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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왕고래 Oct 23. 2020

여행은 '왕복'인데 인생은 '편도'네

'편도 여행'의 묘미

한때 비행기 티켓처럼- 내 인생에도 '왕복 티켓'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곳까지 다다르더라도, 다시 내가 원하는 날짜를 설정해 돌아올 수 있는 그런 티켓 말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변수 많은 인생의 편도 여행길에 지쳐 버렸을 때였다. 


왕복 티켓을 사면 돌아올 때를 정확히 할 수 있다. 


그래서 비교적 조금 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고,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큰 틀에서 '정해진 시간'을 내 맘대로 활용할 수 있다. 원하는 장소를 찾아가 원하는 것을 보고, 원하는 것을 먹고, 원하는 것을 듣고 느끼며 그렇게 내가 원하는 장면을 어느 정도 컨트롤할 수 있다는 점은 참 매력적이었다. 


'변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나로서는, 살면서 만나는 모든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자 그간 부단히 노력해왔다. 항상 회사를 체계적으로 운영하고자 노력했고 원치 않는 만남이나 사람들도 늘 조심하고 피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점점 '편도 여행'의 묘미에 빠져버렸다.


암만 변수에 능동적으로 대처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내 뜻대로 삶이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돌아갈 티켓'이 도대체 어느 시점인지 나는 절대로 알 수가 없다. 이 문제에 그 누구도 해답을 줄 수 없다는 걸 비로소 눈치챘다. 시간을 이겨보고자 해도, 발악할수록 지치는 건 나였다.


그래서 나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편도 여행'에 그냥 나를 던져 놓기로 했다.

'엔트로피'는 커다랗고, 과연 이다음엔 어디로 향하게 될지 먼 미래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예상치 못한 장면들을 만나게 되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열심히 계획하고 뒤져본 뒤 시간을 컨트롤할 수 있었던 여러 왕복 여행들에는 내가 늘 예상했던 그림들이 펼쳐져 있었다. 그런데 이젠 전혀 몰랐던 사람과 장소와 상황들이 예상치 못한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세상에는 내가 알지 못했던 예쁜 색깔이 참 많았구나!

지금껏 늘 좋아하는 색들로만 그림을 그려왔다. 그러다 보니 내 작품들은 늘 비슷한 느낌으로 만들어졌다. 같은 색깔, 같은 도구들, 같은 도화지에 그려진 장면들을 쭉 살펴봤더니 참 한결같다. 그런데 비로소 내 그림에 다른 색깔, 다른 도구들, 다른 재질의 종이가 더해지자 전혀 다른 작품들이 나왔다. 


오, 이거 참 두근거린다.


어느 곳에서 '인생은 못 본 채 지나간 꽃밭'이라는 글을 읽었다. 나도 걸어왔던 길을 가만 떠올려봤다. 난 참 '변수'를 없애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구나. 그런데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그 모든 변수에 완벽하게 대처했던 것은 아니다. 결국 사는 데에 모든 것을 예측할 수는 없는 법이다. 아마 신조차 이런 수많은 시간들의 조합을 매끄럽게 배치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감히 그렇게 생각한다.


앞에 놓인 장애물들을 피하고, 또 더 좋은 길이 무엇인지만 열심히 찾아다니다가, 주변에 있는 꽃을 보지 못했다. 내 티켓이 편도였구나, 하고 깨달은 뒤 잠시 돌아보았다. 벌판에 내가 놓쳤던 형형색색의 꽃들이 가득했다. 너무 멀리 와버려서 저만치 아득해지는 곳에 핀 꽃들은 이제 잘 보이지 않는 지경이다. 


그래. 

이제부터는 꽃 하나하나의 색을 고스란히 두 눈에 잘 담아내야지. 

그리고 그 모든 모양새들을 잘 간직하며 여행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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