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이 이렇게 흔하다니

'막장드라마는 지극히 현실주의 드라마였다' - 사실을 깨달은 사회초년생들

by 대왕고래


처음으로 목격한 '현실세계에서의 불륜'은 첫 직장이다. 그곳에서 아무개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딱히 놀라지 않았다. '드라마에서 보던 막장 같은 케이스가 이곳에도 하나 있군'이라고 생각하고 넘겼다. 그런데 그 직장에서의 세월이 쌓여갈수록 내가 목격하는 빈도수도 비례해서 올라갔다.


내가 점점 충격을 받게 된 것은, 숱하게 이직을 했던 시간들이다. 옮기고 또 옮겨 간 곳들에서도 이런 사례는 뭐 비일비재했다. '불륜'이나, 직원들의 승진을 위한 '모략' 등은 이제 보니 그냥 흔한 일이었던 것이다.


아! 나는 온실 속 화초였구만!

20대 때만 해도 소위 '막장 드라마'라고 하는 것들이 왜 시청률 1위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저런 내용에 이토록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지 알기 어려웠고 때로는 분노 키도 했다.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나의 꿈이었다. 그래서 능력 있는 PD님이나 작가님들이 왜 이런 소재를 십분 활용하는 건지, 또 왜 그 소재로 자극적인 것들을 계속 양산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순진했다. 그들은 사회의 그림자를 잘 꿰뚫어 보고 있었고, 사람들 역시 애써 외면했던 이면이 들춰진 그 '매운맛' 장면에 반응했을 뿐….


돌이켜보면 '불륜'이란 소재는 생각보다 다양한 장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직장생활이 주 스토리였던 '미생'에도 배우 변요한의 사수가 협력업체의 간부와 불륜을 저지른다. 올해 최고의 히트작이었던 '부부의 세계'는 말할 것도 없다. 마니아층이 탄탄했던 '나의 아저씨' 주인공 이선균의 가족은 물론, 직장 내 직원들끼리도 불륜이었다. 사극이나 시대극에도 빈번하게 나타난다.


아주 대환장 파티다.




그간 내가 겪은 조직들은 제법 다양한 분야였다. 콘텐츠를 기획하거나 만드는 게 나의 주업이었기 때문이다. 해서 방송국 몇 군데에서 근무했던 것은 물론 대기업에서도 꽤 오래 일해왔다. 최근까지는 외국 브랜드 회사에서도 몸담고 있었으니, 카테고리가 하나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곳들에서 그 수많은 '막장 드라마' 소재를 마주하는 것이다. 그것이 비단 '불륜'만은 아니다.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조직 내의 파벌싸움과 진급에 대한 인간의 열망. 심지어는 절도/폭행을 비롯하여 아주 사건사고가 다양하다.


드라마 속에서만 존재하던 세계가 내 앞에 펼쳐지면,
많은 사회초년생들은 당황한다.

사회에 내던져진 또래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을 할 때가 아주 많다고들 한다. 10여 년 전쯤, 첫 입사를 하고 난 뒤에는 서로 '(우리에게만) 충격적인 목격담'을 나누기 일쑤였다. '불륜' 소재를 차치하고라도 아주 다양한 소재들이 나왔다.


진급을 위해 보고서를 잔혹하게 가로챈 선배 / 한 공무원을 수개월 간 죽도록 괴롭히던 민원인이, 알고 보니 같은 사무실 옆 팀장의 친인척이었다는 사실 / 횡령으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된 동료 직원 등.


20대 중반의 사회초년생들은 이런 장면들을 마주하며 '어떻게 그럴 수 있지'라는 생각들을 한다. 그런데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당시의 그들과 만나 대화를 하다 보면 상황에 반응하는 우리의 자세가 사뭇 달라졌다는 사실을 느낀다.


익숙해진 것일까.

외면하는 것일까.


그럼에도, '매운맛 그들'이 우리 사회 구성원 전체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어린 시절의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생각해보니 '막장 드라마'라 하더라도 그곳에는 각 곳에 존재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나온다. 그중 미디어에 송출되는 장면은 그들이 '불륜'이든 '모략' 따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고 평범하게, 착하게, 열심히, 묵묵히 살아가는 이들은 드라마에서 비칠 수가 없다. 그것은 '눈에 띄는' 소재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세계도 마찬가지다.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각자의 삶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다만 그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아직 소잿거리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매운맛 사람들은 단지 다른 이들보다 눈에 조금 더 띄어서 마치 모든 사회가 이런 모습인 척한다.

캡사이신보다 더욱 강렬한 양념이 온통 잘 배어 있고 펄펄 끓어대는 그들의 불같은 맛!

그러나 우리의 주식은 예나 지금이나, 그보다 익숙한 '순한맛 쌀밥'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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