지나가요. 하지만 그걸 인정하려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모른 체하거나 '아닐 거야'라며 눈을 흐릿하게 떴던 거 같아요.

왜냐면 '내'가 '선택'한 사람이잖아요. 내 선택이 잘못됐다는 걸 보기 싫었어요.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전공, 직장, 결혼 등을 택하게 되어있어요. 사실은 휩쓸려서 한 선택이기에 정확하지 않음에도 '내가 한 선택'이라는 이유로 덮어버려요.

선생님은 사실 든든함, 따뜻함, 지적임이 어떤 모습인지 몰라요. 그걸 받아본 적 없기에 어떤 모습인지 모르는 것이지요.

그 악순환을 끊으려면 "나는 왜 이것을 받으려 하지? 나에게 무엇이 중요하지?"에 중심을 맞춰야 해요.]

즉, 나를 관찰하라는 뜻일까요?

나에 대해 알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면, 상대방이 보여요. 상대방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보이기에 내 마음에 공간이 생기고 마음이 열리는 거지요.]

나를 알면 상대방이 보인다... 왠지 웅장해지는 느낌이에요.

그리고 정말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죽음'에 내려앉은 수많은 뿌리가 있다.

그 뿌리는 신념, 두려움, 수치 등으로 불리고 있는 듯하다

오늘 나는 그중 하나의 뿌리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수면 아래에 잠들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보이자 햇볕을 마주하고 싶어졌다.


나의 경험을 고백하는 건 늘 용기가 필요하지만,

나의 용기가 글로 남는 건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유머(humor)이기도 하다.


당분간 내가 숨 쉬는 이 땅에 비가 내릴 거라고 합니다.

햇빛이,,, 웃음이,,, 필요한 당신에게

이런 나의 유머를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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