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임원들은 마음에 둔 후배가 있다.

직장인이 '직장'이라는 세계에서 갖는 소명, 진급

by 대왕고래
5,000명이 공존하는 세계에서

우리 직장에는 5,000명 정도의 직원들이 존재한다.

그중 최고위 '보스'를 제외하고, 임원이라 할 수 있는 '국장'급이 10명 내외로 최상단에 포진해 있다. 5천에서 단 10명 정도뿐인 국장님들은 그야말로 탑급 임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예산, 기획, 행정, 홍보 등 다양한 부처의 총책임자로서 식구들을 아우르는 분들이다.


그 당시 내가 근무했던 부서는 대외협력. 업무 특성상 언론인 및 다양한 정치인, 기관 관계자들과 술자리를 보내는 일이 잦은 곳이었다. 20대 시절부터 내가 국장님을 비롯한 대선배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이유다.


높은 위치에 오른 모든 자들은 대게 자신의 후임자를 염두에 두고 있다.

내가 처음 회사에 들어왔을 때의 국장님은 과장님이셨다. 술, 사람 좋아하는 참 호탕한 분이시다. 그런 국장님 역시 아주 오래전부터 마음에 둔 후배가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내 사수라는 사실을 안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직장인의 소명, '승진'

숱한 술자리의 장점 중 하나는, 제정신에 미처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남사시럽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 무뚝뚝해 보이던 국장님이 심하게(?) 따뜻한 말을 건넨다던지- 하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었다.


특히 평상시엔 그렇게 구박하던 나의 사수에 대한 애정표현도 가득하셨다. 당시 사수 형은 우리 사무실 내에서도 극한직업이라 할 수 있는 파트였다. 말 그대로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어느 곳보다도 많은 부서다. 하여 하루에도 숱한 사람들과의 미팅, 술자리가 가득했다. 입사 첫해부터 형이 늙어가는 모습이 옆에서 눈에 띌 정도였다.


경상도 출신 특색인지 남사스러운 말도 잘 못하고 묵묵하던 형은, 보기에 소처럼 일만 하는 것 같아 답답할 때가 많았다. 직장인들이 조직 내에서 갖는 유일한 목표는 사실 '승진'이다. 이걸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하는 분들을 봐왔다. 정기 인사 전만 되면 아주 별 광경을 다 만날 수 있었는데, 유독 이 형은 그런 것에 약했다. 윗선에 아부는커녕, 좋은 기회가 오면 양보하기 일쑤인 모습은 내게 '답답함 한도 초과'였다. 가장 친하게 지냈던 형이었기에 둘이 술 한잔 하며 이런 사례들로 언성을 높인 적도 있다. 내 사수가 잘 풀리지 않는 모습이 영 기분 좋지 않았던 것이다. 열변을 토하는 나에게 이렇다 할 답변도 안 하고 듣기만 하던 양반이었다.


그나마 내가 마음이 좀 편해졌던 것은 당시 과장님(현 국장님)이 형을 각별하게 여기셨다는 점이었다. 영 바보처럼 눈에 띄는 성과도 챙기지 못하고 있을 때에 과장님은 늘 형을 따로 챙겨주시곤 했다. 그것이 승진과 관계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별도로 우리를 불러서 "고생 많다"라고 말 한마디 건네주시는 게 참 큰 위로였다. 그렇게 종종 갖던 술자리가 이제까지 이어진 것이다.


'예쁜 척'하는 사람 말고, '예쁜 짓'하는 사람

'임원'이 갖게 되는 주요한 혜택(?) 중 하나는 아마 인사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지 않을까.

처음 과장님이 승진한 이후 어떤 부서를 가시게 될까 많은 이들이 궁금해했는데, 결국 우리 부서로 오셨다. 보통 '국장'급 이상인 분들에게는 우리 부서가 기피대상이다. 말년에 정점을 찍은 뒤, 굳이 대외협력 쪽에서 많은 이들을 상대해가며 감정노동을 해야 하나 싶은 것이다. 때문에 어떤 이들은 "와, 국장님 정말 술 좋아하시네~" 내지 "진짜 적성에 맞으시나 보다~"라 말하기도 했다.


그런 국장님이 돌아오신 뒤 가장 먼저 한 것은 본인의 '추천권'을 사수형에게 사용한 것이다. 그렇게 누구도 챙겨줄 생각 않던 사수를 귀환하신 국장님이 해주셨다. 비록 내가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난 그 배려가 참 고마웠다. 이후에는 별도로 우리를 부르시더니 직속 팀장님과 함께 단 넷이 술자리를 갖게 됐다.


다른 분들이 화장실에 간 사이, 국장님이 얼큰하게 취하신 상태로 한 마디를 던지셨다. 나도 제정신이 아니었는데, 술자리에서의 조각난 기억들 중 유독 그 문장은 또렷이 기억에 남았다.


"너도 저놈처럼 '예쁜 짓' 많이 해라, '예쁜 짓하는 척'만 하지 말고!"


최근까지도 나는 국장님의 그 말씀을 곱씹으며 하루와 전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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