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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왕고래 Oct 25. 2020

좋지 않았던 것들이 갑자기 좋아질 때

싫지 않았던 것들이 갑자기 싫어질 때

사실 나는 '김동률'이라는 가수를 좋아하지 않았다. 


싫어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냥 취향 차이였을 뿐, 관심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랬던 김동률의 노래가, 처음 접하고 20년은 족히 지난 지금에서야 심금을 울릴 만큼 좋다. 숱한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그의 스타일이 나와 맞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요즘에는 '김동률' 앨범의 모든 노래가 가슴을 후벼 파거나 퍽 큰 위로를 전해준다. 그가 적어 내려 간 가사, 멜로디를 감상할 때면 "아, 내가 이 노래를 왜 여태 안 듣고 있었을까!"며 한탄하기 일쑤다.




좋지 않았던 것들이, 갑자기 좋아질 때가 있다. 

그것은, 대상은 그대로인데 내가 변했음을 의미한다. 김동률의 '오래된 노래'나 '취중진담'의 멜로디/가사 그 어느 것 중 단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 변한 것은 오직 그것을 수용하는 나 자신일 뿐이다. 나는 그가 데뷔 후 한참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절에도 '린킨파크'나 '에미넴' 등의 앨범이나 사서 들었지, 영 잔잔한 그 멜로디들이 퍽 청승맞게 느껴져 피하곤 했다. 그런데 20년이 지나고 난 지금의 나는 그의 공연까지 찾아보고 있는 실정이다.


살다 보니 비단 노래만 좋아지는 것이 아니다. 

예전에는 악연이라 생각했던 직장 내의 상사와 TF팀에서 만나게 된 적이 있다. 인사이동 공지를 보고 한참 좌절하며 우울한 심정으로 팀에 들어갔는데, 현재 그분은 제일 가까운 선배가 됐다. 분명 예전에는 전혀 맞지 않았던 업무 스타일이 이상하게 척척 들어맞고 팀은 승승장구한다. 뭐가 달라진 걸까. 고민해봤더니 변한 건 역시 나였다. 입사 초반에 패기면 다 될 것 같아 사내 규정이나 규칙을 '융통성'이라는 명목으로 포장했던 '과거의 나', 그리고 꽤 긴 시간이 흘러 이 조직이 고수하는 원칙의 근거를 습득해 잘 적응 중인 '지금의 나'는 모든 행동양식이 달랐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늦은 시간 만취해 돌아오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정말 좋지 않았다. 

풀어헤친 넥타이 차림으로 들어오시는 장면을 볼 때면 '대체 저 술을 왜 마시는 걸까, 난 절대 먹지 않을 것이다'라고 다짐했던 나다. 지금은 아버지와 가끔 한잔 하는 순간이 큰 위로의 순간으로 다가온다. 지인들과도 즐겨마시고 있으니 과거의 내 다짐이 참 무색하다.




많은 사람들이 '원래 사람은 안 변해!'라고들 한다. 그와 반대로 '당신, 변했어!'같은 뻔한 드라마 대사들도 많다. 나는 둘 다 맞다고 본다. 누구나 변하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 역시 있는 것 아닐까. 


나는 변했다. 

그런데 변하지 않은 것들도 있다. 

나는 앞으로도 변할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도 변치 않을 것이다.


좋지 않았던 것들이 갑자기 좋아지는 만큼, 어쩌면 싫어하지 않았던 것들이 싫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 나는 분명 변하거나 변하지 않겠지. 그런데 그 미래의 나는 지금처럼 '좋아진 것'들은 늘어나고, '싫어하게 된 것'들은 적었으면 좋겠다. 

생각만 해도 따뜻하고 행복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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