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죽음에 대해 알고 싶은 미성숙한 어른이야기 - 다섯
["지난주까지 우리는 과거에 내가 겪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오늘 시간은 내가 앞으로 경험하게 될 죽음에 대해 이야기 나눠볼게요. 부모님이나 지인일 수도 있고 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닥쳐올 죽음 하면 어떤 게 떠오르시나요?"]
[최근에 저는 일상에서 어지럼증이나 허리통증을 느끼다 보니 제 건강에 대한 염려가 올라옵니다. 그래서인지 앞으로 경험하게 될 죽음을 떠올리면 '나'의 죽음이 제일 먼저 생각나요. 내가 죽는 순간 아쉽고 후회스러울 것 같아요. 내가 원하는 인생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취직과 결혼을 하였고 아이도 낳았는데 그렇게 살아가지 못한 것 같아요. 과거에 내가 받은 상처와 슬픔이 나를 압도하여 그 속에서 발버둥 치며 벗어나려 애쓰다 생이 끝나버린 것 같거든요.]
["선생님이 생각하는 나의 죽음과 타인의 죽음은 별개인가요?"]
[아니요. 저의 죽음으로 인해 슬퍼하고 있는 아이들, 남편,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라서 미안해져요. 그들과 제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느껴지니 저의 죽음이 곧 그들의 죽음 같거든요.]
["그렇다면 '당신들에게 미안해요'라는 꼬리표를 떼고 자신의 죽음과 타인의 죽음을 저울로 단다면, 어느 쪽이 더 무겁게 느껴지나요? 혹은 무게가 똑같나요?"]
[나의 죽음의 무게가 더 크게 느껴져요. 결국 저는 아이들의 성장을 보지 못하게 될 테고 아이들이 느낄 엄마의 빈자리에 마음이 쓰라립니다. 지금까지 제가 과거에 경험한 타인의 죽음들에 슬픔을 느끼지만 일상은 살아가고 있거든요. 하지만 남은 가족들은 저의 죽음으로 그러지 못할까 봐 더 무겁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선생님은 내가 죽게 되면, 볼 수도 알 수도 없는 아이들의 감정과 미래를 왜 염려하고 있을까요? 반대로 내가 아이들을 못 보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요?]
[어릴 때 매체를 통해 봤던 기억이 나요. 어린 나이에 엄마를 사고로 여의고 슬픔을 머금은 채 메마른 얼굴로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을요. 그게 제 마음속에 깊이 남아있던 것 같아요. 엄마의 죽음은 곧 아이들에겐 비극이 된다는.
생각해 보니 앞으로 닥쳐올 타인의 죽음에 의식적으로 아이들을 포함시키지 않은 것 같아요. 생각도 하기 싫을 만큼 끔찍해요. 지금 이 순간 스쳐가는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조여 오는 것 같아요.]
["제가 이 질문을 하는 이유는, 선생님은 나의 감정은 건너뛰고 타인의 감정에 집중해 있기 때문이에요."]
[사실 TV에서 자식을 잃고 살아가는 부모의 사연이 나오면, 그걸 보는 내내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요. 단순히 사연을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저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로 동기화돼서 공감(共感)을 뛰어넘는 동감(同感)을 하는 것 같아요. 왜냐면 만일 저에게 자식을 잃는 일이 발생한다면 저는 살아가기 힘들 것 같아요. 그걸 느끼고 싶지 않아서 제 마음을 들여다 보지 못하겠어요.]
["자신의 죽음의 무게가 더 무겁다고 했지만 실은, 타인의 죽음과 나는 분리가 안되어 보여요. 과거에 내가 겪은 죽음과 미래의 죽음을 쭉 떠올려보세요. 뭐가 보이나요?"]
[돌아가신 분들을 보면서 '살아계실 때 잘해야 후회하지 않는다'는 경험들이 보여요. 그래서 살아가면서 '이렇게 살아야 해'라고 정한 규칙들이 생긴 것 같아요. 엄마니까, 딸이니까, 아내니까, 며느리니까...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다 잘 해내려고 하니 부딪히는 한계들이 많았어요. 그럴 때마다 좌절했고 두려웠어요. 먼 훗날 후회하는 일들이 생길까 봐.
마찬가지로 다가올 죽음이 '내가' 된다면 "부모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죽는구나"하는 후회, '가족'이라면 "자식으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보내드리는구나"하는 후회가 보이네요.
과거든 미래든 저에게 죽음은 후회와 연관되어 보여요.]
["그 꼬리표에 이름을 붙여준다면 뭐가 있을까요?"]
[죄책감이요. 그러고 보니 일상에서도 저는 늘 후회하는 것 같아요. 이렇게 할걸, 이렇게 하지 말걸,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존감이 낮아지고 "도대체 나는 왜 살지? 뭐 하며 살지?"라는 의문이 들기도 해요. 그럴 때면 힘이 쭉 빠지고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요. 저에겐 죄책감의 무게가 일상에 가득한 것 같네요.]
["그렇다면 '죽음'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무엇인지, 그 생각에 존재하는 감정은 무엇인지 쭉 나열해 보세요"]
["너,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평소에 잘해"라는 생각에는 쓰라리고 속상하고 한 맺힌 감정들이 들어있어요. 하나 더 "너한테도 죽음은 찾아올 수 있어"라는 생각에는 두렵고 겁나고 무서운 감정이 있고요. 마지막으로 "내가 없으면 집안이 돌아가지 않아"라는 생각도 있네요]
["선생님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중요한 욕구가 무엇일까요?"]
[제가 집안에서 필요한 존재였으면 해요. 존재감 있는 사람이고 싶어요.]
["그 말을 들으니, 내가 '생존'하기 위해서 내 '삶을 의미'있게 보내고 싶어서 아이들을 돌보는 걸로 보여요. 아이들은 선생님이 떠나고 나면 살 수 없을까요?"]
[네. 저에게 삶을 의미 있게 보내는 일이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었어요. 그걸 하고 있는 동안에는 내가 살아있는 존재인 게 느껴져요. 그래서 더 잘하고 싶고 뭐든 열심히 하고 싶었어요. 그나마 '엄마'역할이 저에게 생동감 있는 유일한 일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아이들은 제가 세상에 떠나고 없으면, 엄마를 그리워하다 웃음을 잃고 우울하게 살 거 같아요. 그리고 아빠가 엄마인 저의 역할을 잘 못해낼 것 같아서 불안한 것도 있어요. 저처럼 세심하게 다정하게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서 육아든 집안일이든 못할 것 같거든요. ]
["선생님은 주변에 믿는 사람이 있나요?"]
[아니요. 떠오르지 않아요. 사실은 그래서 학원차량도 아이들 픽업도 모두 제가 직접해야 마음이 편해요. 친정엄마한테 아이들을 못 맡기는 것도 겉으로는 엄마가 나이가 많으시니 힘드실까 봐 걱정되서라고 이야기하지만 실은 엄마한테 맡기는 것도 못 미더운 것 같아요. 남편도 마찬가지고요.]
["남한테 맡겨도 되는 것들을 해봄으로 인해, 내가 얻을 수 있는 게 뭘까요?"]
[시간과 자유가 생기겠죠. 하지만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함으로 인해 몸은 힘들지만 재밌기도 해요. 아이들 얼굴 보고 대화도 할 수 있으니깐요. 그 시간이 즐거운 것 같아요.]
["진짜 재미있나요? 가끔 아닐까요? 내가 진짜 아이들을 돌보고 마주하는 게 재미있다면 아이들에게 화내는 일이 적겠죠. 그리고 신랑도 아이를 돌보는 게 재미있어하는 선생님을 보면 잔소리하지 안 않겠죠? 하지만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심하게 화를 내서 후회되는 일들을 고백했고, 신랑에게 듣는 잔소리가 불만이라고 했던 고백들 기억나시나요?"]
[아이 돌보는 게 힘들다는 말을... 그 말을 입 밖에 꺼내기가 어려워요. 맞아요. 사실을 전쟁터 같이 버겁고 힘들 때가 훨씬 많은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아이들에게 잔소리하고 사소한 걸로 화내는 경우도 많았어요. 그렇게 쏟아내고 나서 돌아서서 후회하고 자고 있는 아이들 얼굴을 어루만지며 미안하다고 되뇌었던 때가 생각나요.
전 남들 앞에서 육아가 진짜 편한 척 재미있는 척했던 것 같아요. 힘든 게 80이고 재미난 게 20이라면, 힘든 건 감추고 재미난 걸 부풀려서 이야기했던 시간들이 떠올라요.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어요. '저 힘들어요'라는 이야기를 꺼내는 게 너무 어려워요. 밝고 긍정적인 모습만 보여줘야 한다는 덫에 걸린 것 같아요. 왜 그럴까요? 왜 그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지 못할까요? '힘들다... 나는 사실 도움이 필요하다'는 그 말이요... 살면서 그렇게 말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눈치 빠르고 상황을 잘 파악하는 신랑이 힘들어하는 제 모습을 발견하고 "힘들면 쉬어, 애들은 그만 돌보고"라는 말에 버럭 했던 거 같아요. 그 말을 들으면 무언가 들킨 것 같아서 "당신이 육아에 대해 뭘 알아"라고 나무라했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가요. 신랑은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재미있어하지 않고 있다는 걸.
돌이켜보니 신랑은 유일하게 제가 들키고 싶지 않아서 둘러대는 말과 행동을 알아챘던 사람이에요. 신랑이 저에게 "빙빙 돌리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봐"라고 말하면 사실은 너무 당황스럽고 놀랐지만 더 과장되게 행동하고 웃고 떠들며 지냈어요. 그게 제가 저를 보호하기 위해 수십 년간 사용했던 전략인 것 같아요. 과장된 웃음, 밝은 표정, 오버하는 행동들. 긍정의 말들.]
["선생님은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것들이 많네요. 그걸 지켜내느라 내 몸과 마음은 어떤 것 같나요?"]
[늘 조마조마하는 것 같아요. 아닌 척하려고 얼굴과 어깨에 긴장이 들어가 뻣뻣하고 머릿속으로는 계속해야 할 말들을 생각하고 있어요. 늘 머리가 바쁘죠.]
["그렇다면, 선생님은 내가 살아가기 위한 '생존'의 '수단. 방법'으로 '아이들'을 선택했나요?"]
[네. 살을 비벼대고 눈을 맞춰주고 엄마라고 따뜻하게 불러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건 아이들 뿐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원하는 사랑은 그런 거였거든요. 내가 받아들여지는 거, 사랑받는 존재로 여겨지는 거. 그런 아이들이 있어서 살아갈 힘이 났어요. 살아갈 이유도 생겼고 잘 살고 싶은 희망과 용기도 생겼어요. 하지만 선생님이 언급하신 '수단. 방법'이라는 단어를 들으니 가슴에 뭔가 한대 얻어맞은 느낌이에요. 잔인하게 느껴져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단어지만... 아이들을 그렇게 대했던 것 같아요.]
["선생님과 엄마와의 관계를 떠올려보세요. 그리고 선생님과 아이들과의 관계는 어떤가요? 비슷한가요?"]
[비슷해요. 다 큰 제가 아직도 엄마에게 의존하고 엄마와 분리를 못하고 있어요. 독립하고 싶으면서도 독립하지 못하고 있어요. 독립하는 게 불효같이 느껴지기도 해요. 그런데 제가 아이들에게 그러고 있는 거 같아요. 아이들이 독립할 수 없도록 가로막는 느낌이에요.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가 살아야 하기 때문에 가족이라는 공간 안에 가둬두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 테두리를 벗어나는 아이들을 보면 '화'가 나고 '불안'했어요.]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 내가 모든 걸 다 해야 하기 때문에 힘들고 지쳐서 '화내는 마음', 그로 인해 생기는 '괴로움과 죄책감'이 삼각형처럼 계속 돌아가는 패턴처럼 보여요."]
[맞아요. 그 사이클을 매번 매시간에 반복하고 있어요. 내 세상의 전부가 '아이들'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우물 안 개구리처럼 저 또한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만 헤엄치다 보니, 내가 낳은 아이들도 우물 안에서만 키우고 있던 것 같아요. 우물 밖에 나가본 적 없는 제가, 그 세상을 가르치기가 왜 어려웠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슬퍼요. 바깥으로 뻗어나가고자 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불안해하지 않고 지지해 줄 수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으니.]
["내 세상의 전부가 아이들이라면, 아이들은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해요. 그건 엄마를 배신하는 일이라고 느낄 테니까요. 선생님이 엄마로부터 독립하는 걸 불효로 느끼는 것처럼요. 내 세상이 '나'로 채워져 있어야 해요. 그럼 아이들은 떠나야 할 때 죄책감 없이 자유롭게 갈 수 있을 거예요. '우리 엄마는 잘 살아갈 거야'라고 느낄 테니까요. 나로 채우는 시간은 당분간 내가 기존에 사용했던 방식이 아니라 불안할 거예요. 하지만 그 정도의 적당한 불안은 나도 아이도 성장시킬 수 있어요. 제 말이 어떻게 들리시나요? "]
[적당한 불안... 적당한... 그 단어가 주는 위로가 있어요. 기존에 제가 가지고 있던 과도한 불안에서 적당한 불안으로 넘어가는 건강한 몸과 마음이 느껴지거든요. 내가 사용했던 방식들을 쭉 적어볼래요. 익숙한 것들을 버릴 수 있는 힘은 결국 '사랑'인 것 같아요. '건강한 사랑'. 지금까지 제가 주었던 메마른 사랑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힘내보고 싶어요. 그래서 계속 제 마음을 들킬래요. 이렇게 고백을 통해서.]
세상에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이렇게나 가득했다니, 나조차 놀라웠다. 내가 얼마나 꽁꽁 싸매고 있었는지 수십 년의 세월의 무게가 느껴져서 오늘의 수업 이후 몸이 좀 아팠다. 나는 2016년 육아를 시작하면서 나름대로 '다르게' 살고 싶어서 육아서에서 철학공부로, 명상으로, 고전으로, 마음공부로 넘어 다니며 이 자리까지 왔다. 이렇게 쭉 나열하고 보면 2023년의 나는 뭔가 달라지고 새로운 사람이 돼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못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들을 '마음'에서 통과시키지 못하고 '입'으로 내뱉었기 때문이었을까?
사람들은 '나답게', '나다운 길'을 가고자 한다고 하는데 나는 나를 잘 모르겠다. 부끄럽게도, 회사도 있고 가정도 있고 아이도 있는 이 나이에 '아무것도 모른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사는 건 참 어려운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복잡한 것 같기도 한다. 앞으로 남은 삶은 더 어렵고 복잡해지겠지. 사랑은 나와 상대방이(남편이건 아이들이건 혹은 그 무엇이건) 안과 밖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통로가 돼주는 것 같다. 이제 일방통행 금지. 혼자 하는 사랑 금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