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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Sep 11. 2022

비바람에 꺾이지 않고 우리의 '바람'들이 이뤄지기를

이정 <풍죽도>, 바람이 보이는 그림.


바람 잘 날 없는 나는

얼마 전 계단에서 넘어져 뾰족한 모서리에 턱을 찢기고 입안까지 찔려

안팎을 봉합하는 나름 내 인생 최고의 사고를 겪었다.


너무 피가 많이 나와서 당혹스러웠지만, 웬일인지 아픔에도 불구하고 눈물은 나지 않았다.

이 정도 일쯤은 일어나도 괜찮다고 생각한 걸까?


친구들은 얼굴에 생길 흉터를 걱정했지만, 사실 나는 친구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실밥을 풀고 의사 선생님이 흉터가 잘 생기는 곳이라 1년은 레이저를 해야 한다고 했는데도

그저 모서리가 다른 곳을 찌르지 않았다는 것에 무척이감사했다.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많은 소송과 재판, 어려움을 겪으면서 눈에 보이는 이 상처쯤이야 나에겐 타격감이 없었다.  


추석이던 오늘, 뉴스를 보는데,

비바람과 태풍이 쓸고 간 자리에 남겨진 사람들의 인터뷰를 보면서 눈물이 줄줄줄 흘렀다.

'언제 나아질지 모르겠어요. 눈물이 나요'


예상치 못한 무언가 들이 어느 날 갑자기 닥쳐와 모든 것을 쓸어버리고 내 노력을 수포로 만들고 삶 전체를 망가뜨리는 기분, 곧 잘 될 것이라는 희망도 불투명해 먹먹한 기분

나아질 것이라고 말은 하지만 사실은 내일 더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것을 나 스스로가 너무 확신할 수 있는 상황, 마음이 뭔지 같아서.

왜냐면 내가 뭘 잘 못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서.


그래도 우리는 또 살아가고

'추석 잘 보내세요, 건강하세요, 좋은 일만 있으실 거예요'라고 지나치지 않고 인사를 건넨다.


이 그림을 알게 되었을 때,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세계 각국에 그려진 화폐에 그려진 명화에 대해 강연을 준비하면서 우리나라 5만 원 뒷장에 있는 이 그림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조선시대 화가 '이정'의 풍죽도.

이정, 풍죽도. 견본 수묵, 127.5 X 71.5cm 간송미술관 소장


이 그림을 보면서 감탄했던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이 이 그림 속에서 그야말로 불고 있었고 바람이 보였기 때문이다.

대나무를 휘청거리게 만드는 강한 바람이 보인다.


조선 중기 3대 묵죽화가로 꼽히는 이정은

임진왜란 때 칼에 오른손을 아주 크게 다쳐 화가로서 굉장한 위기가 있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그 이후에 더 깊이 있는 그림들을 그렸다. 임진왜란 때였으니 모두에게 굉장한 바람이 불던 시기.

안팎으로 많은 위기를 겪었던 이정은 거세게 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꿋꿋이 서있고자 했던 대나무를 함께 그렸다. 휘청거리지만 절대 '부러지지 않은' 대나무를.


사실 나는

늘 다시 태어난다면 바람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한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롭고 싶다고.


나의 삶은 누군가를 흔들어대는 질풍이 아니라

누군가 한 숨 돌리고 쉬어갈 수 있는 산들바람 같은 삶이기를 언제나 노력한다.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사랑하는 이의 샴푸 향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바람이면 좋겠다:)


내 삶에 불고 있는 바람들이

턱에 상처를 내듯 내 마음에 많은 상처를 내고 지나간다.

쓰러지지 않고 이 시간들을 좀 보내보려 한다.


오늘  쓸쓸한 바람이 내 마음을 지나갔지만 다 지나가는 것이라며

달래고 어루만진다.

"힘든 와중이지만 그래도 추석이니, 추석만큼은 힘든 거 좀 내려놓고, 여유 있는 시간 보내세요"

라는 따뜻한 메시지를 기억하며 누구보다 내가 몸과 마음이 편한 추석을 보냈으면 하는 맘에 글로 오늘을 정리한다.



+

그러니

바람이 아무리 당신의 삶을 흔들어대도

꿋꿋이 버텨

이겨내기를

간절히 '바람'.


나와 당신의 '바람'들이

끝끝내 이루어지기를 100년 만에 가장 둥근 달이었다는

오늘의 보름달에 간절히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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