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함께 사는, 여우와 두루미입니다
저는 매일 꿈을 꿉니다.
그리고 어떤 꿈의 장면들은 하루종일 저를 끌어들이며 자신을 봐달라고 외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잠자는 걸 좋아합니다 - 아주 많이 -
더욱이 꿈이 현실의 나였으면, 내 집이었으면, 내 사람이었으면 할 만큼 꿈을 사랑합니다.
처음에 '꿈분석'이라는 새로운 수업 주제였음에도 이끌렸던 건 아마도 오랜 기간 정신분석학을 전공한 그 선생님에 대한 신뢰와 순수한 호기심, 그리고 지금의 절기인 청명(淸明)에 걸맞은 시작과 도전에 대한 욕심으로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3명의 그룹으로 이루어진 공간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2시간가량, 내가 꾸었던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기초한 분석을 통해 날 것 그대로의 나를 만나고, 무의식이 전하는 진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는 시간은 생소하지만 짜릿한 경험이었습니다.
아마도 저의 꿈이야기는 저만의 것이기에, 각본도 연출도 감독도 바로 저입니다.
우리가 영화를 보면서 어느 지점 – 대사, 표정, 장소, 음악 등 –과 만날 때 감동을 느끼고 깨달음이 찾아오듯, 저의 꿈이 여러분과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에 1:1로 진행한 꿈분석 과정을 소개하려 합니다.
편안하게, 누군가의 상담과정을 지켜본다는 의미로 앉으셨다면
저의 영화를 시작합니다
레디. 큐
[오늘 시간은, 일주일간 내 꿈에 가장 많이 등장한 인물이나 장면, 장소 등에 관해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당신의 꿈 패턴은 어떠한가요?]
저는 꿈에 남자연예인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중에서도 드라마 주인공들이 자주 등장하는 거 같아요.
주로 로맨틱소재의 남자 배우가 저와 꿈속에서 연인관계나 썸을 타는 대상으로 나오는데, 꽁냥 거리는 분위기가 좋아서 꿈에서 깨기 싫기도 하고 깨고 나면 그런 장면이 또 나오기를 기대하며 잠을 다시 청하곤 해요.
희한한 건 꿈속에 저는 20대가량의 아가씨인데 썸을 타는 순간에도 ‘나는 결혼해서 남편도 있고 애들도 있는데’라는 생각이 올라오면서 상대방과 손을 잡을 때에도 주변에 눈치를 살펴요. ‘들키면 안 되는데...’ 하는 거죠
저는 어릴 때부터 TV를 많이 봤어요. 초등학교시절 집에 신문이 도착하면 맨 뒷페이지에 있는 '연애'부분만 따로 골라서 볼 정도로 연예인에 관심이 많았던 거 같아요. 그들이 나오는 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은 형광펜으로 표시까지 해두며 꼭 보려 했고 집에 있던 비디오테이프로 녹화까지 했던 기억이 나네요.
10대의 저부터 40대가 된 지금까지, 무수하게 보고 들었던 TV속 장면들이 떠오르는 걸 보니 아마 꿈속에 연예인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지 않나 싶어요. 제 업보 같아요. 그동안 나의 머릿속에 새겨 넣은...
[당신에게 '연예인'이란 어떤 존재인가요?]
부러움의 대상이죠.
어딜 가나 눈에 띄는 외모에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그로 인해 많은 돈도 벌고 있으니깐요. 좋은 곳에 여행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돈도 벌고, 꾸준한 관리를 받으며 나이보다 젊은 신체를 갖고 생에 한번 가져볼까 하는 넓은 집도 소유하고 있는 것 같아요. 명품도 마음껏 착용해 볼 수 있고요.
요즘 같은 세상에 대출도 잘 나오는 것 같더라고요. TV에서 '몇 십억 부동산 시세차익 OOO'라고 떠서 클릭해 보면 '대출이 이렇게 잘 나오니 명당자리를 사서 이만큼 번 거였네'하며 부러웠어요.
여유 있는 경제력과 삶의 태도로 기부와 봉사를 할 수 있는 것, 더불어 가족이나 지인들까지 챙길 수 있는 넉넉함으로 주변에서 인정해 주고 박수갈채를 받는 그런 것들도 마찬가지고요.
이것저것 제가 보는 그들의 삶을 나열하다 보니 한편으로 불공평하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또한 TV에 비친 환상적인 모습만으로 부러워하고 있는 제 자신을 보니 한심하게도 보이기 하고요. 무언가 씁쓸함이 올라와요. 뭐랄까...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금 전까지 연예인의 기사를 읽고 드라마를 보며 열광하고 있었네요.
[끊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의 즐거움 같아요.
저를 웃겨주고, 그들의 재능에 감탄하기도 하고, 드라마를 보며 목놓아 울기도 하는 그 모든 것들이 저에게 있어 삶에 필요한 부분 같아요.
그런데 TV 말고, 현실에서 불가능한 가짜 대상 말고 진짜 그런 친구, 배우자, 가족이 있었으면 좋았겠죠?
물론 가끔 아이들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기도 하고 경외로운 순간들이 있긴 하지만, 말 그대로 아이잖아요. 어른이 아닌... 대화상대가... 아니니깐요
[꿈속에서 남자연예인과 꽁냥 거리는 사이라고 했잖아요. 당신이 생각하는 사랑은 어떤 건가요?]
말로 표현하고 안아주는 것들요. 언어적인 것과 행동을 함께 표현해 주는 게 사랑 같아요.
예를 들면 밥을 차려 주면 '잘 먹을게. 고생했네', 아침에 일어나면 '잘 잤어?', 밤에 잘 때는 '잘 자'하면서 가볍게 포옹도 하고 볼뽀뽀도 해주는 그런 하루들을 꿈꾸는 거 같아요.
[남편이 생각하는 사랑도, 당신과 같나요?]
.........(긴 침묵)
아니요, 남편이 자주 저에게 하는 말이 떠올라요. "나는 미래를 계획하고 대비하면서, 그에 관해 한 발짝씩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 몸이 아무리 힘들어도 힘들다고 느끼지 않을 거 같아. 내가 원하는 건 무조건 잘했다고 칭찬해 주고받아주는 게 아니라,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으면 아니라고 이야기해 주고 더 나은 방향이 있다고 이야기기해 주는 피드백이 필요해."
남편은 우리가 당면한 이슈 같은 보험, 경제, 직장 등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어 해요. 자신이 관심 있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함께 해나가는 걸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당신과 남편은 둘 다 '대화'를 하길 원해요. 하지만 관심사가 다른 것 같아요. 당신이 사소한 험담이나 연예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할 때, 남편은 정서적인 성장과 당면한 이슈에 관심이 있어 보이거든요.]
며칠 전, 차 안에서의 대화가 생각나요
차를 타고 가면서 제가 "얼마 전에 기사를 보니까 OOO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네,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으면 그러셨을까? 에휴..."라고 운을 뗐고 신랑이 별 반응이 없자, 다시 제가 "그 OOO엄마 있잖아, 학교 근처 아파트로 이사한다고 하더라고. 최근에 집값이 좀 떨어져서 옮긴다는데 그래도 거기 시세가 좀 센데 집에 돈이 없진 않나 봐"라는 말에 신랑이 "우리도 사람들이 가진 돈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지"라고 대답했던 게 기억나요.
전 그냥 사소한 이야깃거리를 주제로 신랑과 대화하려고 꺼낸 거였는데, 신랑은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우리의 미래가 대비되어 있지 않아서 불안한 상황"이라고 이야기하며 답답해했어요.
[당신의 부모님 사이는 어떠했나요? 두 분은 주로 어떤 대화를 하셨나요?]
두 분이 '대화다운 대화'를 하신 걸 본 기억이 없네요.
하게 되더라도 주로 '돈'에 대한 이야기였고, 그 돈은 저희들 교육비에 관한 거였는데 엄마가 아빠더러 "다음 달 애들 학원비 O원이 필요해"라고 하면 아빠는 "알았어" 혹은 무응답으로 표현하곤 했어요.
또한 아빠는 오전에 퇴근하고 오후에 출근하는 일이라서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대화를 한 적은 없어요. 그래서 아빠가 제가 몇 학년 몇 반인지 자주 까먹었는데 그걸로 아빠에게 짜증을 냈던 기억이 떠올라요.
[당신이 생각하는 사랑은, 말과 행동이 오가는 거라고 했어요. 하지만 당신은 겪어본 적이 없는 거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그게 '사랑하는 부부'의 모습이라고 생각할까요?]
모르겠어요.
저희 부모님이나 제 지인들 중에서 그런 사람은 없지만, TV에 나오는 부부의 모습이나 드라마 속 장면에서 서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해 주는 모습을 보면 '저 둘은 저런 이야기를 나눌 만큼 친하구나, 거리낌 없구나, 친구나 다름없네, 참 좋겠다'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부부가 서로 '친밀한' 사이라면 속 이야기도 마음껏 하고, 거리낌 없이 표현하다 보면 내 안에 뭉쳐있는 '터놓고 싶은 욕구', '응석받고 싶은 욕구', '사랑받고 싶은 욕구'들이 해결돼서 저도 좀 잘 살게 되지 않을까 싶었던 거 같아요.
[남편이 경제적인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마음이 어떤가요?]
불편한 거 같아요.
내가 잘 모르는 분야거든요.
그리고 풍요롭지 않지만 이 정도면, 그래도 먹고살만하다고 생각해서 관심이 없는 부분도 있어요.
또 경제적인 건 왠지 좀 어렵고 복잡할 거 같다는 생각도 있고요.
갑자기 떠오르는 게 있어요. 최근에 남편이 사촌형이랑 '주식'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서 활짝 웃기도 하고, 적극적으로 질문도 하고, 사촌형의 말에 공감도 하면서, 개그도 던지는 모습을 보면서 '어? 뭐지? 저게 저렇게 재미있나?'라고 생각했어요. 평소에 잘 보지 못한 모습이라 계속 관찰했는데 '생동감'있어 보였어요.
그 모습을 보니 저런 대화를 할 사람이 없어서 남편이 좀 짠하기도 했고, '나도 한번 경제공부 해볼까'하는 마음도 들었던 거 같아요. 저도 남편과 그렇게 생동감 있게 지내며 대화하고 싶거든요.
[당신이 '부부사이는 친밀하게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말고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해야 해'가 있듯이, 남편분은 '부부사이는 함께 미래를 헤쳐나가고 성장해야 해'가 있네요. 그렇다면 당신 부부에게 지금 부족한 건 무엇일까요?]
서로를 지지하고, 신뢰하고, 연결되기 위해 각자의 사랑에 관심을 갖는 게 부족한 거 같아요.
예전에 남편이, 어머니 아버지가 너무 착하고 성실하게 살고 계시는데 주변 지인들 말에 휘둘리고 사시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했어요. 그래서 지금 나이에 차 하나 바꾸고 싶어도 못 바꾸고 계시는 모습이 씁쓸하다고 했던 게 기억나요. 아마도 그런 부모님의 영향으로 제가 들려주는 사소한 이야기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그리고 본인은 그렇게 살지 않으려면 미래를 계획해서 살아야 한다는 다짐도 보이는 거 같고요.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걸 상대에게 받으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음... 글쎄요... 어떻게 하면 받을 수 있을까요
[상대가 원하는 걸 먼저 줘야 합니다. 그래야 공간이 생기거든요.
남편이 원하는 삶의 모습을 이뤄나가기 위해 관심을 갖고 관련된 이야기를 나눠보세요. 그러면 남편은 공간이 생겨서 당신이 바라는 말과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할 여유가 생길 거예요.]
남편이 관심 갖는 이야기가 재미가 없다면요?
[재미를 전환하려면 상대를 '관찰'해 보세요. 상대방이 어떤 이야기를 좋아하고 웃는지요. 아까 사촌형에게 보여준 그 생동강 넘치는 표정을 떠올려보세요]
맞아요. 그 표정은 정말로 잊을 수가 없어요.
제가 최근에 본모습 중에 가장 해맑고 웃음기 넘치는 아이 같았어요
[당신은 꿈속에서 남자연예인이 자주 등장한다고 했고, 그들과 꽁냥 거리는 사이라고 했어요. 당신의 꿈속에서 보여주는 무의식의 소원은 '남편과 꽁냥 거릴 만큼 잘 지내고 싶어' 였던 거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여우와 두루미'처럼 서로 다른 존재가 함께 살고 있어요. 넓은 접시가 필요한 그에게 긴 호리병을 내밀고, 긴 호리병이 필요한 당신에게 넓은 접시를 주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서로 받아먹을 수가 없어요. 하지만 같이 살지요.]
여우와 두루미...
서로 원하는 먹이도 다르고, 각자에 맞는 그릇을 줘야만 그 먹이도 먹을 수 있다는 말이 와닿는 거 같아요.
저의 진짜 소원은 '남편과 잘 지내고 싶다'라는 것도 다시 한번 꿈을 통해 알게 되어 반갑네요.
꿈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저에게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라고 묻고 있었습니다.
청명(淸明), '맑을 청' '밝을 명'. 이름 그대로 청명은 1년 중 물이 가장 맑을 때이자 하늘도 맑고 날씨도 좋은 그야말로 가장 봄다운 절기이다.
~ 생략~
그래서 청명은 저돌적이고 무모한 청춘과 닮아 있다. 지금 원하는 것을 하는 것! 가능성을 믿고, 밀고 나가는 것! 그게 청춘이 아름다운 이유가 아닐까?
- 절기서당 中 -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청명(淸明)의 절기에 '여우와 두루미'처럼 함께 살아가보려 합니다.
이왕이면 사이좋게 말이죠.
"당신이 원하는 건 어떤 삶이야?"
오늘 다시 한번 그 사람을 관찰해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