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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왕고래 Jan 12. 2021

'착한 팀장' 이용해 먹는 '못된 팀원들'

제가 직장 내에서 처음으로 흑화 한 이유는요.

많은 또래 동료들이 '꼰대~ 꼰대~' 거리면서 직장 선배들을 비난하던 때가 있었다. '꼰대'란 말을 공격을 위한 도구로 삼았던 것이다. 그 당시부터 '꼰대'란 마치 유행이자 트렌드처럼 소비되고 있었기에 그러려니 했다. 그러다가 한 사건을 계기로 나는 소위 '꼰대'라고 일컬어지는 어른들보다, 더 경멸스러운 젊은이들 역시 존재한다는 것을 보았다. '꼰대'라는 단어를 수시로 사용하는 그들은 늘 자신들이 깨어있는 신세대인 양 행동했다. 이 뒤틀린 시대를 바꾸겠다는 포부였을까, 혹은 그저 반항심이었을까.




20대 시절, 운 좋게 직장에 입사하자마자 꽤 좋은 중간관리자를 만났다. 그 당시 우리 팀장님은 '사람 좋다'는 말을 어디에서나 듣는 분이셨다. 부하직원들의 고충 따위를 항상 경청해주었고, 윗분들께 잘 전달해주시는 점이 참 좋았다.


그러다 어느 점심시간 때였다. 갑자기 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수저를 내려놓더니 팀장님께 건의사항을 올렸다. 나는 사전에 공유받지 못한 내용이었다. 아무래도 고작 몇 개월 된 신입이어서였을 것이다.


들어보니 사무실 이전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 사무실은 당시 회사 내 3층에 있었다. 그리고 바로 아래층에 리모델링을 한 새로운 사무실 공간이 생겼는데, 거기로 팀을 옮기고 싶다는 이야기들을 내뱉은 것이다. 사실 이 건의사항은 내가 봤을 때에도 감히 엄두가 안 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우리 팀은 부서 내 '막내팀'이었다. 100명의 같은 층 직원들 중 막내들로만 똘똘 뭉친 외인구단. 3층엔 7개의 팀이 있었는데 우리 팀장님은 연세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그중 제일 어리셨다. 하물며 팀원들도 마찬가지. 나는 입사한 지 3개월 쯤 된 시기였으니 말할 것도 없고.


그렇기에, 우리 팀이 저 새롭게 단장한 단독적인 공간을 욕심낸다? 그것은 가히 부서 직원 100명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갑자기 저런 건의를 내뱉다니, 솔직히 선배들이 정신이 나간 줄 알았다. 이미 그 공간을 탐내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으니까. 심지어 위층 직원들도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돌던 때다.


팀장님은 경청하시다가 거듭 사무실 이전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물으셨다. 식사를 마친 뒤 사무실에 복귀해서도 우리는 회의실에서 꽤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타당성에 대해서도 며칠간 질의응답이 오갔다. 팀원들은 긴 시간 적극적으로 이전을 주장하며 팀장님을 압박했다. 팀장님은 굳이 새내기인 내 의견도 물어보셨지만, 난 딱히 의사표현을 할 수 없었다.


그냥 그렇게 흘러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 좋은' 팀장님은 기어코 또 '사람 좋은' 일을 저지르고 마셨다. "우리 팀원들의 요청이라면 발 벗고 나서야지!"라 말하며 호기롭게 임원들의 사무실을 순회하셨다. 임원급 사무실에서는 어떤 대회가 오갔었는지 볼 수 없었기에, 그때의 냉랭했을 분위기는 여태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소문은 결국 사무실 전체로 돌았다. 급속도로.


그렇게 팀장님은 사무실에서 '역적'이 됐다.


해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 좋은' 성격 탓에, 부서 사람들은 팀장님을 '오만하고 건방지다'라고 못 박았다. '사람 좋아 보이더니 속내는 시커먼 사람이었다'는 얘기도 들렸다. 입사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은 내가 앞장서서 설명하기엔 너무 벅찬 일이었다. 동기들에게 이야기를 해보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내 제안서와 업무 보고도 늘 살뜰하게 챙겨주시던 팀장님이었다. 분명 위에 사수가 존재하는데도, 모든 업무를 20살 어린 내게 직접 1:1로 알려주시던 양반이다. 그래서 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불쾌했다.


그러고 나서 얼마 뒤 팀장님은 휴가를 내셨다. 때를 놓치지 않고 가십을 좋아하는 사내 직원들이 우리 팀이 위치한 사무실 문 앞으로 우르르 달려왔다.


"대체 이 팀장님은 왜 그런 건의를 하신 거야? 좀 너무하신 거 아냐?"

"아니 당신들이 무슨 새 사무실이 필요해?"

"이거 누구 의견이야? 너희팀 아주 심각하구만."


질문들은 거침이 없었다. 충분히 예상했다. 그렇기에 막내로서 그저 조용히 커피나 타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다음 팀원들의 대답은 비로소 나를 변하게 했다. 회사에서 새롭게 태어나고 있던 나를 단번에 '중2병' 사춘기 피 끓는 상태로 만들었다. 말하자면 드디어 '흑화'한 것이다. 들의 답변은 이러했다.


"전부 이 팀장님 생각이죠 뭐. 팀장님 열정적이긴 한데... 같이 일하는 입장에선 저희도 진짜 힘들어요."

"그러게 말이에요. 우리 팀 그냥 여기 있으면 되지, 왜 임원실을 또 굳이 돌으셔가지고 피곤하게."


그 밖의 수많은 배설물이 그들의 입에서 무한하게 쏟아졌다. 저들은 나와 나이 차이도 별로 나지 않는 30대 선배들인데 왜 저렇게 을까. 아니면 원래 저랬나? 몇 년 뒤 나도 저렇게 되면 어떡하지!? 저럴거면서 왜 담배 피울 때면 '모 부장 꼰대 조심해라' 내지 '꼴 뵈기 싫은 최 과장 기회주의자, 개꼰대!'라는 말을 숱하게 내뱉었을까. 그 순간 제일 경멸스러운 건 그들이었다.


이런 생각이 커피잔  휘젓는 티스푼과 뒤엉키며 마구 쏟아졌다.

그러던 중 마침내, 직속 선배가 대미를 장식한다.


"저희도 다 반대했죠. 그런데 우리 팀장님이 저렇게 확고하실 줄은 몰랐어요. 그치 막내?"


그는 나까지 그 더러운 배설물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생전 처음 겪는 사내정치가 바로 이런 것인가. 나는 온실 속 화초였나. 왜 나는 벌써부터 이렇게 지치지. 온갖 생각이 다 드는 순간이었다. 부끄럽지만, 그럼에도 그 당시 난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벙 쪄 있었다. 이 수치심이 여태 깊이 박힌 날카로운 기억을 뽑아내지 못한 이유다. 그리고 이때부터 나는 한동안 꽤 비뚤어진 태도로 한동안 회사생활을 이어갔다.


'꼰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자신들은 새로운 시대의 선구자인 양 행동하더니. 그 말을 방패 삼아 자신들은 더한 추태를 부리고 있는 작자들. 그때부터 나는 '꼰대~ 꼰대'하는 사람들에게 반감을 갖게 됐다. 특히나 아무렇지 않게 그 말을 내뱉는 동료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기이했다. 누군가를 '꼰대'로 지칭하면서 대체 왜 자신들이 되레 깨어있는 사람이라 생각하는 건지.  


사내에서의 정치는 사실 어디에서든 있는 일이다(사실 이게 사내정치였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이보다 더한 일도 숱하게 벌어지는 것이 '회사'라는 세계다. 나도 알고 있다. 시간이 지나 더욱 격렬하게 체험하기도 했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처음에는 이런 생각을 했었다. 확실히 세대끼리 의견 차이는 존재할 수밖에 없고, 나는 젊은 감각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야지-. 소위 당시 미디어에 도배되던 '꼰대'에 대해 원활하게 대처하기 위해 마음의 준비도 해야지-. 선배들이 알려준 대로, 미생에서 본 대로, 윗사람들 엄청 조심해야지-.


그런데 나는 저 위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이 안겨준 실망감에 더 큰 상처를 받았다. 그리도 열심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건만! 이렇게 쉽게 멘탈이 탈탈 털리다니! 난 참으로 나약하다는 생각을 했다.


겪어보니 '꼰대'가 어른들 갖고 있는 성격아니다. 반대로 영 사고뭉치처럼 보이는 어른들도 뭇 존재하는 것 같고.


'착한 팀장' 이용해 먹는 '못된 팀원'도 있지만,

'좋은 팀원' 이용해 먹는 '나쁜 팀장'도 많이 보았다.


참 사람 일이란...

뭐 하나 철저히 준비한다 하더라도 모든 변수에 제대로 된 대처를 할 수 있을리 만무하다.

그저 조금 더 유연해지자-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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