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 잘하는 사람'이 부럽다면

나는 밤 11시까지 야근하며 머리 싸매고 있는데!

by 대왕고래

유독 '부탁'에 능숙한 사람들이 있다.


그게 어느 곳이든 말이다. 가족 중 누군가가 부탁을 빈번하게 할 수도 있고, 직장동료나 친구들의 경우에서도 허다하다. 좋게 얘기하면 본인에게 부족하거나 모자란 점들을 잘 캐치하여, 타인을 통해 그 부분을 굉장히 잘 메꾸는 사람. 반면 자기주도 능력이 부족하다거나, 항상 타인을 이용하려 한다고 보는 시각들도 있다.

정도에 따라 당연히 둘 다 맞는 말이다.




예전에 '부탁 잘하는 사람'이 몹시 부러웠다. 나는 부탁을 잘 못하는 사람이다. 직장 내에서 무언가 내 담당 업무가 생기면, 모르는 부분이 있더라도 인터넷 검색을 하거나 새롭게 배워서 터득한 후 일을 처리했다.


부탁을 잘 못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나의 경우는 솔직히 자존심이 한몫한 것 같다. 특히 막내시절에는 선배들에게 무언가를 질문한다는 것이 나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라 생각했다. 동기들에게도 난 무엇이든 척척 해내는 모습으로 비치기를 바랐다. 더구나 이 모든 걸 스스로 해내고 난 뒤 쏟아지는 찬사를 아무래도 나는 즐겼던 것 같다. 참 융통성 없던 과거다.


그랬기에 신입시절의 나는 회사 지박령 같은 존재였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늦게까지. 새로운 것들을 배우느라, 혼자 머리 싸매고 해결하느라, 그 밖의 여러 이유로 나는 야근을 일상으로 만들었다.


'부탁'을 잘하는 사람들은 나와 달랐다.

드디어 내게도 부사수가 생겼을 때였다. 그 후배는 무언가 일이 주어지면 정말 발 빠르게 움직였다. 본인이 신속하고 정확하게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은 확실하게 마무리 지었다. 이후 무언가 막히거나 모르는 분야가 있을 때마다 정말 거침없이 내게 질문공세를 해댔다. 그런데 그게 전혀 나빠 보이지 않는 것이다. 주어진 과업을 처리하고자 그가 선택한 것은 더 능숙한 선배에게 확실하게 배우는 방법이었다. 개인적인 약속이 있다며, 같이 입사한 동기들에게 잔업 부탁을 하는 일도 더러 보였다. 난 이런 후배가 정말 부러웠다.




'부탁을 못한다고 해서 못난 게 아니다.'


어느 날 사수 형과 출장을 마치고 퇴근 후 식사를 함께했다. 간단히 소주를 곁들이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내가 후배 이야기를 했다.


"형, 나는 내 부사수가 정말 부러워요. 나도 저렇게 융통성 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뭐가 어렵다고 그 흔한 부탁 하나 할 생각을 못했을까. 취미 같은 것도 좀 만들걸."


이렇게 시작한 넋두리는 술자리의 메인 주제가 되어 내 한탄이 계속됐다. 늘 칼퇴에 취미까지 즐기는 그 후배가 부러워지면서 내 과거들을 돌이켜보고, 거기에 더해 내 방식이 잘못됐던 것은 아닌가-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러자 사수형이 말했다.


"사람마다 성격 다르고, 거기에도 장단점 다 있는 거 아니겠냐. 너는 부탁을 잘 못하는 거 잘 아는데, 그래서 사실 이 팀장님도 너 더 예뻐했어. 확실하게 공부해서 습득을 하니까. 혼자 끙끙거리는 거 사람들 다 본다. 선배들 중 너 터치하는 사람 거의 없잖아. 네 동기들은 못 가는 연수를 어떻게 너만 갔겠냐. 너 실적도 눈에 띄는 거 없었잖아. 팀장님하고 국장님이 추천을 그렇게 해주시기가 쉽냐. 성격이다, 성격! 부탁도 성격이야. 넌 너 성격 중 장점이 있는 거고, 후배는 후배 성격 중 장점이 있는 거고. 다 '얻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는 거지."


사람, 늘 남의 것이 좋아 보인다는 사실을 다시 뼈저리게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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