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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왕고래 Oct 31. 2020

'캡처'를 몰라서, '검색'을 몰라서

우리 할머니는 처음 스마트폰이 나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앱'을 사용해보신 적이 없다. 문자와 전화도 간신히 하시는 수준이다. 아흔의 나이시니 당연한 일.


부모님은 환갑이 넘으셨지만 그래도 스마트폰을 익숙하게 사용하신다. 카카오톡은 물론, 다음 카페, 유튜브 앱도 사용하시니까 이 작은 기계로 그래도 비교적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신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부모님이 잘 모르시는 부분들은 존재한다. 


이를테면 '캡처'같은 것이 그렇다. 

'홈 버튼과 볼륨 버튼을 동시에 누르는 캡처 법' 등을 설명해드려도 쉽지만은 않다. 그 버튼을 1초 이내의 순간에 동시다발적으로 누르는 일은 환갑이 넘은 이들에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물론 지금은 기종마다 더 편리한 방법이 속속 등장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캡처'란 난이도 높은 미션 중 하나였다.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나 사진/영상, 이모티콘을 받는 일 역시 이제 많은 이들에게는 일상처럼 되었다. 그러나, 세부적인 기능까지 모든 이들에게 알려진 것은 아니다. '기존의 나눴던 대화 내용을 검색하는 기능' 역시 중년 이후의 분들에게는 여간 생소한 것이더라. 


이따금 부모님과 스마트폰으로 대화를 하다 보면 카카오톡의 숫자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경험을 한다. 이 숫자 1은 상대방이 내 메시지를 읽으면 사라지는 숫자다. 갑자기 생각난 것이 있어서 느닷없는 메시지를 날릴 때가 있는데, 그럼에도 1이 보내자마자 없어진다. 이것은 필시 대화방을 켜 두고 계셨다는 증거다. 


아니 오매불망 카카오톡 메시지 창만 바라보시는 것도 아니고... 

대체 어떻게 이리 숫자 1이 바로 사라질 수가 있단 말인가? 


사태를 파악해보니 그것은 '캡처'를 몰라서, '검색'을 몰라서 벌어진 일이었다. 과거 우리들이 남겨놓은 장문의 메시지 따위를 다시 읽고 싶어 질 때면 어김없이 다시 톡방으로 들어가 대화를 곱씹고 있다는 것이다. 다운로드한 미디어 파일이 '갤러리'가 아니라 다른 폴더에 저장되는 탓에, 사진들도 톡방에서 보는 게 더 편하시단다. 대화가 누적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스크롤을 쭉 올려야 해서 반복되는 손가락질이 불편하실 뿐, 당신들은 괜찮다고 하셨다. 


으레 기본적인 것만 알려드려왔는데, 이 조그만 전자 기계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직 부모님은 모르셨던 것이다. 


옛날 어렸을 적에는 '더하기', '빼기'를 할 순 있어도 숫자가 커지거나 하면 어김없이 틀리곤 했다. 심지어는 그 틀리는 과정도 참 느렸을 테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척척박사처럼 단 몇 초만에 문제를 풀어주셨고 그 모습을 보며 어머니, 아버지는 무지 대단해 보였다. 설명서를 보고도 과학상자를 만들지 못할 때면 한눈에 캐치해 뚝딱 해치워버리는 부모님이 과학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제는 집안에서의 우리 부모님을 비롯하여, 회사의 상무님이나 국장님들도 내게 이런 것들을 물어오곤 하신다. 그러면서 그들 역시 나에게 "야, 너는 진짜 척척박사구나!" 내지 "너 없으면 이런 걸 어디서 배우겠냐"라며 날 치켜세워준다. 


그런 일들이 있은 후에 행여 모르실까 봐 먼저 이런저런 기능들을 알려드리면,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신다. 또 그만큼 기뻐하거나 행복해하시기도 한다. 


보다 쉽게 내 딸의 편지를 찾아 읽어볼 수 있어서, 

혹시나 지워질 수도 있을 감동스런 대화의 흔적들을 '캡처'해 저장해둘 수 있어서, 

소중한 사람의 전화가 올 때면 스크린에 함께 찍은 사진이 나타나게 되어서,

가족 여행에서 찍어둔 수많은 사진들을 단번에 예쁜 영상으로 만들어줘서, 


그들에게는 이런 오지랖이나 참견 따위가 정말 행복한 순간이 된 듯했다. 

앞으로도 '척척박사의 소임, 최선을 다해 수행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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