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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왕고래 Jan 05. 2021

고등학교 동창에게 다짜고짜 10년 전의 사과를 받았다.

결국 되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는데!



'그 녀석'은 고등학교 때부터 매우 친하게 지내던 무리 중 한 명이었다. 각자 대학에 진학한 뒤에도 우리는 주말마다 만나 노는 경우가 많았다. 어렸을 때부터 계속 한 동네에서 자라온 우리였다. 20대 중반까지 일상처럼 서로 함께했던 이유다.


그리고 서로 군대에 다녀온 뒤였을까. 녀석과는 연락이 뜸해졌다.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은 직장으로 인하여 하나둘 고향이 아닌 다른 곳으로 떠나갔다. 또 어떤 친구는 아예 이민을 가기도 했다. 그러나 '그 녀석'은 같은 동네에 계속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우리는 서로 소원해졌다. 오히려 먼 곳으로 건너간 친구들은 서로의 터전을 찾으면서 관계를 잘 유지했는데, 이상하게도 '그 녀석'은 연락조차 잘 되지 않았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만나고 난 뒤 무려 10년이 훌쩍 지났을 무렵. 타지에 나가 있는데 갑자기  '그 녀석'에게 전화가 왔다. 첫 통화에서 그가 내뱉은 첫마디는 "어라! 너 아직도 번호가 그대로였네??"였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내가 전화를 받아서 당황한 기색 같았다.


'내가 전화를 받는 게 이상한가?'라 잠시 생각하며 오랜만에 반가운 통화를 이어갔다. 당시 '그 녀석'은 당장에라도 나를 보고 싶다며, 시간을 내달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나는 당시 출장 중이었다. 결국 돌아가게 되면 다음 달이 될 것 같아 아쉽지만 1개월 뒤로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약속 날짜가 다가올 때쯤 녀석에게 또 전화가 왔다.

'약속을 잊지 않았느냐'는 확인 전화였다.


"그럼! 당연하지!"


나 역시 오랜 친구를 만날 생각에 살짝 들떴다. 무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보지 못했던 불알친구다. 만나면 그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이야기하다가 밤을 샐 것도 같았다.


그렇게 당일이 되었다. 으레 많은 남자들이 그러하듯 늦은 저녁 우리는 고깃집에서 만났다. 그리고 곧바로 소주와 맥주를 각각 한병 시켰다. 서로 잔을 채우고 건배를 나눈 뒤 학창 시절 이야기로 한동안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슬슬 얼큰하게 취기가 올라올 무렵 다짜고짜 '그 녀석'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사실 너한테 사과하려고 만나자고 한 거야!"


아니, 갑자기? 뭔 소린가 싶어 어안이 벙벙한 채 쳐다보는 나에게 녀석은 곧바로 말을 이어갔다.

여러모로 참 황당하면서도 우습기도 한 그런 이야기였다(당시엔 정말 그랬다).


대학시절 나는 여러 전공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그중 정치외교학과 강의도 많았다. 그러다 우연찮게 교수님의 추천으로 국회 모 의원의 사무실에 인턴으로 들어가게 됐다. 과 특성상 이런 기회를 마다할 리 만무했고 이렇다 할 정치성향이 딱히 정립되어있지 않았던 당시의 내게는 그때의 기회가 딱히 큰 고민거리도 아니었다. 일단 점수가 매 학기 늘 바닥이었기에, 무조건 무엇이라도 액션을 보여야만 했다. 안 그러면 그간의 등록금이 모두 날아갈 판이었다. 그렇게 한참 인턴생활을 하며 나름대로 많은 경험을 했었는데, 생각해보니 그때가 녀석과 점점 거리가 멀어지던 순간이다.


친구가 그 이유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군대 가기 전 그 친구는 총학생회 활동에도 적극적이던 외향적인 녀석이었다. 그때부터 정치에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현실정치를 꿈꿨던 건지는 묻지 않아서 모르겠다. 다만,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정치인'을 비롯하여, '국가에 대한 견해'라든지 꽤 원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하긴 했던 것 같다. 지금은 둘 다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말이다.


그러던 와중 본인이 스스로 정의라고 규정지은 세력(내지 정당)이 있었는데, 내가 그와는 전혀 다른 곳에서 활동하는 것을 지인들에게 듣자 울화통이 치밀었다는 것이다. 사실 그 친구가 정치 관련 이야기를 많이 할 때에 나는 그런 분야에 딱히 관심이 없었다. 인턴 역시 학고를 면하기 위한 모종의 발악이었지, 들어가서 일하다 보니 역시 그곳은 나와는 맞지 않는 옷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녀석 입장에서는 이런 생각이었다고 한다. 자신이 이야기할 때는 듣지도 않던 내가, 졸지에 본인의 입장과 다른 곳으로 냉큼 달려가버린 파렴치한처럼 비춰졌다는 것.


나는 해명할 기회도 없이 녀석에게 낙인이 찍혀버렸다. 그 친구 스스로 말하는 '당시의 사명감'은 소위 말하는 '중2병'과 같아서 분노로만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실제로 친구가 이렇게 이야기했다). 또래 동창 모임에 가서도 내 잘못된(?) 행보에 대하여 아주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고 밝혔다. 말하자면 뒷담화였던 것이다.


듣고 보니 황당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우습기도 했다. 비웃음은 아니고 뭐랄까….

그냥 '20대 중반의 우리들에게는 이런 일도 있었구나'하고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 주변을 생각해보건대, 왠지 딱히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사실 따져보면 크지 않은 사건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갈등을 겪고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지금도 연인과 가족, 친구들과는 참 별것 아닌 걸로 유치하게 티격태격할 때가 많은 느낌이다. 상대방의 의도를 스스로 곡해해서 서운함이 들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원망을 할 때도 있으니.


그런 생각이 이어지자 불현듯 10년 만에 나타나 사과의 말을 던지는 저 녀석이 왠지 대단스럽기도 했다. 친구는 "내가 너무 어렸지?"라는 말도 했고 "내가 진짜 유치했어."라고도 했다. 아무리 10년이 지났기로서니 저런 말을 스스로 하기가 어디 쉬울까.


게다가 난 미처 인지하지도 못하고 있었던 일에 직접 찾아와서 사과라니.

난 딱히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있었는데, 이 얼마나 양심스러운 행위인가!


사실 솔직히 말하면, 내 생각에도 정말 유치했던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뭐, 어릴 적 벗들과의 소소한 갈등은 본래 떠올려보면 늘 참 유치한 것들 아니었던가.


아무튼 10년 만에 사과를 받은 뒤부터는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음 날에는 썩 나쁘지 않은 기분과 함께 무시무시한 숙취가 오랫동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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