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집 '두 번의 장례식'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정성시인데, 정승이 죽으면 개 한 마리 없다.

by 대왕고래


불과 한 달 전 상무님의 모친상 소식을 듣고 장례식에 다녀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상무님께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한 달 새에 벌어진 두 번의 장례식. 난 그 두 번의 장례식장을 다녀오며 줄곧 속담 하나를 떠올렸다.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를 이루고, 정승이 죽으면 개 한 마리 없다.


장소마저 같은 병원이었던 정승집 '두 번'의 장례식은, 한 달 새에 참 많이도 달라져 있었다.


회사에서는 장례식장에 방문하는 직원들을 위해 단체 관광버스를 몇 대 대절해두었다. 나와 사수 역시 이 버스에 올랐다. 경남에 위치한 장례식장까지 다녀오려면 여러모로 부담인 수도권 거주자들에게 퍽 고마운 배려였다.


같은 팀 식구들은 와이프, 자녀, 부모님, 제사 등 여러 가지 사연(?)들이 있어 조의금 봉투를 진즉 나에게 맡겼다. 그때만 하더라도 '우리 팀원들에게 요즘 일이 많은가 보다'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버스에 오르니, 비단 우리 팀원들만 그랬던 건 아니었다. 지난달 꽉꽉 차던 좌석은 출발시간이 되어도 10명이 채 타지 않았다. 뒤에 대기하고 있던 여러 대의 버스가 무색해 보였다.


몇 시간을 졸다가 도착해보니, 같은 병원이라 구조는 아직 선명하게 머리에 남아 있었다. 채 한 달 밖에 되지 않은 두 번의 장례식…. 비교가 더욱 선명히 되는 까닭이다. 그 즐비하던 화환이 거의 없다. 시끌시끌하던 풍경도 사라졌다. 분주하게 움직이던 상조회사 직원들도 한편에서 쉬고 있다.


상무님은 회사 내외에서 제법 영향력이 큰 분이셨다.

협력업체들과의 관계도 잘 유지하시는 편이었고, 본인이 이끌고 있는 파트원들과의 관계도 좋았다. 부하직원들끼리도 높게 평가하는 드문 상사였고, 거래처 대표님들도 자주 찾아와 식사를 함께하곤 했다. 술도 좋아하셔서 사내 회식이나, 외부 사람들과의 술자리도 마다하지 않으시던 그런 호탕한 분. 명절이나 연말이면 집무실로 찾아오는 손님들이 북새통을 이뤘고, 상무님의 휴대전화는 늘 불이 났던 기억들이 선명하다.


그런데 한 달 새 이렇게 다른 풍경을 본다. 우리 과장님이 왜 매번 "우리 아들놈, 나 정년 전에 결혼해야 할 텐데!"라고 말씀하셨는지도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된다. 장례식장에 와서라도 상무님과 인사 한마디 나누고자 했던 그 모든 사람들. 그들은 그가 없는 이곳에 더는 찾아오지 않는다.




난 이런 세태를 탓하고 싶지 않다. 하물며 비난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소적이기 짝이 없는 이 글을 굳이 기록으로 남기는 이유는, 다름 아닌 나의 다짐에 있다.


내가 장례식장에 온 이유는 사실 저 사수 때문이었다.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나 하나쯤 안 가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 사수가 잠시 나를 부르더니 "우리라도 가봐야지"라고 한 것이다. 우리는 상무님과 다른 파트였고, 깊은 우정을 나눌 시간도 많지 않았다. 모두 술을 좋아하는 탓에 전체 회식자리에서는 종종 대화를 나누거나 어울리기도 했는데, 아마 그때가 가장 교류를 많이 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도 이 형은 저렇게 얘기하면서 같이 가자 말했다. 사수는 수년간 동고동락하며 가장 친하게 지내는 형이었다. 그래서 별다른 거절 없이 따라나선 것이지, 솔직히 내게 커다란 이타심이 들었던 건 아니다. 그렇게 따라나간 자리였는데 이리도 많은 생각을 한다.


혹 대다수 사람들이 금번 장례식 소식을 듣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사수는 사수인가 보다.

이번에도 그는 내게 퍽 고마운 가르침을 주었다. 나도 '나 하나쯤'이 아니라, '나 하나라도'라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저 형을 보면서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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