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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왕고래 Sep 20. 2022

"제발 텀블러 좀 그만 주세요."

수십 개의 에코백, 텀블러를 모으면 환경이 보호되나요?



우리 회사의 모토는 '그린 & 클린(Green & Clean)'이었다. '지속 가능한 소비'와 '환경'을 위해 나름 많은 고민을 해왔다고 자부한다. 그러다 한 번은 회사에서 행사 하나를 추진하게 됐다. 코로나로 인해 2년간 전혀 진행하지 못했던 야외 페스티벌에 참여하기로 한 것이다.


부스에서의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하던 중 우리는 기프트로 텀블러를 제작해보면 어떨까 아이디어를 냈다. 그리고 소비자들의 반응을 파악해보고자 게시물을 올렸다. 차기 예정된 페스티벌에서 많은 분들을 위해 텀블러를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반응은 좋지 않았다. '제발 텀블러 좀 그만 주세요.', '너무 뻔하고 식상해요.'라는 의견들보다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왔던 것은 바로 이 내용이었다.


진짜 '환경'을 생각하는 기업이라면,
'친환경 용품들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그런 '제품들의 생산도 점차 줄여야겠다'고 생각해주세요.

굉장히 명료하고 설득력 있는 말로 들렸다. 참 단순한 사실인데 그저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고 또 실물을 계속 제공해야 된다는 강박만 가득했다. 우리 소비자들은 참 현명하다 생각이 든다. 소비자들이 직접 '필요하다고 이야기하지도 않은' 여러 제품들을 우리는 '친환경 제품'이라는 명분으로 곳곳에서 쏟아내고 있다. 우리 회사에서는 '굿즈 마케팅'을 자주 기획했는데, 보통 이런 데에서 유난히 두드러졌던 것 같다.


호기심에 집안을 뒤져보았다. 미처 사용하지 않은 텀블러가 찬장 안에 가득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방에는 포장도 뜯지 않은 에코백이며, 다양한 '친환경 제품'들이 즐비해있다. 페스티벌이나 미술 전시회, 콘서트, 아트페어 등에서 수집된 다양한 굿즈들은 이제 뻔하디 뻔하고 대게 비슷한 모양새다.




우연찮게 내가 활동하고 있는 커뮤니티에서도 비슷한 의견이 나왔다. 교육과정의 수료기념 단체 기념품을 만들어보려고 하던 찰나였다. 여기서도 텀블러 제작 이야기가 나오자 "차라리 소요되는 생산비를 '나무 심기' 등 의미 있는 기부 활동에 지출하자"라는 주장이 등장했다. 이 의견에는 퍽 많은 사람들이 공감 버튼을 눌렀다.


세상은 진일보하고 있다는 생각이 늘 든다. 

사람들의 지성은 더욱 대단한 깊이로 쌓여가는 것 같고. 


어쩌면 지난날, 우리는 그저 그대로 두면 될 것을 계속 툭툭 건드리며 예민하게 만들었던 건 아니었을지. 가만히 지켜보기만 해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자연과 환경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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