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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왕고래 Oct 31. 2020

죽기 전에 100번은 가을을 볼 수 있을 줄 알았지

모르는 새 지나가버린 것들에 대하여



"나 죽기 전까지 적어도 100번은 가을을 볼 수 있을 줄 알았지 뭐야."


병상에 누운 채로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대충 사람이 100살까지 산다고 가정했을 때, 최소 100번은 가을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다고 편하게 얘기하신 것이다. 지금은 창밖에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계절 하나하나가 아쉽다 못해 끔찍한 지경이라 하셨다. 


그런데 그 말들을 듣고나니 나는 「100번」도 왜 이렇게 적게 느껴지는지…. 

할아버지는 '적어도 100번은…' 이라 말씀하셨지만, 나는 '고작 100번'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하나하나 따지지 않고, 쉽게 한 번 생각해보았다. 


- 대충 100살까지 산다고 생각하면 가을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최소 100번.

- 그 중 내게 소중한 사람과 가을을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최소 60번 내외(예 : 가족, 부모님과 함께).

- 태어날 아이들과 함께 저 가을을 볼 수 있는 기회 최소 60번 내외.

기타 등등


그러다 행여 아프기라도 하면 마이너스 N회, 군대와 같이 강제적인 곳에서 미처 가을을 온전히 마주할 수 없는 경우 또 마이너스 2회, 그밖에 예측할 수 없는 여러가지 이유들로 인해 다시 한번 마이너스 N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말이 100회지,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나도 중년의 입구에 서 곧 문을 열고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도 이 가을을 아무 생각없이 마냥 흘려보내고만 있었다. 좀 더 이 계절에 집중해 깊은 생각에 빠져볼 생각도 못했다. 그저 나의 회사에서, 집 안에서, 혹은 다른 곳들에서 내내 뒤로 지나가버리는 100번의 기회 중 1개를 놓치고 말았다.


미처 위기감이 없었던 시간들 사이에서, 갑작스레 등장한 경각심.  


중년의 입구, 그 문턱에 서서 저 깊은 가을의 모습을 얼마나 더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혼자서도 50~60번 정도만 겨우 보낼 수 있는 소중한 기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내려고 작정한다면 더 급격히 줄어드는 숫자.


조바심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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