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에 걸린 과장님이 계속 출근하는 이유

- 책임감에 대하여

by 대왕고래

20대 중반 즈음…. 당시 나의 소속은 '홍보팀'이었다. 그때 우리 부서에는 수백 명 가까이 근무 중이었는데, 그중 하나였던 작은 규모의 홍보팀은 마치 '외인구단'과도 같았다. 홍보팀장님은 부서 내 모든 팀장 중 가장 나이가 어리셨고, 예하 팀원들도 각각 진급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야말로 막내들의 집합이었던 것이다. 나 역시 갓 발령받은 최고의 신입 초짜였으니,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할까.


하여 우리 팀의 자리는(으레 다른 곳들도 그러하듯), 사무실 입구 문앞에 위치해 있었다. 하루가 여러모로 분주한 막내의 눈에는 사실 그 노인이 처음부터 그렇게 인상적이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홍보팀에는 하루에 수십 명… 많게는 백 명이 넘는 손님들이 방문했다. 일간지, 월간지 기자들은 물론, 방송 리포터, 관계자, 협업 업무부서 등 어마어마했던 기억이 난다. 돌이켜보니 손님들을 맞이하고 응대하는 것이 우리 팀의 주된 업무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다.


아무튼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수백명의 얼굴을 익히는 것이 한 동안 참 힘들었다. 각 방송사별, 매체별 기자들의 얼굴은커녕 다른 팀 선임들의 이름도 제대로 외우지 못해 지적 당하기 일쑤였다. 그런 일상이 반복되고 있을 즈음. 어느 날 아침 탕비실을 정돈 중이었는데 누가 냉큼 뒤통수를 후려치는 것이다.


"아~~ 씨!!!"


짜증이 뒤엉킨 말을 내뱉으며 뒤를 돌아보니, 낯이 익은 노인이 나를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별다른 말 없이 씩 웃기만 하던 그 노인은 이내 뒤돌아 탕비실을 나가버리는게 아닌가. '낯이 익기는 한데…. 누구였더라?'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아 정리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곧장 밖으로 나와버렸다.


나중에서야 확인해보니 그는 내가 이따금씩 차를 대접해주던, 사무실 높은 선임들의 손님이었다. 노인은 항상 출근시간 어귀에 사무실을 방문했다. 나를 비롯한 평직원들과는 딱히 교류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멀리 과장님 자리나 팀장님이 계신 곳 테이블에 앉아 차를 한잔 하기도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공휴일에 근무가 걸렸을 때였다. 명절이나 주말에 사무실 청사는 보통 텅텅 비어있기 마련인데 그날 역시 그랬다. 1층 화장실 문 앞을 지나가는데 저쪽 현관 앞에 익숙한 얼굴이 있는 것이다.


그 노인이었다.

큰 건물 내에서 사람 한 명 없이 근무하다보니, 약간 적적했었던 찰나. 난 그 노인을 보고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지만 어쨌든 사무실에 종종 찾아오던 손님이었으니 말이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잠긴 문을 한참 흔들며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고 있는 노인이 보였다. 인상을 잔뜩 쓴 채 실눈으로 안을 바라보고 있는 노인. 썬팅이 되어있어 내부가 잘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연휴 내내 청사 1층은 굳게 잠겨있었고, 근무자만 별도 출입구를 통해 들어올 수 있었던 상황. 근무하고 있던 나와 몇 동료 직원을 빼고는 과장님이나 팀장님은 계시지 않았는데, 대체 그는 왜 안으로 들어오려고 했던 걸까?


'근무 중인 누군가를 만나러 왔다면 안내전화로 호출이라도 하지. 흠.'


가만 보니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싶어 문 앞으로 다가가 물어보았다.


"안녕하세요, 혹시 누구 만나러 오셨나요?"


문이 열리자 환하게 웃더니 말이 없는 노인. 그러다 별안간 청사 안으로 마구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다. 근무 중인 나로서는 일단 저지할 수밖에 없었다. 의아한 생각이 계속 들었는데 별다른 저항이나 말 한마디 없이, 돌연 뒤를 돌아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노인.




그리곤 며칠 뒤 사무실 근처의 식당에서 회식이 있었다.


부서 전체의 회식이었던지라, 오랜만에 전 직원이 모여 앉았다. 만년 막내인 나는 입구에서 인원체크 및 안내를 하고 있었는데, 회식이 시작될 무렵 청사 쪽을 바라보니 그 노인이 걸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늘 오전에만 봐 오다가 퇴근 무렵에 만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노인은 이쪽으로 오지는 않고 다른 방향을 향해가고 있었는데, 뒤에서 때마침 팀장님과 과장님 두 분이 담배를 태우러 나오셨다.


"팀장님, 그런데 저분은 누구세요? 사무실에 엄청 자주 오시던데."
"어디? 아 저분? 정 과장님이네. 그쵸, 과장님?"
"그러네. 사무실 자주 오시지? 잘 해 드려."


이름 석자 명확하게 들을 순 없었지만, 우리 팀장님과 과장님이 '정 과장님'이라고 부르는 노인.

뒤이어 소주 한잔과 함께 노인 이야기를 조금 듣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 노인은 나와 30~40년 정도 차이가 나는 최고참 직장선배님이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현재 치매를 앓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됐다.




정 과장님이 치매판정을 받은 뒤 사무실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팀장님이나 과장님도 특별한 말씀은 없으셨다. 아마 퇴사 이후에는 한 동안 나름의 많은 시간을 보내셨으리라… 두 분 모두 짐작만 했을 뿐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몇 해가 지났을까.

당시 평사원으로 근무하던 팀장님이 타 부처를 전전하시다가 진급 후 다시 우리 부서로 돌아오셨는데, 왠일인지 이곳에 정 과장님이 계셨더라는 것이다. 주변인들에게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과장님이 다시 출근길에 나선지도 벌써 꽤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셨다고 했다. 처음에는 사람들도 매우 놀라 그에게 인사도 건네고 했었다고 한다.


애석하게도 노인에게 남은 유일한 기억이란, 오직 본인의 출근길뿐이었던 것이다.


함께 근무했던 사람들도,

맡았던 업무들은 물론,

힘들 때 항상 찾아와 담배를 태우던 아지트의 기억 조차,

그를 영영 떠나가버렸다.


그 외에도 그에게 어떤 기억들이 더 남아있는지는 사무실 사람들도 알 방법이 없다. 우리는 오직 이 안에서 맺어진 관계였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인지되는 것은 오로지 그의 '출근길'이 유일했을 뿐이었다.


노인의 발걸음은 수많은 추측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왜 과장님은 다시 출근길에 오르셨을까.」이 질문이 가장 화두였던 것 같다. 글로 모두 기록할 수는 없지만, 우리 모두의 생각을 관통하는 단어는 딱 하나 있었다.


바로 '책임감'이다.


혹여 저 발걸음이 모종의 '책임감'은 아녔을는지….

그게 아내 혹은 자녀에 대한 것이든,

직장 후배와 선배들에 대한 것이든,

혹은 맡은 소임에 대한 것이든 말이다.


우리는 모두 책임감을 안고 산다

각자의 가정에서,

또 직장이나 학교에서,

본인이 어디에 속해있던-

보통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떠한 책임감을 꼭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책임감에는 모종의 불안감도 내재되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 역시 늘 두려움을 안고 살고 있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과 일이 늘어나며, 매일 느껴지는 무게는 갈수록 커져만 가는 느낌이다. 그럴 때마다 요즘의 나는 이따금 그 노인이 떠오른다.


사라져가는 본인의 기억들 중 유일하게 붙들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출근길'이라니.

그가 느꼈을 두려움은 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요즘에도 그는 종종 사무실을 찾고 있다고 한다. 매일 아침 무거운 걸음을 옮기는 이유가 무엇인지, 여전히 누구도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겠지.


다만 그런 생각은 든다.


그게 어떤 종류의 무엇이었든 끝까지 놓지 않으려 했던 그의 '출근길'처럼,

모든 이들의 걸음에도 다양한 감정을 수반한 어떤 '책임'이 지워져 있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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